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9.10.20 일 08:00
상단여백
HOME 피플ㆍ라이프 인터뷰
[미국 적정임금 권위자 피터 필립스 교수] "적정임금제, 산재사고·임금체불 만연한 건설현장 바꾸는 계기 될 것"
▲ 구태우 기자

“지저분한 방을 청소하려고 하면 너무 지저분해서 그대로 놓아 두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런데 청소를 끝냈을 때를 생각해 보자. 방이 깨끗해진 게 한눈에 들어와 후련할 거다. 적정임금제는 건설업에서 메스 역할을 할 것이다. 불법이 판치는 건설업이 투명해졌을 때 생기는 효과는 엄청나다.”

피터 필립스(72·사진) 미국 유타대 교수(경제학)는 미국에서 85년 동안 운영된 적정임금제 효과를 확신에 찬 표정으로 설명했다. 노동경제학자인 필립스 교수는 30여년간 건설산업과 건설노동을 연구한 전문가다. 스승의 제안을 받아들여 이 분야를 연구하기 시작한 그는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적정임금 권위자다. 적정임금과 관련해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미국은 1931년 제정된 데이비스-베이컨법(DBA)에 따라 30개 주에서 적정임금제를 운영하고 있다. 연방정부 예산이 2천달러 이상 투입된 공공공사의 경우 연방정부가 정한 적정임금 이상을 건설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한다. 적정임금제도는 1868년 1일 8시간 근무제가 연방정부의 원칙이 되면서 노동시간단축에 따른 임금저하를 막기 위해 고안됐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건설산업연맹에서 필립스 교수를 만나 한국 건설산업에 적정임금제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를 물었다. 최근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는 이변이 펼쳐진 만큼 미 대선에 관한 이야기도 나눴다.

“민간 건설시장 저임금 견인하는 적정임금제”


- 미국에서 적정임금제는 어떻게 운영되나.

“적정임금제도는 기록과 법 준수, 신고가 중요하다. 적정임금은 공사 단계부터 반영된다. 건설노동자에게 적정임금 이상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하도급을 거쳐도 임금이 깎이지 않는다. 사용자는 노동부가 고시한 적정임금을 노동자에게 줘야 한다. 지급 여부는 기록으로 남긴다. 건설노동자는 임금을 받지 못할 경우 임금을 체불한 건설사를 신고한다. 해당 건설사는 공공공사를 맡지 못한다. 이 같은 과정은 정부가 운영하는 웹사이트를 통해 관리된다.”

미국 연방정부는 노동부 산하 5개 기관이 주별로 조사한 적정임금을 취합해 공사 종류별로 임금을 결정한 뒤 웹사이트에 공표한다. 적정임금제가 운영되는 공사현장에는 “귀하는 표에 실린 적정임금 이상을 받고, 40시간 이상 일했을 경우 기본급의 1.5배 추가 수당을 받습니다”는 내용의 포스터가 붙어 있다. 적정임금제의 시급은 어떤 주(州)인지, 어떤 직종인지에 따라 다르다. 기본 시급은 40달러 이상이다.


- 적정임금제를 도입하지 않은 주가 20곳이나 된다.

“적정임금제도가 도입되지 않은 주는 농촌지역이나 경기가 침체된 지역이다. 대부분 남부지역이다. 대규모 건설공사나 공공공사가 없는 지역일수록 제도가 없고, 경제활동이 활발한 지역에서는 적정임금이 도입돼 있다. 미주리를 비롯해 일부 주에서 적정임금제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트럼프 정부에서 폐지 시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DBA법이 제정된 이후 1931년부터 73년까지 미네소타를 포함한 33개 주가 적정임금제를 도입했다. 79년부터 88년까지 루이지애나 등 9개 주가 제도를 폐지했고, 최근에는 2개 주에서 제도를 없앴다. 적정임금제를 새로 도입하는 주도 생겨나 현재는 30개 주에서 적정임금제도를 운영 중이다.


- 적정임금제가 민간공사의 임금에 영향을 미치나.

“적정임금제는 건설노동자의 숙련도 향상을 추구한다. 교육기관에서 건설노동자를 훈련시키고 숙련도를 높여 공공공사의 품질을 좋게 만든다. 공공공사 현장에서 일한 노동자는 민간공사 현장에서도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는다. 적정임금제가 건설업의 임금인상을 견인하는 셈이다.”

“건설사 반발 두려워 적정임금 도입 늦춰선 안 돼”


- 한국 재계는 최저임금제 대신 산업별 최저임금을 만들자고 요구하는데.

