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정부도 노동계도 "노동존중 사회"를 외친다. 수십 년간 적폐가 쌓인 한국 사회.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려면 손봐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툭하면 글로벌 스탠더드를 외치는 한국 사회에서 노동만큼 국제기준과 거리가 먼 분야도 드물다. 실제 한국 노동지표는 국제노동기준을 한참 밑돈다. 노동존중 사회로 가려면 국제노동기준부터 지켜야 한다.
서울시가 9월5일부터 6일까지 '좋은 일자리 도시 국제포럼'을 서울에서 개최한다. <매일노동뉴스>가 주관한다. 좋은 일자리를 만들려는 서울시의 노력을 세계에 알리고 국제도시들의 경험을 배우기 위해서다. 국제포럼에는 가이 라이더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을 비롯한 국제기구 관계자들과 세계 여러 도시 대표자들이 참석한다. <매일노동뉴스>가 '국제노동기준부터 지키자' 기획보도 일환으로 서울시 국제포럼 세션 좌장을 맡은 전문가들을 인터뷰한다.

1. 노동기본권 국제노동기준
2. 좋은 일자리 국제노동기준
3. 노동존중 사회는 노동존중 도시로부터
4. 노동전문가 릴레이 인터뷰


인공지능 시대에 좋은 일자리 도시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6일 '좋은 일자리 도시 국제포럼' 네 번째 세션에서 다뤄질 주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논의한다. 최정식(63·사진) 국제사무금융서비스노련(UNI) 한국협의회 사무총장이 좌장을 맡았다. 그는 1994년부터 세계 각국을 돌며 국제노동 관련 활동을 했다. 행사에 앞서 최정식 사무총장에게 서울시 노동정책과 미래 도시 노동행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물었다. 인터뷰는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중구 뉴국제호텔 식당에서 진행됐다.

- 서울시 노동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서울시가 여러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했다. 내년부터는 공기업·투자기관에서 노동이사제를 실시한다.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도시 이곳저곳을 이동하는 노동자를 위한 쉼터를 만든 것도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서울시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파업을 했다. 해당 구청과 서울시 사이의 사업 조율이 취약해 생긴 문제로 안다. 구청과 서울시가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 도시 생활은 수많은 스트레스를 야기한다. 전체 국민 5분의 1이 우울증을 갖고 있다. 이 문제에 우리 사회가 공개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서울시가 시민의 정신건강을 되찾는 사업에도 적극 뛰어들길 바란다. 저출산·고령화 시대다. 서울시가 좋은 일자리로 한발 더 나아가려면 '일자리 케어' 사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직접적인 일자리 창출도 중요하지만 노동자가 일자리를 영위할 수 있게 돌보는 것도 중요하다. 아이를 맡는 일, 노인을 돌보는 일, 환자를 치료하는 일을 대신해 노동자들이 마음의 부담을 덜고 온전히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것도 도시의 중요한 역할이다.”

- 세션 4(좋은 일자리 도시로의 전환과 미래의 조우) 좌장이다. 어떤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나.
“세션 1~3은 현재 상황을 분석하고 대응책을 찾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세션 4는 미래를 가정하고 상상하는 장이 될 것이다. 인공지능 발달에 따른 4차 산업혁명에 대해 공포에 찬 견해가 많다. 노동자들을 너무 기죽일 필요가 없다. 인간과 기계의 조화로운 발전을 위해 노동자도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수백년간 노동자들은 ‘하루 8시간 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외쳤다. 다가오는 시대에는 발상의 대전환을 이뤄야 한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하루 4시간, 주 2~3일 노동제가 적정하다는 인식이 생길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을 일자리의 소실이 아닌 삶의 원래 가치와 스스로의 본성을 탐구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인생의 3분의 1을 노동에 써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각 개인이 본질적인 행복 찾기에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밥과 빵만을 위한 노동은 노동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구분하는 수단으로 전락시킨다. 이런 구조 아래에서 자본은 그동안 노동의 신성함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번 국제포럼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의 노동의 의미, 인간과 기계의 조화로운 발달, 이를 종합한 새로운 도시 노동모델을 전망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 좋은 일자리를 위해 도시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국제사회에서 좋은 일자리를 디센트 워크(Decent Work)라고 부른다. 많은 뜻을 함축하는 표현이다. 우선 일이 즐거워야 좋은 일자리다. 소득이 뒷받침돼야 한다. 일과 삶이 균형 있게 자리 잡히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일을 하며 미래 지향적인 준비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평생 한 직업으로만 살 수 없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속가능한 일자리가 많아야 도시도 지속가능하다. 좋은 일자리를 위해 도시는 다양한 분야에서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단순히 사용자와 노동자를 위한 인프라에서 그쳐선 안 된다. 환경적 인프라가 중요하다. 앞서 얘기한 돌봄센터는 물론 산책로를 조성하는 것도 일자리를 위한 인프라가 될 수 있다. 고층빌딩에 갇힌 도시 노동자는 삶이 황폐하다. 일로 받는 스트레스를 풀 공공시설, 예컨대 공원·도서관·미술관을 조성하는 것은 도시가 일자리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이다.”

