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영 인더스트리올 아태지역 전력네트워크 의장

한 번 트인 물꼬는 거침이 없었다. 발전소를 분할한 정부는 2003년까지 한전 배전부문을 지역별로 분할해 민영화하고자 했다. 분할된 발전회사 일부를 민영화하는 방안까지 포함하는 계획이었다.

외환위기로 인해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2010년 이후 구조개편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당초 계획을 벗어나 급진적인 민영화와 경쟁체제로 돌변했다. 외환위기를 벗어난 2002년의 시점에도 이 계획은 변화되지 않고 오히려 견고해졌다. 특히 캘리포니아 사태가 보여준 정전과 요금 폭등이라는 구조개편의 폐해가 심각하게 드러났고 명백한 실패가 예견된 시점이었지만 한 번 결정된 정책은 되돌릴 수 없다는 이른바 정책의 비가역성이 관료들로 하여금 구조개편에 박차를 가하게 했던 것이다. 남동발전 민영화가 추진됐고 배전부문을 6~8개 지역별로 분할해 도매경쟁이라고 일컫는 발전과 판매부문의 경쟁체제를 조급하게 밀어붙였다.

2002년 2월25일 공공서비스 사유화(민영화)에 반대하는 사상 초유의 발전·철도·가스 3사 노동자들의 파업이 벌어졌다. 발전 노동자들의 파업은 그해 봄을 지나 4월까지 38일간이나 진행되면서 발전소 민영화에 대한 국민적 반향을 일으켰고 2002년 대선 공간에서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이즈음 전력노조에 새로운 집행부가 구성됐다. 2000년 파업 실패에 대한 조합원들의 심판은 필자가 전력노조 위원장으로 당선되는 결정적인 동인이 됐다.

3사 노동조합과 전력노조가 사유화 저지투쟁에 의기투합했다. 2기 사유화 저지 공동투쟁의 출범이었다. 2002년 대선 공간에서 사유화 저지 공동투쟁본부 4사 노동조합은 뜨거운 투쟁을 전개했다. 각 후보들로 하여금 사유화에 대한 최소한의 유보적 입장을 끌어내는 역할을 했다. 당시 노무현 후보는 "네트워크 산업의 민영화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에 정부는 다급해졌다. 지연된 배전부문 분할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2003년 4월부터 사업부제를 통한 도매경쟁 모의운영을 한전에 지시했고, 남동발전 매각 절차에 돌입했다. 이에 맞선 노동조합의 투쟁은 격렬해졌다. 전국적인 대규모 거리선전전과 대규모 집회를 통해 구조개편 중단을 촉구했고, 국제 심포지엄을 열어 구조개편의 문제점을 정책적으로 알려 내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진행했다. 한편으로 전력노조는 당시 한국노총이 참여하고 있었던 노사정위원회에 ‘배전분할 정책의 타당성 검토를 위한 노사정 의제 상정’을 요청하면서 사회적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정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당시 한국노총과 전력노조의 강력한 요청으로 노사정위는 배전분할 문제를 의제로 채택했다. 아울러 노조가 요구한 ‘배전분할 전면 재검토를 위한 공동연구단 구성’을 받아들여 노조와 정부 추천인사 각 2인, 노사정위 추천 중립인사 2인 등 총 6인의 공동연구단을 구성했다. 전력산업 구조개편 정책이 중대한 전환점을 맞게 된 것이다. 노사정위 공동연구단 구성에 적극적으로 반대해 온 정부는 당시 산자부 장관이 필자를 만난 자리에서 노조와 정부가 직접 교섭을 통해 해결하자는 다급한 요청을 하기도 했다. 정부를 신뢰할 수 없는 노동조합의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다.

8개월 동안 이어진 공동연구단 활동은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노조 요구를 받아들이긴 했지만 공동연구단 활동으로 기존 구조개편 정책이 바뀌지 않도록 구조개편 찬성론자를 동원하기도 했고, 전문 언론사에 기금예산을 지원하면서 여론조성 작업도 했다. 노조와 정부가 노사정위에서 물리적 충돌을 일으키는 사태에 이르면서 일단락됐지만 노조와 정부의 갈등과 긴장관계는 공동연구단 활동이 종료될 때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2004년 5월30일 공동연구단은 8개월 동안의 연구를 종합해 "배전분할 정책은 전기요금 인상과 공급 불안정 등 기대되는 편익보다 예상되는 위험이 크므로 중단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어 내부경쟁 촉진을 위해 자율성과 독립성을 강화하는 독립사업부제 도입을 권고했다. 정부측 인사들은 이에 극렬히 반대했다. 공동연구단은 중립적인 인사가 참여한 데다 국내외 전력산업 실태조사, 전문가 토론 및 의견수렴, 당사자 의견수렴 등 공정한 연구 과정을 거쳐 도출된 결론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정부에 수용을 촉구했다. 정부는 몽니를 부리듯 배전분할에 준하는 독립사업부제 운영을 요구했다. 한국노총은 노사정위 탈퇴를 배수진으로 치고 노사정위를 점거하면서 버텼다. 결국 정부의 부당한 요구를 막아 내고 2004년 6월17일 마침내 배전분할 중단이라는 결론을 쟁취했다. 국제공공노련(PSI)은 전력산업 민영화라는 이른바 세계적인 추세에 저항한 노동조합 활동 중에서 승리의 경험을 안긴 몇 안 되는 소중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우리나라 전력산업 민영화와 경쟁체제라는 구조개편의 큰 흐름을 막은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인더스트리올 아태지역 전력네트워크 의장 (peoplewin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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