10년6개월간 학교·군대·직업훈련기관·공장을 거치며 용접을 하다 폐암에 걸린 20대 노동자가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직업성 발암물질 노출기간이 10년이 안 되더라도 비직업성 발암물질 노출기간이 혼재됐다면 두 기간을 합쳐 발암물질 노출·잠복기간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6일 노무법인 참터 충청지사에 따르면 지난 4일 근로복지공단 천안지사가 학교 실습실·현장실습 산업체·군대·직업훈련기관과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용접·생산·정비업무를 하다 폐암에 걸린 A(26)씨의 산재 신청을 승인했다.

A씨가 유해물질에 처음 노출된 시기는 만 16세 때다. 실업고 1학년 때부터 용접을 배웠던 그는 작업 과정에서 용접흄·석면포 등 유해물질에 노출됐다. 고등학교 재학 중 현장실습 산업체에서는 선반 절삭가공을 하며 금속가공유에 노출됐다. 군대에서는 용접주특기 사병으로 복무했다. 제대 후 공장과 직업훈련기관을 번갈아 다니며 용접을 했다.

2011년 12월 현대제철 당진공장에 입사한 A씨는 누워 있을 때 숨이 턱턱 막히는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다. 2014년 3월 폐암 4기 진단을 받았다. A씨는 이곳에서 용접을 비롯한 기계정비를 하며 니켈 등 중금속과 디젤연소물질·결정형 유리규산·분진·용접흄·석면·코크스에 노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같은해 11월 근로복지공단 천안지사에 산재요양을 신청했다. 공단 직업성폐질환연구소는 2년 넘게 역학조사를 한 뒤 업무관련성이 낮다는 결론을 내렸다. 현대제철과 A씨가 직전에 다녔던 공장 두 곳의 작업환경을 측정한 결과 폐암 발암물질 노출 수준이 미미하고, 잠복기와 노출기간이 짧다는 이유였다. 반면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이를 직업성 암으로 판정했다.

폐암이 직업병으로 보상 대상이 되려면 폐암 유발물질 노출기간과 잠복기간이 최소 10년 이상 경과해야 한다.

서울질판위는 "A씨는 현대제철 공장 근무 이전 실업고에 입학한 때부터 용접을 접했고, 군입대 중 용접주특기 사병으로 근무하면서 유해물질에 노출됐을 것으로 판단되며, 잠복기간까지 고려하면 유해물질 노출기간이 상당하다"며 "과거 학교나 군대 작업환경이 열악해 석면노출 가능성이 있고 가족력이 없다는 점 등을 종합해 폐암과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높다"고 판정했다.

사건을 대리한 김민호 공인노무사는 "A씨는 현대제철 등 직업성 발암물질에 노출된 기간과 학교·군대·직업훈련기관 등 비직업성 발암물질에 노출된 기간이 혼재돼 있고, 이를 합산해야 10.5년이 된다"며 "서울질판위는 직업성 노출기간과 비직업성 노출기간을 모두 합산해 발암물질 노출기간과 잠복기간을 파악했다"고 말했다.

김 노무사는 "발암물질은 어린 나이에 노출될수록, 여러 발암물질에 복합적으로 노출될수록 발암성이 증가한다"며 "이번 산재 인정을 계기로 고등학교 실습실·현장실습 산업체·직업훈련기관·군대에서 직업교육이나 국방의무를 이행하는 10대와 20대의 건강보호를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김 노무사에 따르면 현대제철에서 최근 5년간 암으로 휴직한 22명 중 4명이 폐암 환자였다. 이 중 2명은 사망했다. 그는 "폐암 같은 고형암은 최소 10년 이상 긴 잠복기를 거쳐 발생하기 때문에 추가 피해자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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