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정부도 노동계도 "노동존중 사회"를 외친다. 수십 년간 적폐가 쌓인 한국 사회.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려면 손봐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툭하면 글로벌 스탠더드를 외치는 한국 사회에서 노동만큼 국제기준과 거리가 먼 분야도 드물다. 실제 한국 노동지표는 국제노동기준을 한참 밑돈다. 노동존중 사회로 가려면 국제노동기준부터 지켜야 한다.
서울시가 9월5일부터 6일까지 '좋은 일자리 도시 국제포럼'을 서울에서 개최한다. <매일노동뉴스>가 주관한다. 좋은 일자리를 만들려는 서울시의 노력을 세계에 알리고 국제도시들의 경험을 배우기 위해서다. 국제포럼에는 가이 라이더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을 비롯한 국제기구 관계자들과 세계 여러 도시 대표자들이 참석한다. <매일노동뉴스>가 '국제노동기준부터 지키자' 기획보도 일환으로 서울시 국제포럼 세션 좌장을 맡은 전문가들을 인터뷰한다.

1. 노동기본권 국제노동기준
2. 좋은 일자리 국제노동기준
3. 노동존중 사회는 노동존중 도시로부터
4. 노동전문가 릴레이 인터뷰


"도시와 일자리는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까. 도시의 좋은 일자리란 무엇일까."

서울시 주최로 9월5~6일 열리는 '좋은 일자리 도시 국제포럼'에 참여하는 임상훈(53·사진) 한양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최근 '꽂혀 있는' 화두다. 임 교수는 포럼 둘째 날 '도시와 사회적 대화' 세션 좌장으로 논의를 이끈다.

지난 29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도시라는 타이틀로 일자리 얘기를 하기란 쉽지 않다"면서도 "여러 사회주체들이 모여 좋은 일자리가 무엇인지 정의하고, 정의한 대로 다양한 실험을 한 뒤 실험 결과를 가지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방향을 설정해 나가는 일련의 실험을 서울에서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서울시가 진정한 '노동존중 특별시'가 되려면 노동회의소를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도 했다. 최소한 서울의 모든 노동자들이 자기이해를 대변하는 조직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임 교수는 "좋은 일자리와 임금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 임금문제를 도외시하고 디센트 워크, 고용, 일자리 창출을 얘기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노동계도 임금체계 개선 문제를 전향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서울시가 '좋은 일자리 도시 국제포럼'을 개최한다.

"처음 포럼 제목을 듣고 '이게 뭘까' 했다. 도시와 고용, 좋은 일자리가 어떻게 서로 매치될까 싶었다. 보통 고용·일자리라고 하면 산업단지나 농어촌을 떠올린다. 갑자기 도시라는 공간개념이 들어가니까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의아했다. 사실 한 나라에서도 도시의 의미가 다양하고, 한 도시 내에서도 각 지역마다 일자리와 관련해 서로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도시라는 타이틀로 일자리 얘기를 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서울에서 이런 행사가 열리는 게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좋은 일자리라는 건 가치지향적이라서 어느 한 사회주체가 '이것이다'라고 정의할 수 없다. 그러면 관련 사회주체들이 모여 좋은 일자리가 무엇인지를 정의하고, 정의한 대로 다양한 실험을 한 뒤 실험 결과를 가지고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면 된다. 서울은 그 실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에서 여러 사회주체들이 만나 좋은 일자리에 관해 논의하고 다른 도시들이 가진 경험을 나누며 국제적인 공감대 만들어 가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 이번 포럼에서 '도시와 사회적 대화' 세션을 맡았다. 서울시 사회적 대화를 어떻게 보나. 노사정서울모델협의회가 운영 중인데.

"다른 지역에 있는 노사민정협의회가 서울에는 없다. 노사정서울모델협의회가 마치 서울지역노사민정협의회인 것처럼 보이는데, 다른 지역 노사민정협의회와는 다르다. 다른 지역 노사민정협의회에서 노측은 그 지역노동자들의 대변인이다. 서울모델협의회에서 노측은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이해만 대변하고 있다. 사용자도 공공기관 사용자들만 참여한다. 처음부터 세팅이 그렇게 돼 있었다. 어떻게 보면 서울의 사회적 대화가 굉장히 파행적이고 왜곡돼 있었던 모습인데, 그걸 정상화하는 과정에 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서울시 국제포럼은 이제까지 어두운 곳에 있었던 서울모델협의회를 공론화 장으로 끄집어내는 것이다. '왜 너희는 지역노사민정협의회를 못 만드냐'거나 '서울모델협의회와 지역 노사민정협의회가 어떻게 다르냐' 또는 '이렇게 국제포럼도 여는 능력이 있는데 서울지역노사민정협의회 정도는 만들 수 있는 거 아니냐'는 얘기를 할 수 있는 기회다. 서울모델협의회가 탈바꿈하면 공공부문 노동자와 사용자만의 사회적 대화가 아니라 서울지역 모든 노동자와 사용자들의 사회적 대화기구로 변환이 되는 것이다. 그것만 해도 큰 의미가 있다."

