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제조업과 금융업을 비롯한 주요 산업 노사의 임금·단체협상이 예년보다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발 노동개혁의 불씨가 살아 있는 데다, 20대 총선 같은 정치지형 변화가 맞물린 상황에서 노동기본권을 둘러싼 제도개선 요구가 증폭될 것으로 예상된다.

9일 노동계에 따르면 민주노총 핵심 산별노조인 금속노조(위원장 김상구)가 임금·단체협상 돌입을 위한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노조는 이달 3일 열린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산별중앙교섭과 현대자동차그룹사 공동교섭을 병행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교섭과 총선 국면을 적극 활용해 재벌개혁 의제를 전면화하고, 현대차그룹으로 대변되는 기업집단의 노조탄압 문제를 공세적으로 제기한다.

◇금속노조, 현대차그룹 정조준=노조는 10일 현대차그룹사 지부·지회 대표자회의를 열어 그룹사 공동교섭 요구안을 확정한다. 요구안이 정해지면 교섭에 참가하는 13개 지부·지회가 다음달 15일까지 각각 대의원대회를 열어 요구안을 의결한다. 노조는 4·13 총선을 전후해 현대차그룹에 요구안을 전달하기로 했다. 현대차그룹사 교섭 상견례 날짜는 다음달 중하순께가 유력하다. 현대차그룹이 상견례를 거부하면 노조와 해당 지부·지회가 대규모 규탄집회를 개최한다.

산별중앙교섭은 예년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노조는 11일 중앙교섭 참가 사업장과 금속산업사용자협의회에 교섭요구안을 일괄 발송한다. 다음달 6일 중앙교섭 상견례를 진행할 예정이다.

총선 국면을 염두에 둔 외곽투쟁도 전개된다. 민주노총 금속노조·화학섬유연맹과 한국노총 금속노련·화학노련으로 구성된 양대 노총 제조부문 공동투쟁본부는 23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제조산업 발전과 노동조합의 산업정책 개입방안’을 주제로 국제심포지엄을 연다.

노조는 인더스트리올과 공동으로 주최하는 이날 심포지엄에서 ‘제조강화특별법’(가칭) 제정을 정치권에 요구한다. 내수 진작을 통한 소득주도 성장을 위해 국내 제조업 일자리를 튼실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론화하고, 입법투쟁에 집중할 방침이다.

특별법에는 국내 제조업 일자리 보장과 재벌기업 사내유보금 국내 재투자를 통한 일자리 창출 등의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는 이런 흐름 속에서 6·7월 시기집중투쟁에 나선다. 중앙교섭과 현대차그룹사 공동교섭 참가 단위들이 함께한다. 송보석 노조 대변인은 “노조는 올해 15만 공동투쟁을 통해 사용자와 정부에 제조산업 미래발전방안 마련을 요구하고, 제조업 현장에 만연한 노조탄압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며 “내년 대선에서 대선후보들이 제조업 살리기 공약을 주요하게 제기할 수 있도록 견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금융권, 교섭 시작도 안 했는데 '전운'=금융권 노사는 다음달 산별중앙교섭에 돌입한다. 금융노조(위원장 김문호)가 24일 중앙위원회에서 요구안을 확정하면, 다음달 7일 상견례를 열고 노사 안건을 교환할 것으로 보인다.

교섭일정만 보면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정부가 직접 나서 금융권 성과주의 확산을 압박하고 있는 만큼 교섭을 앞둔 노사 모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먼저 움직인 건 사용자측이다.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는 지난달 4일 회원사 대표자총회를 열어 산별 임단협 교섭방향을 논의한 데 이어 이달 3일 △임금동결 △신입직원 초임삭감 △호봉제 폐지·성과연봉제 연내 도입 △저성과자 해고 근거조항 마련을 교섭안건으로 확정했다.

태스크포스(TF)도 꾸렸다. 매주 두 차례 회의를 열어 안건별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 35개 회원사 기관장들이 모여 총회를 열고 임단협 안건을 미리 확정한 것은 2010년 사용자협의회가 만들어진 뒤 사실상 처음이다.

통상 금융권 산별중앙교섭이 노조가 제시하는 임금인상·복리후생 요구안을 놓고 협상하는 방식이었다면, 올해는 사용자측이 정부를 등에 업고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지를 과시하는 모양새다.

노조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사용자협의회 뒤에 서서 성과주의 도입을 압박하고 있다”며 “관치의 끝을 보여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사용자측이 임금동결과 성과주의 안건을 밀어붙이겠다면 시간만 지체되고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며 “9월 초 총파업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구은회 기자
배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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