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석호 노동운동가

오늘 글의 주제는 며칠 전에 확정한 상태였다. 한데 막상 쓰려니까 막막했다. 컴퓨터 자판에 좀체 손이 올라가지 않았다. 망할 대한민국, 무기력하고 본질을 비켜 가는 노동운동, 절망스럽다 못해 짜증이 솟구쳤다.

교육공무직의 채용 및 처우에 관한 법률(교육공무직법) 제정안이 지난달 28일 유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의로 국회에 상정됐다가 이달 17일 철회됐다. 교육공무직법은 37만명의 학교비정규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만들자는 취지의 법안이었다.

법안 철회는 교사, 교육공무원, 교사·공무원 지망생의 반발 탓이다. 법안을 발의한 의원실 등엔 수만 개의 반대 및 악성댓글이 달렸다.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배동산 정책국장의 페이스북 글에 따르면 주요 반대논리는 다음과 같다.

"시험도 안 본 사람이 교사·공무원이 되려 한다. 호봉제 도입은 교육공무직의 처우를 공무원에 준하게 하는 거라서 안 된다. 학교비정규직 처우가 개선되면 예산이 들고, 결국 교사·공무원 처우가 나빠지고 정원이 줄어든다."

비정규직의 처우개선과 정규직화에 동의하지만 내가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면 반대한다는, 한국 사회의 이기적이고 파편화된 속살을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다. 이런 실태를 단적으로 보여 준 이들이 기간제 교사다. 자신의 처우는 개선돼야 하고 또 정규교사가 돼야 하는데, 학교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되는 것에는 반대했다. 이게 대한민국 구석구석까지 횡행하고 있는 실재다.

배동산 국장을 비롯한 학교비정규직 단위는 "교사와 공무원은 손해를 안 본다. 우리는 공무원이 되려는 게 아니다"며 해명하고 설득했다. 반대를 무마해야 법안 통과가 가능하기에 당연한 행보였다. 그럼에도 해명과 설득 논리를 나는 여기에 소개할 생각이 없다. 근본 판단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수가 균등한 삶을 누리려면 소수는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누군가의 집회·행진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해도 민주주의를 선택하듯, 소수가 손해를 볼 수 있어야 다수가 이득을 얻는 것이 평등이다. 더구나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하늘과 땅 차이인 대한민국에서는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정규직이 손해를 감당해야 한다. 그것 없이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하자는 주장은 하나 마나 한 소리다.

이렇게 말하면 노동운동 일부는 이렇게 반발한다.

"왜 정규직이 손해 보느냐. 정규직 양보론이다. 재벌에게 빼앗아 해결해야 한다. 정부 정책으로 풀어야 한다."

그렇게만 주장하는 이들에게 그만한 실력이 있는지는 둘째 치고, 좋다. 재벌 재산을 다 뺏는다고 치자. 그래 봐야 일부는 해결할 수 있으나 전체를 해결할 순 없다. 정책으로 푼다는 것은 무엇인가. 재원을 만들기 위해 세금을 대폭 인상해야 한다. 결국 임금을 더 받는 정규직이 그만큼 많이 부담해야 한다. 손해를 보는 것이다.

나 또한 재벌에게 내놓으라 하고 정책으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실천한다. 그게 핵심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안 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를 풀려면 정규직이 손해 볼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상층노동자가 사회구조 재편을 반대하는 반동으로 돌아서는 상황을 고통스럽게 목격하게 될지도 몰라서다.

교육공무직법 좌초라는 충격적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노동운동은 흥분하지 않는다. 교육공무직법은 대한민국 비정규직 문제를 푸는 물꼬다. 해당 단위에만 맡겨 놓을 사안이 아니다. 그런데 조용하다. 노동운동의 본령은 평등 아닌가. 짜증이 솟구친 이유다. 내 얼굴에 침 뱉는 짜증이었다.

노동운동가 (jshan896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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