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소선 어머니가 영면하신 지 올해로 5주기를 맞았다. 살아생전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로, 이 땅 노동자들의 어머니로 고난의 삶을 살아오신 이소선 어머니. 어머니의 한결같은 바람은 “뭉쳐야 산다. 그래야 이긴다”였다. <매일노동뉴스>는 30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리는 ‘이소선 어머니 5주기 토론회’를 앞두고 6회에 걸쳐 연속기고를 게재한다.<편집자>
 

나지현 전국여성노조 위원장

이소선 어머니 5주기에 여성노동자들의 마음을 전하는 글을 쓰게 됐다. 글을 의뢰받고 써 보겠다고는 했으나 이소선 어머니와 개인적으로 가깝게 뵌 적도 별로 없고 하여 사실은 걱정이 더 많았다. 물론 집회 단상에서 말씀하시는 걸 듣기는 했다. 유일하게 가깝게 뵌 때가 마석 모란공원에 갔다가 "더 거동을 못하기 전에 둘러보러 오셨다"며 부축을 받고 다리를 절룩이며 천천히 걸어가시던 모습이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이소선 어머니의 부고를 접했다.

그래서 어머니의 기록영화를 보는 것으로 글을 쓸 준비를 하기로 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어두운 골목길을 계속 다른 사람들이 돌아가며 팔을 끼거나 부축하며 걸어가는 뒷모습이었다. 운신을 못하는 몸을 계속 다른 이들에게 맡기며 오가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바로 어머니의 삶과 같다고 느껴졌고, 엔딩에서 다시 다른 이들과 팔을 끼고 걸어가는 모습이 큰 울림을 줬다. 그런데 마침 비슷한 시기에 여성노동운동사 교육을 부탁받고 이소선 어머니의 역사와 거의 일치한다는 생각에 함께 준비하게 됐다.

정읍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아직 가시지 않은 여름의 폭염을 내장산 입구의 바람으로 조금 달래고 나서 기다리고 있던 조합원들을 만나 교육을 했다. 우리나라 여성노동운동사는 멀게는 100년이 다 돼 가는 1920년대에 임금인하 반대와 일본인 감독의 인권유린에 항의하며 아사동맹을 맺고 싸우는, 후배들의 가슴을 울리는 투쟁에서 시작한다. 70년대와 80년대의 동일방직과 YH노동조합으로 이어지는 선배노동자들의 삶과 투쟁, 비정규직과 저임금으로 상징되는 오늘의 여성노동자들의 현실과 투쟁에 이르기까지 함께 돌아보고 함께 그 현장을 느끼고 우리가 만들어 나가고 있는 역사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여성노동운동사라고 해서 여성만 등장하지는 않는다. 남성들도 몇이 등장하는데 보통 악역이 많다. 그러나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등장하고 그를 빼놓고는 여성노동운동의 역사를 그릴 수 없는 이가 하나 있다. 몇 번을 이야기하고 몇 번을 들어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이가 있다. 그가 바로 ‘전태일’이다. 이번에는 전태일과 함께 이소선 어머니의 이름을 함께 올렸다. 나이 어린 여성노동자들이 아프고 죽어 나가지 않게 자신의 몸을 불사른 전태일은 친구들과 미지의 대학생보다는 어머니를 믿고 일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시작은 전태일이었지만 그 뜻을 따라 활동한 사람은 이소선 어머니셨다. 그 어머니는 그 뜻을 제대로 알아듣고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지독한 독재정권인 유신전야의 박정희 정권의 탄압과 회유를 모두 뿌리치고 노동운동에 뛰어드셨다. 청계피복노동조합을 시작으로 70년대에도 80년대에도 87년 이후에도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계셨다.

