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용 사무금융노조 하나금융투자지부장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으로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 지난해 10월부터 전국 광장을 밝힌 촛불이 거둔 성과다. 이제는 촛불혁명의 정신을 대선 국면에 녹이는 방식을 고민할 차례다. 노동계는 노동의제가 대선 공약이 되길 바란다.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정부를 구성하자는 말이다. 1987년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넥타이 부대' 사무금융 노동자들이 폐기해야 할 적폐와 차기 정부 과제에 관한 글을 <매일노동뉴스>에 보내왔다. 네 차례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1980년대 과학잡지들은 다음과 같이 미래를 그렸다. 도시는 눈부신 인텔리전트빌딩들로 가득 차고 그 사이를 공중부양 자동차가 자유롭게 이동하며 사람들은 SF영화에서나 볼 법한 전신타이즈와 고글을 착용한 채 첨단문명의 혜택을 마음껏 누린다. 당시 학교에서도 로봇과 통신기술 발달로 인간은 노동에서 해방돼 풍요로운 세상을 맞이할 것이라는 희망을 학생들에게 의심 없이 전달했다. 일하지 않아도 마음껏 물질세상을 누릴 수 있다는 로망이 자라났다.

어느 날 TV와 전화기가 모든 가정에 보급되고 삐삐가 나오더니 곧이어 휴대전화가 일상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지배층의 사고가 녹아든 교과서에서 약속한 노동해방 세상이 금세라도 실현될 듯했다. 휴대전화뿐만 아니라 자동차마저 모두에게 보급되다시피 한 세상은 이미 유토피아나 다름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왜 이리 분주해져만 가고 여유가 없어지고 있을까. 분명 가진 것은 과거보다 현저히 많아졌는데 여유시간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과거의 장밋빛 전망들이 대부분 사기극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부분 문명 이기들은 노동자 민중을 위해 운용되기는커녕 지배층의 강력한 지배 또는 통제수단으로 순식간에 전락했기 때문이다. 내연기관을 가진 자동차는 운송편의보다는 무기를 만드는 데 이용돼 폭력적 지배력을 광범위하게 행사했다. 반도체를 기반으로 한 정보기기나 전파를 이용한 통신기기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단순한 혜택으로 보였지만 점차 우리의 삶을 지배하거나 구속하는 수단으로 변질됐고 급기야 강력한 지배도구가 됐다.

카카오톡이 등장했을 당시 커뮤니티 형성의 편의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만큼 순식간에 퍼져 갔다. 간편한 그룹채팅과 신속한 사진전송, 다양한 부가기능은 오락적인 요소를 배가했고 국민은 환호했다. 하지만 즐기는 것도 잠시, 곧이어 노동자를 속박하는 도구가 됐다. 결국 카톡은 노동자로 하여금 사용자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해 버렸다. 친구와 함께 있어도, 운동을 하고 있어도, 가족과 잠자리에 들어서도 늘 우리 곁에 머물면서 사용자의 통제력을 여지없이 행사한다.

카톡을 통한 엄청난 정보량도 노동자에게는 부담이다. 회사 관련 메시지들이 다양한 커뮤니티를 통해 쏟아질 때 하나라도 놓치게 된다거나 적절한 응답을 하지 않는다면 회사에 무관심하고 개인주의에 함몰된 자라는 눈총을 받는다. 심지어 애사심마저 결여된 직원이라는 딱지까지 붙을 지경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어찌 카톡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드디어 '퇴근 후 카톡'은 노동자의 '개 목줄'이 됐다. 카톡을 포함한 SNS가 노동자 지배수단으로 변질될 것이라는 예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회자돼 왔다. 그럼에도 노동자의 자유를 일방적으로 구속하는 행태가 버젓이 관행화돼 버린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노동자 개인이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자유를 갈구하는 혁명의 역사가 웅변하듯이 지배층의 그릇된 의도를 깨뜨리려면 노동자 중심의 강력한 집단적 대응이 필요하다. 노동자의 힘으로 입법을 통해 자유를 보호하고 지배층의 의도를 근절해야 한다.

탄핵은 인용됐고 조기 대선이 실시된다. 노동자는 탄핵정국을 이끈 주역이었기에 정당한 요구를 관철할 권리를 가진다. '퇴근 후 카톡'이라는 SNS가 노동자 자유를 구속하는 현실을 타파하는 것은 물론 각종 첨단기기를 통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태를 전면적으로 검토해 규제하는 강력한 법안을 수립해야 한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몸속에 심는 반도체 칩이라는 아이디어가 상용화 단계에 와 있다. 조만간 SNS보다 더욱 가공할 만한 노동자 민중의 억압과 착취 수단으로 등장할 공산이 크다. 결국 노동자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 더욱 광범위한 투쟁전선을 펼쳐야 할 숙명적 과제를 갖고 있다. 지체하다가는 헤어나지 못할 멍에를 스스로 뒤집어써야 할 위기에 처해 있다. 카톡이라는 달콤함이 족쇄가 돼 나타난 것은 매우 좋지 못한 징조다.

사무금융 노동자들은 조기 대선 정국을 맞이해 '퇴근 후 카톡'을 통해 노동자 자유를 짓밟는 행태를 원천 차단할 것을 대선후보들에게 강력하게 요구한다. 전술한 대로 사용자를 위한 통제도구는 궁극적으로 지배층의 강고한 권력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선후보들은 '퇴근 후 카톡'이 아니라 충분한 휴식과 안정을 통해 재충전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사용자의 일방적 폭주를 막겠다는 의지를 비추고 실천해야 한다. 이를 통해 과거 국정교과서에서 지배층이 약속한 첨단 과학기술을 통한 노동해방 세상이 하루빨리 도래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와 같은 의지와 정책을 가진 대선후보라면 사무금융 노동자들이 뜨거운 지지로 답변할 것은 자명하다. 대선후보들이여! '퇴근 후 카톡'을 빙자한 억압의 족쇄를 부수고 자유를 지키려는 사무금융 노동자의 절규에 귀 기울일 것을 재차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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