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안 난다면, 5월9일 새 대통령을 뽑는다. 촛불항쟁으로 박근혜를 몰아냈지만 전쟁 위기를 겪고 있는 작금의 한반도는 민주주의 쟁취와 한반도 평화, 즉 계급 모순과 민족 모순이 공존하는 우리의 역사적 현실을 곱씹게 한다.

새 정부 노동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 과제를 달성해야 한다. 첫째 근로기준법을 모든 사업장에 적용해야 한다. 5인 미만 사업장이라고, 업종이 농업이라고, 이런저런 이유로 근기법을 적용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근기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비공식 경제(informal economy)를 일소하고 이를 근기법 적용은 물론 과세 및 사회보험이 규제하는 영역, 즉 공식 경제(formal economy)로 편입시키는 작업을 5년 집권기 동안 해야 한다. 이를 통해 근기법조차 외면한 진짜 ‘을’들이 근로기준 보호막 안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둘째 헌법이 규정한 노동 3권의 실질적 보장이다. 많은 사람들이 대기업-정규직은 노동 3권을 충분히 누리고 있다고 착각한다.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에 비해 상대적으로 누리는 게 많지만, 이들도 노동 3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헌법 정신을 현실에 구현하는 수단이 돼야 할 하위법령들이 노동 3권을 훼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내디뎌야 할 첫걸음은 국제노동기구(ILO) 87호 결사의 자유 협약과 98호 단체교섭권 협약의 비준이어야 한다. 두 협약의 비준은 새 정부가 노동 3권을 실현할 의지가 있는지를 판별할 지표다. 당선 이후 바로 준비한다면 가을 정기국회에서 비준할 수 있을 것이다. 친노동이냐 반노동이냐 노동존중이냐 노동무시냐를 판단하는 기준은 간단하고도 명백하다. 87호와 98호 협약 비준을 위해 애쓰면 노동존중이고 비준을 방해하고 이런저런 이유를 달아 질질 끌면 노동무시다.

셋째 과제는 현행 근기법이 명시한 주 40시간 실현이다. 사실 이것은 노무현 정권 때 법제화된 것인데 ‘주 5일제’라는 말장난에 속아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대중 정권 때 어느 ‘천재적인’ 공무원이 만들어 낸 노동시간 관련 행정해석에 따라 이후 대한민국의 노동세계(World of Work)에서 1주일은 7일이 아니라 5일이 됐다. 이 문제는 스스로를 '세계적인' 대통령이라 평가한 노무현 정권에서도 이어져 법으로는 1주 노동시간이 40시간으로 줄었는데도, 행정해석상 노동시간은 오히려 더 늘어나 최소 68시간 정도는 문제가 안 되는 기괴한 현실을 만들어

냈다. 노무현 정권에서 주 5일제는 하루 8시간씩 1주 5일 동안 일하고 나머지 2일은 쉰다는 인간의 상식이 아니라, 근기법의 노동시간 제한은 1주 5일에만 적용되고 나머지 2일에는 적용되지 않으니 미적용 2일 동안에는 자본가가 노동자를 마음껏 착취할 수 있다는 관료적 행정해석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렸다. 주40 노동시간제는 문제의 행정해석이 “헌법과 근로기준법에 반하므로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청와대 문서 한 장으로 해결할 수 있다.

넷째 과제는 비정규직의 부당한 사용을 철폐하고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다. 2005년 노무현 정권에서 비정규직 관련법 논의가 한창일 때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시한 기준이 있다. 예컨대 △기간제 남용 방지를 위해 사용사유를 제한하고 △동일노동ㆍ동일임금 원칙을 명시하고 △파견허용 업무에 포지티브 방식을 유지하고 △파견근로자, 즉 비정규직의 노동 3권을 명시하자는 것이다. 이것을 뼈대로 하되 지난 12년 동안 발전된 논의를 반영한 비정규직의 부당한 사용 금지와 차별 금지를 위한 입법과 행정이 이뤄져야 한다.

다섯째 과제는 노동행정 사업과 기관에 대한 과감한 혁신이다. 일선 현장 근로감독관은 크게 부족한데, 사무실 책상에 앉아 복지부동하고 있는 공무원들은 없는지 철저하게 평가해 업무조정과 전환배치 등을 통해 노동행정 서비스 제공에서 혁신적인 변화를 꾀해야 한다. 특히 5급 이상 관료에 대한 평가를 엄격하게 실시해 관련 업무의 효과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무엇보다 기능과 역할이 겹치는 기관을 효과적으로 통폐합하고 인력을 효율적으로 조정해 세금과 기금의 낭비를 막아야 한다.

근로기준법의 모든 사업장 적용, ILO 협약 87호·98호 비준과 노동 3권을 가로막는 하위법령 개폐, 주 40시간 실현을 가로막는 행정해석의 즉각 폐지, 부당한 비정규직 사용 금지와 차별 철폐를 위한 법·제도 개혁, 노동행정 서비스 관련 제도와 인력의 과감한 개혁이 이뤄질 때 대한민국은 노동존중 사회로 한걸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노동회의소 설립 논의와 관련해 드는 우려는 관련 논의가 위에서 밝힌 노동개혁을 촉진하는 긍정적 역할을 하지 못하고, 하루빨리 실현해야 할 노동개혁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들을 뒤로 물러나게 만들고, 노동회의소 자체가 논쟁의 중심이 되는 사태가 도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노동회의소 법제화를 둘러싼 논쟁으로 새 정부의 처음 한두 해가 무의미하게 흘러가 버릴 수도 있다.

한국적 상황에서 노동회의소 문제는 이해관계 대표·대변의 관점이 아닌 노동행정 서비스 기관에 대한 과감한 혁신사업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노동회의소가 하려는 기능과 역할 가운데 기존 기관과 제도에서 하는 것들이 태반이다. 기존 제도와 기관에 대한 구조조정과 혁신을 통해 효과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우선이지, 새로운 기관과 제도를 따로 만드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다. 무엇보다 '대변·대표'라는 미명하에 법률적으로 가입을 강제하는 것은 자유민주적 원리에 위배된다. 이런 점에서 새 정부 5년은 노동회의소를 포함해 노동자를 위한 대표·대변제도(representative system)에 대한 폭넓은 연구와 토론을 하는 기간이면 족하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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