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로를 살해하는 638가지 방법’은 2006년 11월 영국의 공영방송 ‘채널4’가 만든 다큐멘터리 필름 제목이다. 쿠바 혁명으로 1959년 1월1일 친미 우익 독재자 풀헨시오 바티스타(1901~1973)가 축출되고 피델 카스트로(1926~2016)가 이끄는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섰다. 이때부터 미국 중앙정보부(CIA)는 쿠바 지도자 카스트로를 살해하기 위한 비밀작전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시가 담배를 즐긴 카스트로의 취향을 고려해 CIA는 독을 묻힌 담배와 폭약을 넣은 담배를 만들었다. 카스트로의 다이빙 취미를 반영해 세균이 가득한 잠수복을 선물해 피부병과 결핵으로 치명타를 가하려 했다. 바닷속에 부비트랩도 설치했다. 조개에 폭탄을 넣고 화려한 색칠을 해서 다이빙한 카스트로의 눈에 띄게 한다는 웃기는 구상이었다. 영화에서 보던 마피아 스타일의 총격 암살과 공공장소 폭탄 테러도 시도됐다.

CIA는 목숨을 노린 암살에 더해 대중적 명성과 정치적 권위를 훼손하려는 공작을 꾸미기도 했다. 카스트로의 상징인 턱수염을 없애려 납·수은보다 독성이 강한 탈륨 소금을 만들어 먹이려 했고, 라디오 방송 때 정신을 혼미하게 해서 횡설수설하도록 만들려 스튜디오 안에 환각제를 끈으로 묶어 두기도 했다.

이 와중에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59년 혁명 직후 카스트로는 아바나에서 독일계 미국인 마리타 로렌조(39년 독일 브레멘 태생)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둘의 관계는 얼마 못 갔고, 마리타는 임신중절을 한 후 미국 플로리다로 갔다가 CIA에 공작원으로 포섭됐다. 카스트로의 음식에 독약을 넣으라는 지령을 받은 마리타는 아바나로 돌아와 카스트로를 만났으나, 공작 임무를 수행하지 않고 쿠바를 떠났다. 그놈의 사랑이 문제였다. 마리타는 63년 11월 발생한 케네디 대통령 암살에 연루된 리 하비 오스왈드(1939~63)와 만나기도 했으며, 미국 연방수사국(FBI)을 위해 일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CIA는 미국에 반대한 국가 지도자를 처치한 경험이 많다. 콩고 독립운동의 지도자이자 독립정부 초대 수상이었던 파트리스 루뭄바(1925~1961)가 대표적이다. 쿠바혁명 다음해인 60년 6월 콩고는 벨기에로부터 독립했다. 하지만 서른여섯 살의 청년 수상 루뭄바는 그해 9월 일어난 군사 쿠데타로 실각당했고 61년 1월 처형됐다. 그 배후에는 CIA의 음모와 공작이 도사리고 있었다.

카스트로 제거와 관련해 가장 유명한 사건은 61년 4월 일어난 피그만 침공이었다. 침공 목표는 혁명 지도자인 피델 카스트로와 그의 동생 라울 카스트로, 그리고 체 게바라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침공의 최초 계획은 공화당 소속 아이젠하워 대통령(53년 1월부터 61년 1월20일까지 재임) 시절 수립됐다. 닉슨을 꺾고 대통령이 된 민주당 소속 케네디(1917~1963)는 주저했지만, 작전을 중단시키진 못했다.

CIA에서 군사훈련을 받은 1천400명의 쿠바 망명자들은 해상과 공중을 통해 쿠바 남부로 침투했다. 심지어 미 공군의 B-26 폭격기 여덟 대가 쿠바 공항을 공습했다. 케네디의 소극적 태도로 미국의 군사 지원은 확대되지 못하고, 침공은 일주일 만에 대실패로 막을 내렸다. 침공군 수십 명이 사살되고, 1천200명이 포로가 됐다. 포로들은 62년 12월 미국 정부가 쿠바 정부에 5천300만달러를 지불한 뒤에야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59년 혁명 전의 쿠바는 카지노와 도박, 마약과 매춘으로 유명했다. 춤과 음악과 시가, 그리고 포르노 영화도 인기를 끌었다. 최대 관광객과 소비자는 중상류층 미국인들이었다. 미국 마피아들도 쿠바 유흥가로 진출했다. 이들과 결탁한 쿠바의 지배층은 금융기관을 악용해 민중의 등골을 빨아 댔다. 카스트로 혁명정부는 권력을 장악하자마자 바티스타 독재체제의 상징인 카지노부터 폐쇄했다. 외국인이 소유한 자산은 국유화됐다.

지난 25일(현지시간) 구십 세를 일기로 피델 카스트로가 죽었다. 국제적으로 그는 남아프리카의 넬슨 만델라,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의 친구였다. 또한 중국의 모택동과 주은래, 북한의 김일성, 인도의 자와할랄 네루,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와 동지적 관계를 유지했다. 그의 임종과 더불어 제3세계 민족해방혁명의 한 시대가 저물었다. 물론 반미 국가 전복과 지도자 암살을 위한 CIA의 작전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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