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영 인더스트리올 아태지역 전력네트워크 의장

1991년 영국은 영국 전력청을 해산한 뒤 원자력 발전소를 제외한 나머지 발전소를 2개의 발전회사(National Power, Power Gen)로 분할해 민영화했다. 그리고 이들 발전사들이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는 제도, 이른바 전력 풀(Electric power Pool)이라는 전력거래 제도를 만들었다. 전력거래는 표면상으로 매우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었다. 매일 두 개의 발전회사는 다음날 매 1시간 단위로 24개 전력수요 현물에 대해 발전기별로 가격을 입찰한다. 이때 전력거래소는 매 단위별 최저가 발전기부터 낙찰을 결정하고 각 단위별 수요에 대한 최종공급 발전기 가격을 그 시간대의 공급전력에 대한 낙찰가격, 예컨대 계통한계가격(SMP, System Marginal Price)으로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롭고 치열한(?) 가격경쟁 방식은 곧 허구임이 드러난다. 두 개의 복점회사는 서로의 입찰 패턴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상대의 행동패턴에 따른 전략적 행동과 암묵적 담합이 가능했다. 발전기를 의도적으로 정지시켜 입찰에서 제외하는 행동은 시장가격을 높여 두 회사 모두에게 이득을 안겨 줬다. 특정시간대 전력입찰가격을 0펜스로 해도, 그 시간대 계통한계가격을 결정하는 발전기를 적절히 조절해 공급가격을 높일 수 있었다. 같은 기간 유가와 가스가격은 급락했지만 담합을 통해 높은 발전가격을 유지해 온 두 발전회사의 이윤은 주체하지 못한 것이다. 급기야 규제당국이 나서 가격 상한 설정(Price Cap) 제도와 공급자와 수요자의 쌍방거래와 장기계약 제도를 도입하는 등 새로운 제도로 바꿨다. 그러나 이들 ‘경쟁자’들은 비웃기나 하듯 이제는 전력가격의 불안정성을 높이는 방법으로 고객 불안을 높임으로써 전력풀 외부에서 두 회사들에게 웃돈을 주고 살 수밖에 없도록 하는 방법으로 그들의 이윤을 유지했던 것이다. 시장경쟁이 전력생산 효율을 높여 소비자 편익과 전기요금을 인하할 것이라는 영국 전력산업에 대한 시장신봉자들의 위험한 실험은 담합과 전략적 행동이라는 시장의 위험성을 명백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아울러 이들의 위험한 실험에 대한 모든 비용은 소비자인 국민과 민영화 당시 해고된 노동자의 몫이 됐고, 민영화된 기업의 주주와 경영자, 그리고 민영화 컨설턴트들은 막대한 이득을 챙길수 있었다.

미국에서의 시장조작은 더 지능적이고 광범위했다. 그 피해 또한 상상을 초월했다. 영국의 전력거래 제도를 모범으로 캘리포니아주는 미국의 여느 주에 비해 더 급진적이고 공격적인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단행했다. 그러나 규제를 폐지한 2년 만에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주민들은 규제 이전보다 3배 높은 가격을 지불했고, 지역 내 전력판매회사들이 발전회사들로부터 전력을 사들이는 데 서너 배 이상의 비용을 더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재앙은 캘리포니아 전역으로 확산됐다. 발전회사들의 암묵적 담합은 더욱 교묘해졌다. 일부러 발전기 가동을 중지시키는 고전적 패턴에서 이제는 캘리포니아주를 벗어난 인근 발전회사들까지 가세해 공급량과 거래량을 속이는 방식으로 도매 전력가격을 높였다. 심지어 특정시간대의 도매전력 가격을 1킬로와트시(kWh)에 7.5~9.5달러(당시 1kWh당 2~3센트)로 올리는 등 무려 수백 배의 가격폭등이 이어졌다. 반면 소비자요금은 규제당국에 의해 규제되고 있었기 때문에 도매 전력가격 급등은 곧바로 PG&E를 비롯한 전력 판매회사의 연쇄적인 부실과 심지어 파산사태를 초래했다.

회계부정으로 파산한 엔론 사태는 캘리포니아 전력시장 조작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보여 줬다. 천연가스와 발전사업, 그리고 전력 판매사업을 동시에 수행한 엔론은 자신의 이득을 극대화하기 위해 담합과 시장조작, 에너지 파생상품 투기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당시 연방에너지위원회가 밝힌 엔론의 캘리포니아 시장조작 행태는 가공의 수요를 만들어 내는 ‘in-ing’, 부하조절을 한 것처럼 속이는 ‘죽음의 별’, 인근 주와 담합해 가공의 거래를 하는 ‘전력세탁’ 등 그야말로 시장조작의 백화점을 방불케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송전선 용량을 초과하는 가공의 부하를 입찰해 송전선을 마비시킴으로써 전력가격을 올리고, 그 전력을 비싼 값으로 팔기 위해 다른 회사와 업자들과 함께 가공의 전력거래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가공의 수요와 공급을 만들어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또한 이를 통해 수요조절에 따른 대가를 받았다.

시장경쟁이 전력생산의 효율성을 높여 소비자 편익과 전기요금을 인하할 것이라는 시장 신봉자들의 실험은 불과 몇 년 만에 자본주의 천국이라는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들의 위험한 실험에 대한 대가는 고스란히 대다수 국민의 막대한 부담으로 이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영화와 시장경쟁은 여전히 진행형이고, 지금도 이를 빙자한 은밀한 조작과 담합, 그리고 비밀스런 거래가 지속되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2011년 9월15일 발생한 대규모 순환정전에서 보듯이 결코 여기에서 자유로울수 없다.

인더스트리올 아태지역 전력네트워크 의장 (peoplewin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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