“최저임금법은 전체 노동시장을 규제하는 법이다. 맥도날드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을 보호하려면 최저임금이 필요하다. 최저임금은 노동시장을 보다 공정하게 만든다. 적정임금제도는 노동시장을 규제하자는 게 아니다. 정부 예산이 투입된 공공공사에서 적정임금을 지급해 공사 품질을 높이자는 것이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적정임금제가 필요하다. 그동안 적정임금제를 도입한 주가 없는 주보다 공사금액이 더 드는지 여러 차례 세밀하게 연구했다.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고, 생산성이 올라간다. 적정임금제가 있어도 공사금액 차이는 없었다. 오히려 적정임금제가 없는 현장에서 공사기간이 늘어나고 완공 후 보수하는 일이 발생했다.”


- 한국 건설업은 하도급 구조가 복잡하다. 이런 특성을 가진 시장에서 적정임금제를 도입할 수 있다고 보나.

“적정임금제가 도입되면 원청과 하청 모두 웹사이트에 임금명세서를 올린다. 노동부는 임금이 제대로 지급됐는지, 건설노동자들이 몇 시간을 일했는지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청업체 임금체불 문제로 노동자들이 원청업체를 신고할 수 있기 때문에 원청도 하청을 관리해야 한다. 한국은 건설노동자의 퇴직공제부금을 위해 건설현장에 전자카드시스템을 도입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전자카드를 활용할 수도 있다. 정부가 공사에 참여한 원·하청 모두에게 임금체불 책임을 묻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 한국 정부에 조언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적정임금제도는 건설노동자의 생산성을 높이고, 건설현장을 투명하게 만든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건설공사는 부패하기 쉽다. 적정임금은 이런 어둠의 건설업에 빛을 드리운다. 건설업이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그대로 둔다면 건설산업의 효율성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건설현장이 더 위험해지고 생산성은 더 떨어진다. 반면 건설업에 메스를 대서 고칠 수만 있다면 그에 따른 보상이 엄청나다. 정부 세수도 늘어난다. 하도급이 투명해진다. 미국의 건실한 건설회사는 적정임금제를 지지한다. 숙련공을 데리고 일할 수 있고 품질경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설업을 저임금 노동자와 불법 건설회사가 판치는 시장으로 그냥 둘 것인가, 아니면 건설업의 이런 문제를 바꿀 것인가. 한국 정부와 정치권이 이 문제에 답해야 한다.”

“트럼프 당선, 매카시즘만큼 격랑일 듯”


- 트럼프 후보 당선을 두고 하층민 반란이라는 평가가 있다.

“트럼프는 클린턴 후보보다 100만표 이상 뒤졌지만 선거인단 득표에서 앞서 당선됐다. 미국 노동계급이 클린턴이 아닌 트럼프를 지지한 데에는 인종적인 원인보다 경제적인 원인이 더 컸다. 미국은 세계경제 주도권을 잃었고 오랫동안 저성장을 했다. 1970년부터 약 25년 동안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이 매년 오르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가 일어나기 오래전부터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거의 오르지 않았다. 여성들이 남편의 부족한 수입을 벌충하기 위해 경제활동을 했다. 그럼에도 수입은 줄었고 채무는 늘어 생활수준이 나아지지 않았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경제정책으로 싸우기보다 낙태·동성결혼·종교 이슈를 놓고 싸웠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경제침체가 얼마나 심각한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 당선자 지지자 중 상당수는 오바마 지지자들이었을 것이다.”


- 트럼프 정부에 대한 우려가 있다면.

“트럼프는 불법이민자(미등록이주민)를 추방할 것이라고 밝혔다. 1천100만명에 달하는 불법이민자를 추방하는 데 미국인이 동의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는 없겠지만 트럼프가 선거운동 기간에 말한 것처럼 이민자를 위협하지는 않을 거 같다. 트럼프 당선자는 미국의 인종주의를 부추길 것이고 미국인의 절반 이상은 백인이 아닌 만큼 인종주의에 저항할 것이다. 미국인들은 트럼프가 인종주의자라서 찍은 게 아니라 그가 인종주의자임에도 (경제적인 이유로) 투표했다. 트럼프 당선의 영향은 1950년대 매카시즘만큼 미국 사회에 영향력을 미칠 것이다. 게다가 상·하원 선거까지 승리해 행정부와 의회 모두 공화당이 장악했다. 이건 굉장히 드문 일이다.”

구태우  ktw9@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태우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