- 서울시 노동정책을 평가한다면.

"박원순 시장이 '노동존중 특별시'를 말했을 때 참신하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아는 서울은 '집값 최고' 혹은 '음식값 최고'처럼 소비로서 최고의 도시였다. 그런데 '노동존중 특별시'라는 건 서울이 소비의 도시가 아닌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의 도시로 정의가 확 바뀌는 거다.

'만드는 사람들의 최고의 도시'가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서울에 노동회의소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최소한 서울의 모든 노동자는 자기이해를 대변하는 조직을 갖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 정도가 돼야 노동존중 도시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동존중 특별시'는 그냥 소비도시이면서 색깔을 다양하게 만드는 정도에 그친다."
 

정기훈 기자

- 최근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장과 상임위원에 노동계 출신이 선임됐다. 사회적 대화를 이끌어 갈 노사정위를 어떻게 바라보나.

"현 위원장과 상임위원의 노동에 대한 친화성·경험·고민 정도가 이전 분들과 다르다. 확실히 차별성이 있다고 본다. 그런데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총이 달라졌느냐. 그건 아니라고 본다. 노사가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변화를 추구하는 쪽과의 각축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변화를 만들어 내기가 엄청 힘들 것이다. 민주노총·한국노총·경총·상공회의소의 저항이 예견돼 있다. 어떻게든 버텨 내야 한다. '상처 내기'를 이겨 내면서 정당성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받아야 한다. 그 시간이 오래 걸릴 텐데, 그전에 좌절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노사정위에서 다뤄야 할 첫 번째 의제는 무엇인가.

"일자리 문제는 결국 임금 문제다.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고용 문제를 해결하려면 임금 문제를 다룰 수밖에 없다. 임금 문제를 도외시하고 디센트 워크·고용·일자리 창출을 얘기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노동계도 이 부분에서 전향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정규직·양극화 문제를 그대로 둬도 좋다는 얘기와 같다. 좋은 일자리를 만들려면 임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최근 일부이긴 하지만 주요 노조에서 임금체계 개선을 고민하고 있다. 획기적인 거다. 예전에는 임금체계 개선 말만 나오면 전부 어용학자들이 얘기하는 것으로 여기거나, 정부 들러리를 서게 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방어적인 태도만 보였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뭘까, 현재의 것을 고수하는 걸까 아니면 다른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까를 고민하고 논의하려고 한다. 대단한 진보라고 볼 수 있다."

- 사회적 대화에 성공하려면 어떤 전략을 써야 하나.

"큰 변화를 던져 소용돌이를 만들면서 나아가는 방식과 조그만 변화들을 눈뭉치 만들 듯이 하면서 큰 변화를 만드는 방법이 있을 텐데, 둘 다 어렵다.

첫 번째 방법은 아마도 민주노총을 설득하는 전략일 것이다. 민주노총이 정식으로 노사정위에 참여하고, 기존 노사정위가 환골탈태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우는 힘을 가지면서 큰 변화를 만들어 가는 방법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나 일자리 창출, 노동권 문제 등 모든 이슈에서 민주노총이 들어오는 것과 안 들어오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으니까.

또 다른 방법은 민주노총이 아니라 업종이나 지역을 중심으로 준비된 주체들이 들어와서 조그맣게 시작하는 것이다. 같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라도 보건이나 플랜트건설 등 준비된 업종 단위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업종과 지역에서부터 일자리와 노동권 문제를 다루면서 중앙 문제까지 다루면 되지 않겠나. 그러면서 조금씩 더 큰 변화를 만드는 것이다. 작지만 다양한 주체를 포괄시킬 수 있다. 사회적 영향력은 적겠지만 촘촘한 방안들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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