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영 인더스트리올 아태지역 전력네트워크 의장

고용위기는 누가 심화시키고 있는 것일까. 비정규 노동자의 피눈물을 외면하고 ‘귀족노조’를 앞세워 일자리를 독식하고 고임금과 평생고용을 향유하고 있다는 정규직 노동자일까. 아니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최악의 소득분배로 노동자들의 임금을 지속적으로 축소시키는 대신 수백조원의 기업이윤을 곳간에 채우고도 모자라 한 끼 식사비도 안 되는 최저임금에 목을 매면서 해고의 자유를 달라고, 임금을 줄이고 비정규 노동을 확대해 달라는 재벌기업들의 문제일까. 필자는 이 고용위기의 핵심 원인이 일차적으로 ‘노동’을 도외시한 정부 정책에 있다고 생각한다.

전국의 검침노동자들이 정부의 원격검침 확대정책에 반발하고 나섰다. 에너지 신산업 확산을 앞세운 정부는 2022년까지 1조5천억을 투자해 지능형검침 인프라(AMI·Advanced Metering Infrastructure) 구축을 통해 원격검침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전기검침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은 AMI 확대정책이 일자리를 분명히 위협하고 있는데도 이에 대한 대책 없이 정책을 강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격검침 인프라 확대정책은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각 가정의 전기뿐만 아니라 가스와 수도, 난방과 온수 사용량을 실시간으로 측정·계량하고 이를 활용해 다양한 서비스를 구축하겠다는 정책이다. 공공서비스를 더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의 진보이고 정책의 전환이겠지만, 그럼에도 보다 더 중요한 고용정책을 정부가 도외시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80년대 시청료 거부 사태에서 비롯된 통합검침 정책으로 외주화된 검침노동자의 지난한 노동과정과 굴곡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대책으로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인 것이다.

단지 전기검침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도와 가스, 난방과 온수 등 일반가정에서 사용하고 있는 공공서비스의 검침노동 대부분이 원격검침 인프라에 흡수되면서 전체 검침노동자의 일자리를 위협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한편으로는 AMI가 양질의 공공서비스를 위한 정책이라기보다는 전력산업을 민영화해 경쟁체제로 재편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전력산업 전반적으로 고용의 위축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고용의 축소는 비단 전력산업에만 있는 게 아니다. 마사회에서 마권 발매를 담당하고 있는 노동자들 또한 자동발매기와의 힘겨운 고용전쟁을 치러 내는 중이다. 주당 16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으로 인해 생계는커녕 4대 보험을 비롯한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권리조차 소외받고 있는 열악한 조건 속에서 노동을 해 왔는데, 이제는 이마저도 자본에 밀려 일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는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공공부문에서 자본의 대체로 인해 고용이 축소되는 상황은 몇몇 산업이나 부문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고속도로의 하이패스, 철도와 지하철의 자동발매와 집표·검표 시스템, 버스의 전자카드 시스템, 금융서비스 분야의 텔러와 셀러업무 등 많은 공공서비스 영역에서 자본이 일자리를 대체해 왔고 또 끊임없이 대체되고 있다.

그동안 기술 발전으로 인한 일자리 축소는 대부분 제조업 분야에서 크게 나타났으며, 이를 보완해 온 것은 공공서비스를 포함한 서비스 분야 일자리 확대였다. 그러나 최근 급속한 정보통신기술 발달이 서비스산업 일자리조차 자본의 대체를 빠르게 이뤄 내고 있는 것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효율성을 앞세운 공공서비스의 경쟁체제가 일자리 축소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이다. 한때 필자의 직장인 한전에서도 고객 상담창구를 축소하는 대신, 요금고지서 재발행과 수납업무 등 창구업무 일부를 자동화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다행히 시범사업 단계에서 노조의 문제제기와 고객불편 등의 사유로 중단되기는 했지만 공공부문에서의 일자리 축소는 지금도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중심노동(정규 노동)를 축소시키고 주변부 노동(비정규 노동)을 확대해 노동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는 곳 또한 공공서비스 분야다. MB 정부의 공공부문 선진화 정책으로 5년 동안 공기업 정규직 일자리 2만개 이상이 사라졌다. 그 자리를 비정규·외주 노동자가 채웠다. 최근 공공부문 기능조정 또한 민영화와 사업축소를 핵심으로 하고 있어 전체적인 일자리 축소가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개혁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정부, 그러나 정부가 사실상 사용자인 공공부문에서조차 효율과 경쟁을 내세워 일자리를 자본으로 대체하고, 중심노동의 축소를 지속하는 한 고용 위기는 심각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부 스스로 고용축소와 이중노동시장을 확대시키면서도 이율배반적으로 고용위기의 모든 문제를 단지 정규직 노동자들의 부도덕으로 몰아붙이며 노동개혁으로 해소하겠다고 나서는 한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뿐이며, 나아가 ‘헬조선’이 현실화되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다.

인더스트리올 아태지역 전력네트워크 의장 (peoplewin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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