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학태 기자

“한국형 사회적 대화기구를 만들어 노동존중사회 기본계획을 수립하겠다.”

문재인 대통령 대선공약 중 ‘노동존중사회 실현’ 공약 첫머리에 나오는 문구다. 민주노총을 포함해 참가 대상자와 의제를 넓히고,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과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겠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이와 관련해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은 것은 아니다. 그런 가운데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와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의 역할 분담을 놓고 혼란이 일고 있다. 새 정부가 사회적 대타협만큼은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정부의 정책목표 달성을 위해 사회적 합의를 밀어붙인 이전 정부의 실패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9·15 노사정 합의를 반면교사로”
“합의 집착 말고 충실히 대화해야”


사단법인 노사공포럼은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노사정·학계·전문가 집담회를 개최했다. 주제는 ‘새 정부 사회적 대화 방향과 과제’였다. 노사공포럼 관계자들과 노사단체 관계자, 학자 20여명이 주제발표와 자유토론을 했다.

대다수 참가자들은 공통적으로 “공공부문 비정규직화나 최저임금 인상 등과는 달리 사회적 대타협은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부가 신뢰를 주기 전에는 사회적 대화 참여나 사회적 대타협은 불가능하다”는 양대 노총 주장과 흐름을 함께한다.

휴지 조각이 된 2015년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9·15 노사정 합의를 반면교사로 삼으라는 게 중론이다. 당시 노사정위 상임위원이었던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는 자유토론에서 “문재인 정부는 이전 정부에서 하지 못한 획기적인 대타협을 화려하게 도출하기보다는 노사정 간 안정적인 신뢰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자리 만들기를 위한 사회적 대타협을 시도했던 지난 정부가 조급한 마음에 고용유연화 지침이라는 엉뚱한 카드를 들고나왔고, 결국 파국으로 흘렀던 경험에서 나온 말이다. 최 교수는 “안정적인 노사정 관계를 구축하려면 무엇을 개혁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먼저 있어야 한다”며 “임금체계 개편과 노동시간단축 필요성에 대해 노사정 간 공감대가 있는 만큼 5년간 조급하게 굴지 않으면 해법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은 “정권 초기에 노사정위에서 뭔가 성과를 내려는 유혹을 버려야 한다”며 “낮은 수준의 합의라도 존중하는 과정이 쌓여야 노사 모두 역량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주장의 연장선에서 앞으로 재구성할 사회적 대화기구는 ‘합의’보다는 ‘협의’에 무게를 둬야 한다는 제안이 잇따랐다. 장홍근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발제에서 “기존 노사정위는 (사회적 대화기구인데도) 불필요하게 사회적 합의기구인 것처럼 인식돼 과잉정치화의 함정에 빠져 버렸다”며 “사회적 합의라는 가시적 성과에 집착하기보다 ‘합의를 지향하는 협의기구’로서의 정체성을 정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형준 한국경총 노동경제연구원 실장도 발제를 통해 “합의에 집착하다 보니 합의가 없다고 해서 아무런 성과가 없는 것이 아닌데도 대화를 막아 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생산적 협의에 목적을 두는 사회적 협의체 역할에 보다 충실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정식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은 “결과 못지않게 과정도 중시해야 한다”며 “민주주의를 공고히 한다는 측면에서 대화하고 타협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업·업종별 대화와 중앙 차원 대화
“단계적으로” 또는 “병행”


이른바 ‘원샷 사회적 대타협’의 대안으로 제기되는 것이 업종·지역별 사회적 대화 활성화다. 노동계가 중앙 차원의 사회적 대화 재개 전제조건으로 요구하는 ‘선 신뢰회복’ 지름길일 수도 있다. 최근 일자리위원회가 산하에 보건의료분과를 설치하기로 한 것이나 제조·공공부문 노동계가 별도 노정 대화와 사회적 대화를 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간 규모 사회적 대화를 한 뒤 중앙 차원 사회적 대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2단계론’도 만만찮게 대두되고 있다.

이날 집담회에서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이상호 보좌관은 “우리나라의 비정상적인 노사관계를 고려하면 교섭까지 바라지도 않는다”며 “정부가 업종·직종별 협의 복원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산별교섭은 고사하고 업종별 교섭조차 되지 않는 상황에서 낮은 수준에서 경험을 쌓아야 확장된 의제를 놓고 대화할 수 있다는 논리다.

반면 장홍근 선임연구위원은 ‘병행론’을 지지했다. 산업·업종별 사회적 대화 경험이 사회적 대화 체제 정상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부적합하다는 얘기다. 장 선임연구위원은 “중위 수준의 대화와 타협 노력은 산업·업종·부문별로 진행해 신뢰를 쌓아 나가되, 정부와 중앙 노사·조직 차원에서 지속가능한 사회적 대화 체제 구축을 위한 논의와 청사진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상자] "노사정위를 노동사회위원회로 재편하자"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는 사회적 대화기구인가.

최근 이용섭 일자리위 부위원장은 한국노총과의 간담회에서 “일자리위가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역할까지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일자리위와 노사정위의 역할 구분이 애매하다는 지적에 이 부위원장이 선을 긋고 나선 것이다.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이용섭 부위원장은 “일자리위는 일자리 양을 늘리고 질을 높이는 문제에 대해서만 사회적 타협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사회적 타협'이라는 표현도 그렇거니와, 일자리와 관련한 노동의제는 제한이 없다고 봐야 한다. 최저임금·비정규직·노동시간 문제는 물론이고 노동기본권 문제 역시 일자리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사공포럼이 지난달 30일 개최한 집담회에서 전문가들은 “일자리위가 사회적 대화기구가 돼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장홍근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자리위와 무관하게 노사정위를 (가칭)노동사회위원회로 새롭게 만드는 방안을 제시했다. 장 선임연구위원은 “일자리위는 사회적 대화기구가 아니고, 그렇게 발전할 전망도 크지 않다”며 “노동계 입장에서 좋지 않은 기억이 있는 노사정위를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문했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본부 실장은 “일자리위가 일자리 질과 관련한 여러 의제를 논의하게 되면 사회적 대화기구와 구분이 안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도 “일자리위가 노사정위를 대신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금속노련이 일자리위에 업종별 논의기구를 제안한 것에 대해 노사정위를 대신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고 있다”며 “4차 산업혁명 등과 관련해 노정협의 틀을 만들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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