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지난해 11월 한국수력원자력이 운영하는 울진원자력발전소 하청노동자 8명이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불법파견에 해당하니 직접 고용하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해당 노동자들은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다가 이내 좌절하고 말았다. 소송 노동자 8명 중 7명은 2006년 12월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이 개정되기 전 옛 파견법에 따라 고용의제(직접고용 간주)에 해당하는데도, 사측은 8명 모두를 무기계약직으로 발령했다. 노동·임금조건은 정규직에 턱없이 모자란다. 옛 파견법상 고용의제는 사실상 정규직 전환을 의미했다.

한전KPS에서도 똑같은 일이 발생했다. 대법원은 올해 6월 한전KPS 하청노동자 42명이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원청이 직접고용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판결을 내놨다. 그런데 사측은 2년간 기간제로 일한 뒤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데 합의하라고 종용했다. 노동자들은 반발했다. 그러자 회사는 고용의제를 적용받는 노동자 10명에게는 무기계약직을, 고용의무가 적용되는 노동자에게는 기간제를 제의했다. 노동자들은 “현행 파견법상 고용의무 조항 자체가 모호한 데다, 사측이 옛 파견법상 고용의제마저 무시한다”며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는 일이 없도록 비정규직 관련법을 철저히 보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수원·한전KPS 고용의무 조항 악용 심각”

2006년 12월 파견법 개정에 따라 사라진 고용의제 신설을 골자로 한 파견법 개정안을 포함해 비정규직 관련 5개 법안이 20대 국회에서 발의됐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9일 ‘비정규직 살리기 5대 법안’이라고 이름 붙인 근로기준법·파견법·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직업안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송 의원은 “2006년 12월 비정규직 관련법이 마련됐음에도 비정규 노동자는 여전히 고용불안과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며 “비정규직 살리기 5대 법안은 관련법 체계 전반을 종합적으로 재정비하기 위해 성안한 패키지 법안”이라고 소개했다.

송 의원은 5대 법안에 △직접고용 원칙 확립·용역업체 변경시 변경된 용역업체의 고용승계의무 도입(근기법 개정안) △기간제 근로자 사용사유 제한·비정규직 사용 휴지기간 도입·노조신청권 도입 등 차별시정제도 정비(기간제법 개정안) △파견과 도급 구분기준 도입·근로자파견 대상 업무 축소·고용의제 도입(파견법 개정안) △간접고용 근로자의 근로조건, 안전·보건 등에 대해 영향력 또는 지배력을 가진 자와의 단체교섭 근거 마련(노조법 개정안) △위법한 근로자공급사업에 대한 고용의제 도입(직업안정법 개정안) 조항을 넣었다.

무엇보다 파견법상 고용의제 조항 부활이 눈에 띈다. 송 의원은 개정안에서 고용의무(직접 고용하여야 한다)를 고용의제(기간의 정함이 없이 직접 고용한 것으로 본다)로 변경했다.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기존 과태료 규정을 삭제하고 형사처벌 규정을 신설했다.

“20대 국회에서 당론으로 반드시 통과시킬 것”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근로형태별 월평균임금 추이를 보면 2007년 7월 비정규직 관련법 시행 한 달 뒤인 8월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비율은 63.5%였으나 올해 3월에는 10%포인트 정도 떨어진 53.3%로 나타났다. 송 의원은 “비정규직 차별시정 제도가 차별개선 효과를 전혀 발휘하지 못한다는 방증”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특히 “한수원과 한전KPS가 불법파견 소송에서 패소한 뒤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과정에서 무기계약직 또는 기간제 근로계약을 요구한 사례나 최근 이마트가 불법파견 노동자를 계약직으로 직접고용한 뒤 기간만료 이후 해고한 사례가 있다”며 “근본적인 제도개선이 요구된다”고 주문했다.

한편 19대 국회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비정규직 관련법 개정안이 제출됐지만 임기만료로 폐기된 바 있다. 송 의원실 관계자는 “20대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차원에서 당론으로 비정규직 관련법 개정안을 반드시 통과시킬 것”이라며 “정부·여당도 전향적인 입장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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