정기훈 기자


- 직접적인 좋은 일자리 창출방안은 없나.
“올해 3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국제노동기구(ILO)가 개최한 보건의료 분야 고용과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노사정 대회에 유지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과 함께 참석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예측에 의하면 2030년 전 세계적으로 1천800만명의 보건의료인력 부족 현상이 벌어진다고 한다. 각 국가가 꾸준히 보편적 보건의료 서비스를 위한 정책을 실현하면서 해당 시기에 4천만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겨나기 때문이란다. 우리나라에서도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만들어진 일자리위원회가 최근 보건의료 노사와 함께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협업을 선언하지 않았나. 서울을 비롯한 여러 도시가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맞게 일자리 창출 모델을 고민할 때다. 젊은이들이 정형화된 대기업 일자리를 넘어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창의력을 무기로 하는 많은 젊은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고용시장이 만들어져야 한다. 앞서 밝힌 도시 인프라 구축 과정에서 이들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 UNI 활동을 하면서 세계 곳곳을 방문한 것으로 안다. 인상 깊었던 일자리 도시를 소개한다면.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이다. 암스테르담 경제를 흔히 파트타임 이코노미라고 부른다. 전체 노동자의 40%, 여성노동자의 70%가 파트타이머다. 그런데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 만족한다. 노동자들은 짧은 노동시간에 익숙해져 있다. 풀타임으로 일하는 노동자들과 비례해 사회보장 혜택이 주어진다. 거리 풍경과 노동자 표정에 여유가 넘친다. 2013년 ING생명보험 매각반대 투쟁을 위해 암스테르담을 방문했다. 당시 빌럼 빔 콕 전 네덜란드 총리를 만났다. 그는 약속장소까지 40분간 자전거를 타고 왔다. 도시 곳곳에 자전거가 비치돼 있다. 공해가스가 배출되지 않는다. 도시지만 시골 같은 소박함이 있다. 네덜란드는 82년 바세나르 협약으로 국민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국가가 됐다. 그렇다고 국가 경쟁력이나 국내총생산(GDP)이 떨어진 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면 사회 시스템이 변한다. 교육·문화·예술이 번성한다.”

- 좋은 일자리 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동계와 재계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서울에는 대기업이나 은행 사업장 종사자들이 많다. 서울시 투자기관이 내년부터 노동이사제를 도입한다. 노동계가 이러한 노동이사제 모델을 성공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성공사례가 나오면 민간으로 확산되지 않겠나. 민간기업들은 경영 투명성을 위해 노동자들과 파트너십을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금융산업에서 산별교섭 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카카오뱅크 같은 인터넷은행이 무서운 속도로 시장을 점령하고 있다. 은행 이용 절차가 간편해진 것도 이유지만 수수료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온 결과다. 은행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난관을 헤쳐 가기 어렵다.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외부의 새로운 도전을 어떻게 극복할지 고민할 때다. 금융 노동계가 앞장서 경영참여를 요구하고 현실로 만들어 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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