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3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을 제외한 노동 4법 국회 처리라는 수정안을 제시하자 노동계가 술렁이고 있다. 노동 관련 5대 법안 일괄처리라는 입장에서 물러난 것도 예상 밖이지만 고용노동부가 주력하던 기간제법 개정안이 아니라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개정안을 선택한 것도 의외라는 반응이 적지 않다.

청와대는 특히 주무부처인 노동부와 사전협의 없이 이러한 제안을 대통령 담화에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노총이 9·15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 파탄을 선언한 가운데 청와대가 기간제법마저 포기하면서 노동부 입지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노동부도 몰랐던 기간제법 제외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일자리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차선책으로 노동계가 반대하는 기간제법과 파견법 중에서 기간제법은 중장기적으로 검토하는 대신 파견법은 받아들여 주시기 바란다”고 제안했다.

박 대통령의 제안에 노사단체는 물론 노동부조차 뜻밖이라는 반응을 나타냈다. 다수의 노동부 관계자는 “사전에 소식을 들은 적이 없고 대통령 담화를 보고서야 알았다”며 “의외였다”고 입을 모았다. 한 고위공무원은 “정치적 결단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 제안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기간제법 개정안에 대한 야당과 노동계 반발이 거센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기간제법을 버렸다는 해석과 파견법이 경영계 이해를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기에 파견법을 적극 선택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노동부는 “야당과 노동계가 기간제법·파견법을 배제한 분리입법을 주장하면서 국회 통과가 지연되고 있지 않냐”며 “대통령께서 양보와 타협의 정신으로 야당과 노동계의 입장을 일부 수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노동계와 전문가들은 “재벌과 대기업의 이해를 반영한 적극적 선택”이라고 분석했다. 한 노동전문가는 “새누리당 파견법 개정안을 보면 파견과 도급 구별기준이 판례보다 축소돼 있다”며 “대기업 사내하청 불법파견을 합법화할 위험이 높다”고 우려했다. 노동법을 전공한 또 다른 교수는 “제조업 직접생산공정 파견 금지는 파견법의 대원칙”이라며 “뿌리산업 파견 허용은 이러한 원칙을 무너뜨려 향후 제조업 전반으로 파견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한국노총 “기간제법은 찬반 논란, 파견법은 모두 반대”

이러한 분석은 경영계가 줄곧 기간제법보다는 파견법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경영계 관계자는 “기간제법은 기간제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으나 이직수당 같은 비용증가 수반돼 실효성이 있을지 의견이 엇갈린다”며 “파견법 같은 경우에는 파견대상과 업종이 확대된다는 측면에서 기업 인력활용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단체들은 이날 박 대통령 담화에 환영의 뜻을 밝혔다. 전경련은 “경제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노동개혁법과 경제활성화법 등 쟁점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한 것에 매우 공감한다”고 평가했다. 한국경총 역시 “기간제법을 제외한 4대 법안 처리 협조를 요청한 것은 노동개혁의 시급성과 무산됐을 경우의 심각성을 고려한 것”이라며 “국회가 대승적 차원에서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제안은 9·15 노사정 합의 당사자인 한국노총과의 입장과 대비된다. 한국노총 산별연맹·노조들은 9·15 노사정 합의 파기 여부와 기간제법 찬반을 두고 크게 다퉜지만 파견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모두가 일관되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노동부가 기간제법 개정안을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해당 법안을 중심으로 쟁점이 형성돼 있는 반면 파견법 개정안이 노동계에 더 불리하다는 데에는 산하조직 모두가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며 “박 대통령 제안은 한국노총 내부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어 수용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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