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장

촛불의 힘으로 권력을 끌어내린 뒤 치러지는 19대 대선이 눈앞에 다가왔다. 과거 정권의 적폐를 해소하겠다는 약속은 넘쳐나지만 새로운 사회를 희망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크게 울리지 않고 있다. 노조를 만들기도 힘들고,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해고되고, 노조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국가로부터 처벌받는 현실은 국제기준과 거리가 멀다. 최저임금 1만원과 노조할 권리 보장 등 5대 의제·10대 요구안을 발표한 민주노총이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를 보내왔다. 5회로 나눠 싣는다.<편집자>


이런 상상을 해 본다. 민주노총이 최저임금 1만원을 내걸고 하는 2017년 사회적 총파업에 동의하는 누구나 하루 일을 멈추고 참여한다면 어떨까.

불법파업이라고 단죄하는 판사도 하루 재판을 멈추고 총파업 행진에 참여하고 말이다. 이것이 가능한 사회, 이러한 연대의 경험을 공유한 사회라면 노동자와 서민의 삶이 지금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사업장에 정리해고 조짐이 있어 노조가 회사와 교섭을 진행 중이고 노조 입장은 당연히 정리해고 반대다. 회사가 어려운 게 사실이라면 순환 무급휴직을 일정 기간 하더라도 같이 힘을 모아 이 위기를 이겨 내자고 요구한다. 그러나 경영위기의 책임을 초래한 경영진은 그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라며 정리해고를 강행하려 한다. 노조는 파업에 들어간다.

위 두 가지 파업에 대한 한국 사회의 대처는 어떨까. 먼저 보수언론들이 신속하게 움직인다. 경제도 어려운데 웬 파업이냐고 하면서 ‘불법파업’이란 딱지를 붙이고 자극적인 비난을 쏟아 내기 시작한다. 이때가 기회다 싶어서인지 노조혐오 기사를 쏟아 내며 노조를 사회로부터 고립시키고 보수정치권이나 정부도 불법파업 비난과 노조 혐오발언을 쏟아 낸다.

그러면 그에 발맞춰 노동부와 검찰 공안부가 움직인다. 불법파업 해석을 내리고 검찰은 주요 노조간부 구속수사 엄벌을 공표하면서 체포작전에 들어간다.

신속히 기소가 이뤄지면 법원도 불법이라는 단죄를 내린다. 최저임금 1만원 사회적 총파업은 사용자가 처분할 수 없는 사항을 가지고 한 정치파업이라서, 정리해고 등 구조조정 반대는 경영권을 침해하는 것이어서, 모두 ‘목적’이 불법이라고 단죄된다.

이뿐인가. 전체 임금노동자의 절반인 비정규 노동자는 파업권 이전에 단결권에서부터 막혀 있고, 공무원·교사는 파업을 금지당하고 있다.

공공부문 노동자는 필수유지업무제도 때문에 일을 하면서, 즉 업무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파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파업을 시작하기까지 교섭창구 단일화·찬반투표·조정절차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런 제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바로 불법파업의 굴레를 덮어씌우고 업무방해죄, 손해배상 가압류와 해고라는 3종 세트가 따라붙는 것이 현실이다.

국제노동기구(ILO) 결사의 자유위원회는 “최저임금의 인상, 단체협약의 인정 및 경제정책의 변화를 요구하는 24시간 총파업은 정당하며 노동조합 단결체의 통상적인 활동범위에 속한다(ILO, ibid, para. 494)"고 밝힌 바 있다. ILO는 파업권이 단체협약 체결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 노동쟁의에만 국한돼서는 안 되며, 노동자와 노동자조직이 필요하다면 보다 넓은 맥락에서 조합원들의 이해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 경제적 사안에 대한 불만을 표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정리해고 등 구조조정 반대는 당연한 것이고, 최저임금 등 노동정책, 경제정책에 대한 파업도 정당한 파업으로 보고 있다.

파업권 보장은 이렇게 ILO의 최소기준이라도 지켜 그 목적의 정당성 범위를 정상화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법과 제도라는 이름으로 더 이상 파업을 ‘불법’화시키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노동자로 인정하고, 원청 사업주가 사용자로 책임을 지게 하여 비정규 노동자들에게도 노조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비정규 노동자도 노동 3권, 다시 말해 헌법 33조가 적용되는 국민이다.

손해배상 가압류로 인한 노조 죽이기, 노동자 죽이기가 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손배 가압류를 잡자, 손에손을 잡고'(손잡고)가 제안한 영국 입법례와 같은 방안, 즉 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의 경우 노조 규모를 고려해 상한선을 정하는 방식은 충분히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방안이라고 본다.

ILO는 "노동위원회가 필수유지업무는 국민 전체 또는 일부의 목숨 또는 일상생활을 위태롭게 하는 것을 회피하는 데 엄격하게 필요한 것으로 결정돼야 한다는 원칙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를 수용해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무력화하고 있는 필수유지업무제도를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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