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한국에서 베이비붐 세대는 1955~1963년까지 9년간 태어난 약 900만명이다. 54~62살까지의 사람이다. 현재 살아 있는 사람만 711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4.3%다. 그중에서 으뜸은 70만명이 넘는 ‘58년 개띠’다. 58년 개띠는 80만명 넘게 태어나, 74년 고교 평준화 첫 세대이자 이른바 ‘뺑뺑이’ 세대다.

이들은 70년대 중반 노동시장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지만, 20년 뒤 97년 말부터 몰아친 외환위기 구조조정의 칼날을 온몸으로 받아 낸 세대다. 올해 예순 살인 58년 개띠는 마흔 살부터 20년 동안 살얼음판을 걸으며 가족을 건사했다.

그래도 58년 개띠는 잠시나마 조국 근대화의 단물을 맛본 세대다. 나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저주받은 세대를 51년생으로 꼽는다. 전쟁 통에 태어나 굶주린 산모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은 게 51년생이다. 이철희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2010년 통계청이 실시한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51년생이 59살이 된 2010년에 신체적 정신적으로 어떤 장애나 불편을 갖고 있는지를 분석했다. 51년생은 비슷한 시기인 45~59년생보다 여러 분야에서 장애나 불편을 많이 안고 있었다. 51년생의 어머니들이 임신한 몸으로 전쟁의 참화를 겪어서다.

같은 51년생이라도 격전이 벌어진 수도권과 강원도 출신 장애율이 남부지방 출신보다 높았다.(조선일보 4월25일자 16면) 이철희 교수의 연구 결과는 너무도 당연한 얘기라서 ‘뭐 이런 걸 연구까지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51년생의 슬픔, 특히 여성 51년생의 슬픔은 한국 노동시장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는 96년 8월 석유화학업체인 선경인더스트리(현 SK케미칼)가 사업 구조조정을 위한 대규모 명예퇴직을 시행한 걸 취재했다. 당시에는 구조조정과 명예퇴직이란 말이 낯설었다. 전 직원 3천700여명의 30%에 이르는 900명 남짓을 60개월치 위로금을 주면서 명퇴시켰다. 부장과 과장급이 주요 대상이었다. 선경인더스트리의 희망퇴직은 외환위기 때 여러 대기업 대규모 구조조정의 신호탄이었다.

선경인더스트리 임원들은 당시 자기 직원을 지키지 못하고 내보내는 것에 한없는 부끄러움을 표했다. 적어도 96년까지는 자기 직원을 자르는 명퇴는 사용주들 사이에서도 손가락질 받았다. 요즘은 명퇴 잘 시키는 게 유능한 사용자의 덕목이지만 적어도 96년까진 수치였다.

방송사 비정규직노조를 이끌어 <필승 주봉희>란 영화까지 만들어 낸 KBS에서도 97년까지는 취재차량 운전자와 경비 등이 정규직이었다. 주봉희 위원장은 KBS 자회사 소속 운전노동자였다. 2000년대 초 KBS 정규직노조에서 지역지부장을 했던 이들 중에는 주봉희 위원장처럼 운전직으로 들어와 외환위기 이전에 일반직으로 말을 갈아탄 사람도 있었다.

다시 51년생 여성노동자로 돌아와 보자. 이들은 60년대 중반 15~18세에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올라와 공장노동자로 일해야 했다. 남동생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각성제 '타이밍'을 먹고 하루 14시간, 심할 땐 연속 20시간 넘는 중노동에 시달렸다. 이들은 70년대 초중반에 퇴직해 결혼과 출산, 가사노동을 계속했다. 고된 가사노동에도 노후에 자식에게 부양받는 기대를 품고 유난히도 자식공부에 매진했다.

그러나 이들의 자녀는 대학 졸업 무렵 저주받은 외환위기 첫 세대가 된다. 자녀들은 91~95학번이다. 자녀들은 졸업과 동시에 실업에 빠졌다. 다시 51년생 여성이 노동시장에 대거 나오기 시작한 건 외환위기 직후였다. 자녀의 취업문이 막히자 경력단절을 감수하고 일해야 했다. 그러나 이들은 정규직 대신 간접고용으로 노동시장 주변부를 떠돌며 60대 중반을 넘긴 지금도 노동시장에서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참, 박근혜 전 대통령도 52년 전쟁 통에 태어났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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