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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조끼

알록달록 화려한 색 뽐낸 봄꽃이 능숙한 삽질에 뽑혔다. 소용을 다 했다. 그 자리 여름꽃이 대신한다고 한다. 한철이 금방이다. 녹지관리 노동자가 구슬땀 뽑아 가며 손 바삐 놀렸다. 모자와 토시로 초여름볕을 견뎠다. 어느 은행 노동조합의 조끼를 작업복 삼았다. 노동조합의 노자를 지웠고, 가슴팍 단결투쟁 문구도 일부 가렸지만 알아보는 데 문제가 없었다. 주인 잃은 조끼는 새 주인 만나 적절한 소용을 찾았다. 노조 조끼는 여러모로 유용했다. 거기 얼마 전 정부의 노동정책을 비판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던 광장 한편이다. 노조 활동하다 죽은 노동자의 분향소 옆자리다. 노조 조끼는 때때로 버거운 것이었다. 얼굴 까맣게 탄 사람 여럿이 조끼 위로 상복 덧입고 땡볕 아래 한참을 섰다. 죽음의 이유를 되물었고, 싸움 계획을 밝혔다. 새로운 말이 적었다. 되풀이였다. 또 다른 누군가의 죽음을 가까스로 막았다고도 전했다. 덥다고 손부채 하며 찾아 들어간 곳에 영정이며 향로가 가지런했다. 봄꽃 필 때 들었던 자리다. 그 앞 화분에 심은 토마토 나무 꽃 떨어진 자리마다 초록 열매가 달렸다. 소용돌이 같던 한철이 후딱 갔다.

정기훈  photo@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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