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개성공단 근로자 협의회 발대식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기훈 기자
개성공단의 한 의류생산업체에서 일했던 서미란(49)씨는 지난달 말 남편과 함께 권고사직 통보를 받았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서씨 부부는 2007년부터 개성공단에서 일해 왔다. 지난달 11일 갑작스런 개성공단 폐쇄와 함께 회사도 경영난을 겪었다. 서씨를 비롯한 개성공단 상주 노동자들은 함께 사직서를 내야 했다. 회사가 공단에서 쫓겨날 때처럼 노동자들도 항의할 기회마저 없이 밀려난 것이다.

서씨는 "부부 둘이 실업급여 지급 날짜를 기다리면서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니고 있다"며 "우리도 힘들지만 4대보험 가입이 안 돼 있거나 신용불량 상태라 실업급여 신청조차 못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아무도 대책이 없다"고 답답해 했다.

개성공단이 폐쇄된 지 20일이 넘어가면서 입주기업 노동자들의 생계·고용불안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개성공단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이 2일 근로자협의회를 발족한 이유다.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발족식에는 개성공단 입주기업 노동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근로자협의회에 따르면 개성공단 입주기업 123곳에 상주해 있던 남측 노동자는 800여명이다. 남측 본사에서 개성공단 관련 업무를 하던 노동자들까지 포함하면 2천명이 넘는다. 협의회는 "이들 중 1천600여명이 회사로부터 권고사직을 요구받은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당장 권고사직이라는 소나기를 피한 노동자들도 고용불안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 그물 생산업체에서 일하는 이아무개(60·가명)씨는 "우리 회사는 일단 권고사직은 안 하기로 했다"면서도 "물량의 70%를 개성공단에서 생산했는데 이 상태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르고, 결국 마지막에는 구조조정밖에 수가 없지 않겠느냐"고 한숨 쉬었다. 이씨는 "나처럼 나이 많은 사람들은 재취업도 어려운데 막막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이들뿐만 아니라 입주기업 협력업체 5천여곳이나, 입주기업을 대상으로 용역·물품을 제공해 온 영업기업 90여개 소속 노동자들도 연쇄적 고용불안을 겪고 있다. 입주기업 대상 식자재 납품업체에서 일하고 있다는 한상호(59)씨는 지난달 말 회사가 어려워져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씨는 "입주기업들이 식자재 비용 결제를 못해 주고 있으니 회사도 경영난이 극심하다"며 "입주기업 피해에 가려 잘 드러나지도 않는 피해기업들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그는 "사직처리되면 대리운전 뛰는 것 외에는 살 방법이 없는데 정부는 관련법이 없다는 말만 한다"고 답답해했다.

노동자들은 근로자협의회를 통해 정부에 실질적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행동에 나설 방침이다. 신윤순 근로자협의회 공동위원장은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도 일궈 낸 삶의 터전을 하루아침에 잃고, 통일 역군에서 애물단지로 전락했다"며 "정부의 구체적·합리적 보상을 촉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 공동위원장은 "적어도 개성공단에서 지급받던 수준의 급여를 2년간 유지해 줘야 생활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날 근로자협의회는 발대식에서 △개성공단 폐쇄로 실직한 모든 노동자에 대한 생계보조금 지급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규모의 피해보상 △보상의 법적 지원근거가 될 개성공단 특별법 제정 △개성공단의 조속한 재가동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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