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개혁 골든타임이 저물고 있다. 기존 선거제도를 고수하려는 새누리당과 협상에서 뚜렷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더불어민주당의 지루한 싸움만 반복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올해 1월1일을 기해 법정 선거구가 사라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20대 4·13 총선은 80여일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국회를 피고로 한 총선 예비후보자들의 줄소송이 이어지고, 선거일을 연기하자는 얘기마저 나온다. 당장 총선룰을 정하기도 빠듯한 상황에서, 정치개혁을 논하는 것은 이미 때가 늦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제안으로 간만에 찾아온 정치개혁의 적기라는 기대감이 물거품처럼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 지역구 253석 접근

17일 정치권에 따르면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특사로 과테말라를 방문 중인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귀국하는 18일 이후 회동을 갖고 선거구획정 담판을 시도한다. 두 당은 지역구 의석수를 현행 246석에서 253석으로 늘리는 것까지 의견을 모은 상태다. 국회의원 총수는 현행 300명을 유지하기로 했다. 비례대표 의석이 늘어난 지역구 의석만큼 줄어든다는 뜻이다.

지역구 의석 증가는 두 당이 서로 피해를 최소화하는 접점을 찾은 결과다. “선거구별 인구수 편차를 현행 3대 1에서 2대 1로 조정하라”는 2014년 10월 헌법재판소 결정을 반영하면 농어촌 의석수 감소가 불가피하다. 대도시 의석수를 그대로 두는 경우에 그렇다.

그러자 두 당은 농어촌 의석을 최대한 현행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대도시 의석수를 늘리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것도 서로 간 '텃밭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번 선거구획정 협상이 기득권 다툼으로 폄하되는 배경이다.

지난해 8월 말 인구 기준으로 지역구 253석은 인구 상한 28만명, 하한 14만명이다. 기존 선거구에 적용하면 더불어민주당 표밭인 전남과 전북에서 각각 1석이 줄어들고, 새누리당 후보가 항상 승리하는 경북에서 2석이 감소한다. 반면 지방에 비해 선거구당 인구수가 많았던 수도권을 중심으로 의석수가 증가한다.

선거제도 논란에 직권상정 가능성 높아

문제는 줄어드는 비례대표 의석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균형의석제를 제안하고 있다. 애초 중앙선관위 안을 일부 수용한다는 의미도 있다.

중앙선관위는 정당득표율로 총 의석을 정하고 이를 지역구 의석과 비례대표 의석에 배분하는 방식을 주문했다. 이를테면 10%의 정당득표를 얻은 정당은 30석을 갖는데, 지역구 당선자가 2명이면 나머지 28석은 비례대표에게 주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주장하는 균형의석제는 정당득표율의 40~50%를 총 의석수에 배분하는 방식이다. 균형의석제에 따르면 정당득표율 10%인 정당이 갖는 의석은 12~15석이 된다. 여기에 더해 선거연령을 18세로 낮추는 안도 제시했다.

새누리당은 두 가지 제안 모두 거부하고 있다. 두 당이 교섭에 교섭을 거듭하면서도 이견을 좁히지 못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총선이 다가올수록 정의화 국회의장이 자신의 안을 토대로 직권상정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의화 의장은 지난해 말 현행 지역구 246석과 비례대표 54석을 그대로 유지하되 인구편차를 고려해 시·군·구 분할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안을 내놓았다. 투표연령을 비롯한 선거제도 개편안은 들어 있지 않다.

한창민 정의당 대변인은 “정치를 개혁하라고 했더니 현상유지는커녕 비례대표 축소라는 개악으로 귀결되는 상황”이라며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협상 내용을 결코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치개혁 열망은 확인, 국민투표 목소리도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논의에 ‘개혁’이라는 말을 붙이기 민망한 상황에서 외부 비판이 유난히 거센 것은 4·13 총선을 맞아 사법부와 행정부의 태도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 결정 뒤 중앙선관위는 지난해 2월 정치관계법 개정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소수·진보정당이 요구하던 독일식 정당명부제와 유사한 제도다.

시민·사회단체는 중앙선관위 제안이 실현될 경우 “대통령 직선제 이후 최대 개혁”이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완강한 거부로 20대 총선에서 제도 시행은 불가능해져 버렸다.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는 “시기적으로 여건이 좋은데도 정치개혁 논의에 실패한 것은 40% 수준의 정당 득표율로 과반 의석을 점유하고 있는 새누리당의 기득권 지키기 때문”이라며 “더불어민주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당론으로 채택했지만 소위 목숨 걸고 나서는 의원들이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최 교수는 “당장 성과는 없지만 이번처럼 각계·각층이 정치개혁의 필요성과 열망을 드러낸 적도 드물다”며 “이미 정치개혁을 이룬 나라에서는 국민이 직접 제도를 변화시켰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창민 대변인은 “차기 대선에서 야권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찬성하는 단일 후보로 세우고, 국민투표를 통해 선거제도를 개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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