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다시 최저임금 시즌이 돌아왔다. 2년차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으로서 고심이 커져 간다. 지난해를 복기해 보면 노동자위원 9명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제한돼 있었다. 정부 입장을 대변할 수밖에 없는 공익위원들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구도에서 변수는 최소화된다. 중앙정부가 요지부동인 조건에서 노동운동과 저임금 당사자들의 투쟁 수위와 목소리가 예년과 차이가 크다면 달리 기대할 수도 있다. 안타깝지만 지난해보다 현실은 더 어려워 보인다. 특단의 대책이 절실하다.

세계적으로 최저임금 대폭 인상 추세는 지속되고 있다. 미국 대선에선 민주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과 버니 샌더스 후보 공약을 중심으로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영국은 의회에서 아예 법정생활임금 제도를 도입했다. 25세 이상 600만명에게 시급 1만1천898원이 적용된다. 파격적이다. 일본과 러시아도 최저임금 인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의 고용창출 효과도 대체로 긍정적인 것으로 판명됐다. 오는 6월 스위스는 국민배당제인 기본소득제도 도입 찬반 국민투표를 한다.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이 극단화된 신자유주의 체제인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에서 소득 하향평준화로 궁핍해진 노동자들의 임금을 많이 올려야 생존권도 보장하고 내수 진작을 통해 경제도 살릴 수 있다는 것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다행히 여소야대로 끝난 총선 결과로 뜻밖에 호재를 만나 최저임금 인상 기대치가 커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노동의제에 대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보수적 경향성으로 볼 때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예단하기 어렵다. 변화된 여야 세력관계를 잘 활용해야 하겠지만, 결국 노동의 대가인 임금은 노동과 자본 간 계급역관계의 산물이므로 요행과 공짜를 바랄 순 없다. 조직노동과 최저임금 적용 당사자들이 단결된 힘으로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지 않고는 현재의 최저임금 인상 흐름에 균열이 생기긴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점에서 총선을 앞두고 여러 정당이 앞다퉈 쏟아 낸 최저임금 대폭 인상 공약을 허투루 넘겨선 안 된다. 새누리당은 2020년까지 9천원까지 올리겠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2020년까지, 정의당은 2019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뒤늦게나마 국민의당도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의 50%를 목표로 제시했다. 포퓰리즘 공약이란 따가운 눈총도 있었지만, 최저임금이 가장 중요한 노동의제로 부각된 만큼 예상된 것이었다. 각 정당이 발표한 최저임금 인상 목표로 보면 올해부터 매년 최소한 두 자릿수 이상은 인상돼야 한다. 이게 각 정당 공약에 담긴 최소한의 교집합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미만율 문제와 영세자영업자 지불능력 문제는 함께 대안을 강구해야 한다. 재벌 중심의 이윤독식구조 혁파와 원·하청 불공정거래 시정, 임대료 인하와 카드 수수료 인하, 프랜차이즈 가맹수수료 현실화 등 경제민주화 요구와 연동한 패키지로 해결해야 최저임금 인상을 가로막는 결정적인 지뢰들을 제거할 수 있다.

비정규직과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 영세자영업자가 함께 손맞잡고 ‘을들의 연대’를 실현할 때 비로소 경제 선순환 효과를 극대화하는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열 수 있다. 김영란법과 골프를 둘러싼 논란 같은 허접한 경제대책과는 차원이 다른 불평등 구조 해소를 통해 건강한 내수 기반 국민경제로 거듭날 수 있는 대책이 바로 최저임금 인상이다. 저임금 노동자들은 물론 영세자영업자와 사용자에게도 중장기적으로 그 과실이 돌아간다.

다시 문제는 주체다. 객관적 조건이 좋아진 만큼 노동운동의 역할이 관건이다. 세종시에서 외따로 진행되는 최저임금위원회 교섭을 뒷받침할 역동적인 대중투쟁과 사회 캠페인이 동시다발로 벌어져야 한다. 광범위한 사회연대네트워크가 가동돼 최저임금 인상의 국민적 여망을 모아 내야 한다.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생활임금 확산 흐름을 최저임금 1만원 인상 의제와 접목해 시너지를 배가해야 한다. 노동조합의 최우선 현안 요구가 임금인상 아닌가. 적용 대상 규모와 사회적 파장으로 보면 최저임금은 국민임금이 맞다. 최대 다수 미조직 노동자들이 직접 영향을 받는다.

노동조합은 이익단체이자 계급적 연대와 단결을 진작시키는 계급조직이다. 핵심 사회적 이슈인 최저임금 대폭 인상 투쟁만큼 이 역할에 적합한 의제는 없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 양대 노총이 총력을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최소한 달성 가능한 목표로 2017년 최저임금 두 자릿수 인상을 쟁취하기 위해 지금부터 면밀하게 전략을 짜야 한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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