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우 변호사(민변 노동위원회)

1. 헌법재판소(헌재)는 2017년 3월10일 오전 11시21분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결정했다(2016헌나1). 그 즉시 박근혜는 대통령에서 ‘前 대통령’으로 전락했다. 헌재는 세 차례 변론준비기일과 17차례 변론기일을 진행했다. 각종 서증조사와 26명에 대한 증인신문, 19건의 사실조회와 이에 대한 70개 기관과 기업 회신 등을 종합해 인정된 사실을 기초로 위와 같은 파면결정을 했다.

2. 먼저 헌재는 탄핵소추사유가 특정되지 않았고, 국회에서의 탄핵소추 의결절차가 위법하며, 8인 재판관에 의한 탄핵심판 결정은 할 수 없다는 피청구인측 주장을 모두 배척하면서 탄핵심판청구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다음으로 헌재는 박근혜가 공무상 비밀이 포함된 국정 문건(연설문이나 ‘말씀자료’에 한정되지 않고 대통령의 일정, 외교·인사·정책 등에 관한 내용 포함) 유출을 대통령 취임 이후 3년 이상 지속적으로 지시하거나 묵인한 것은 물론 이 과정에서 최순실의 의견을 비밀리에 국정운영에 반영했고, 김종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차은택 창조경제추진단장, 차은택의 은사 김종덕 문광부 장관, 차은택의 외삼촌 김상률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등 최순실 추천에 의한 다수 공직자 임명을 주도했으며, 더욱이 박근혜가 미르와 케이스포츠재단·더블루케이·플레이그라운드 등을 통해 최순실의 사적이익 추구에 적극 개입해 이를 지원하고, 심지어 개별 기업의 인사와 광고대행사 선정, 납품계약 주선에까지 깊숙이 개입했다는 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헌재는 이와 함께 박근혜의 위와 같은 행태가 일시적·단편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장기간 적극적·반복적으로 이뤄졌고, 특히 대통령 지위를 이용하거나 국가의 기관과 조직을 동원했다는 점에서 그 법 위반의 정도가 매우 엄중하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이에 따라 박근혜의 위와 같은 행태와 이러한 사실을 철저히 은폐한 것은 대의민주제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하는 행위로서 대통령의 공익실현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것이고, 사정이 이러함에도 박근혜가 대국민을 상대로 진실성 없는 사과를 하거나 청와대 압수수색을 거부하고 나아가 검찰과 특검 수사 수용 약속을 어긴 언행 등에 비춰 보면 박근혜에게서 헌법수호 의지를 발견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면서 이와 같은 박근혜의 헌법과 법률 위배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행위로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행위라고 판단했다. 결국 헌재는 박근혜를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수호의 이익이 박근혜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하면서 박근혜에 대한 파면결정을 했다.

3. 한편 헌재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박근혜의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을 인정하지 않았고 헌법상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위반 여부는 그 자체로 소추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관 김이수·이진성은 보충의견에서 위 사유와 관련해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위반 여부에 대하여는 이것이 소추사유가 될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 당시 상황의 중대성과 급박성 등을 고려할 때 그에 대한 박근혜의 대응은 현저하게 불성실해 헌법상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및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다만 이 사유만으로 파면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4. 헌재의 결정문 한 장 한 장을 읽는 동안 분노가 치밀고, 허탈하기까지 했다. 국민이 5년 동안 잠시 위탁한 권한을 전체 국민의 안녕과 복지를 위해 신중하고 엄중하게 행사해도 모자랄 판에 한 줌의 세력에게 몽땅 헌납하고, 사익 추구를 공모했음이 헌재 결정으로 공식 확인됐다. 또한 헌재는 박근혜의 헌법과 법률 위배행위 그 자체는 물론 그것이 알려진 이후 박근혜가 보여준 ‘대국민 사기극’도 엄중하게 꾸짖었다. 박근혜에 대한 파면결정을 낭독한 이정미 재판관은 국민의 명령을 대독했을 뿐이다. 결국 이번 파면결정은 국민주권주의 등을 중대하게 훼손한 박근혜에 대해 국민 스스로 위와 같은 헌법적 가치를 바로 세운 결과물이다. 다만 이번 헌재 결정은 특검의 수사 결과를 반영하지 못한 관계로 재벌의 범죄행태에 대한 법률적 평가에서 한계를 드러냈고, 더욱이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는 대통령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전혀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파면사유에 해당함에도 이를 파면사유에서 제외하는 한계를 보였다.

5. 이제 박근혜는 헌재의 파면결정을 인정하고 국민 앞에 즉각 사죄해야 한다. 대선은 탄핵정국에서 확인된 권력(정치·재벌·언론·사법·행정 등)의 적폐를 청산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검찰은 대선과 관계없이 박근혜와 그 부역자들은 물론 공범인 재벌에 대해 강제수사를 포함한 엄중수사에 즉각 나서야 한다. 권력자들의 중대범죄에 대한 응분의 처벌만이 올바른 미래를 예비할 수 있다. 헌재의 파면결정이 남긴 숙제이자 여전한 국민의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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