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틸알코올에 급성중독돼 20대 파견노동자들이 실명하거나 실명할 위기에 처한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원청 대기업에 협력업체 노동자 안전보건 책임을 묻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안전보건 책임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사외 협력업체까지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안전보건 조치 미흡, 협력업체만의 잘못인가

14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부는 메틸알코올 사고를 낸 경기도 부천시 소재 삼성전자 협력업체 두 곳을 사법처리하기로 결론을 내린 상태다. A업체에서는 노동자 2명이 양쪽 눈 실명위기에 처하고 1명은 경미한 시야 이상증상을 보이고 있다. B업체에서는 한 명의 노동자가 한쪽 눈을 실명하고 다른 한쪽 눈은 시력이 손상됐다. 노동부는 이달 중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다.

이들 업체는 메틸알코올을 이용한 작업을 하면서 국소배기장치 설치나 송기마스크 지급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메틸알코올이 산업안전보건법상 관리 대상인 위험물질이라는 점을 노동자들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모두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행위다. 노동부 관계자는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했을 때 엄정한 법 집행이 불가피하다”며 “구속수사 여부가 쟁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업체가 생산한 부품으로 완성품을 만든 원청 대기업의 책임소재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두 업체는 상시근로자 20명 수준의 영세업체다. 주로 삼성전자 부품을 생산하는 3차 협력업체다. 주문 물량이 많을 때는 파견노동자를 수시로 사용하면서 납품기일을 맞춰 왔다.

산업안전보건법(제29조)은 원청 사업장과 같은 장소에서 진행되는 사업, 즉 사내하도급에 대해서는 원청 사용자에게 하청노동자 안전·보건 조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산재가 발생한 업체들은 사외 협력업체다. 3차 협력업체인 탓에 원청인 삼성전자가 져야 할 법적 책임은 없다. 이와 관련해 해당 법 조항을 적극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윤리적 부품으로 만든 완성품 … “원청도 책임 있다”

대기업 원청이 최소한의 윤리적 책임을 지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윤리적으로 생산한 부품으로 만들어진 완성품 역시 윤리성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국제사회의 흐름을 봐도 그렇다. 기업의 인권·노동·환경 분야 전략에 대한 기업준수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유엔글로벌콤팩트는 하청업체의 윤리적 책임 이행 여부 확인을 원청 대기업의 의무로 보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하청업체가 노동자 건강을 보호하는지 여부도 원청 대기업이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종한 인하대 교수(직업환경의학)는 “현행 법 조항을 제한적으로 해석하지 말고 원청이 하청의 부품을 받을 때에는 원·하청 협의체 구성이나 교육을 통해 유해물질·사고 위험 여부를 기본적으로 점검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문제가 된 업체들은 비용을 아끼기 위해 인체에 해가 없는 에틸알코올 대신 가격이 3분의 1 수준인 메틸알코올을 사용하다 참사를 빚었다. 이와 관련해 노동부가 메틸알코올을 사용하는 업체 3천100곳을 대상으로 집중점검을 시작하자 부천지역 업체들이 앞다퉈 에틸알코올로 바꾼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나 삼성전자가 하청업체들의 유해물질 사용 여부를 미리 점검하고 에틸알코올 사용을 요구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 있다. 박혜영 공인노무사(노동건강연대)는 “원청 업체가 가이드라인 등을 통해 유해물질을 사용하는 업체에서는 납품을 받지 않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이런 책임은 접어 둔 채 부품을 만들어 오면 무조건 받는다는 식의 마인드는 그야말로 후진적”이라고 비판했다.

시민석 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은 “사외 협력업체에서 발생한 산재에 대해서는 원청 책임을 규율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다만 현행법 테두리 내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