어머니의 삶의 역사가 70년대 이후 노동운동사와 함께하고 있다. 그래서 '어머니'라는 이름도 좋지만 나는 이소선을 '노동운동가'로 부르고 싶다. 70년부터 돌아가시기까지 46년간 쉼 없이 노동운동을 해 오셨다. 인터뷰에서 열사의 어머니라고 불리고 대접하는 것보다 ‘노동자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것이 좋다고 하신 말씀 그대로셨다. 전태일의 어머니로 뒤에서 도와주는 어머니가 아니라 모든 노동자를 품어 안고 노동자 문제에 가장 앞에 서서 투쟁하는, 그러나 상처 입고 힘들 때면 다시 그 힘을 보충해 주는 ‘노동자의 어머니’로서의 삶을 살아 낸 분이다. 이소선이라는 이름이 작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셨다. 작은 선녀로 왔지만 날개옷을 빼앗기고 수동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자식들과 팔짱을 끼고 서로 부축하며 살아 내셨다.

노동자의 어머니답게 집회 때마다 늘 말씀하신 “노동자가 하나로 똘똘 뭉치면 다 이겨 낼 수 있다”는 이야기도 우리에게 큰 울림이 된다. 민주노총, 한국노총, 비정규직, 정규직 따지지 말고 하나로 뭉쳐야 한다고 하셨다. 노동자는 원래가 혼자서는 힘이 없고 함께 모여야 힘이 생기는 태생적으로 단결해야 하는 존재다. 또 그 단결을 해서 힘을 얻는 가장 중요한 조직이 바로 노동조합이다. 그러나 그 본래의 정신이 많이 훼손돼 있다.

그동안 정규직의 고용을 지키기 위해 비정규직을 방패막이로 용인하고는 정규직의 근로조건 개선만 보느라 비정규직의 고용불안과 저임금과 열악한 조건을 돌아보지 않았다. 다 같이 사는 것이 아니라 금을 그어 놓고 금 안에 있는 사람만 살아남는 선택의 도구로 노동조합을 사용했다. 그 결과 회사마다 정규직이 줄었다. 전에는 직영으로 정규직이 일했던 식당이 이제는 대부분 외주화됐다. 은행 여직원은 정규직의 고리에서 계약직을 거쳐 무기계약직이라는 이름의 '중규직'이 됐다. 하필 여성에게 집중해서 공격이 들어온 구조조정의 압박을 나 몰라라 한 결과다.

비정규직은 어떠한가. 복수노조가 허용되고 더 많은 노동자가 노동조합에 들어가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교섭창구 단일화’를 막지 못해 비정규직노조와 소수노조는 교섭이 더욱 어려워졌다. 서로 협력해야 하는 노동조합들에 정부는 승자독식의 룰을 만들어 던져 놓고는 노동조합 간 분열을 심화시키고 있다. 많은 노동조합이 숫자로 압박하면서 그에 장단을 맞추고 있다. 단결의 원칙으로 어렵게 합의하고 있는 공동교섭단도 매번 그를 지키기 위해 피 말리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노동자끼리 갈등을 부추기는 교섭창구 단일화를 막는 것도 결국은 노동자들의 단결로 해내야 할 과제일 것이다.

전국여성노동조합은 여성노동자의 단결을 위해 소외될 수 있는 여성노동자의 이익을 우선하고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노동조합으로 16년째 활동해 왔다. 대부분 비정규직이고 최저임금에 수렴하는 낮은 임금을 받고 있다. 여성노동자들의 상황을 변화시키는 일은 스스로의 단결과 더불어 모든 노동자와 뜻 있는 사람들이 함께 조직되지 않은 96%의 여성노동자 권리 또한 함께 지켜 주는 일로만 가능하다.

전태일의 숙제였고 이소선 어머니의 평생 숙제가 가장 어려운 노동자들을 지키는 것이었다. 노동자는 다양해지고 고유 과제와 특색을 가진 노동조합과 조직은 계속 생겨난다. 이들과 편 가르기를 할 것이 아니라 고유한 특성을 인정하고 '노동자는 하나'라는 마음으로 함께할 것을, 지금은 이 세상에는 없는 노동자의 어머니이자 참노동운동가 이소선의 마음으로 촉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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