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이 하도급 대금의 일종인 기성을 무리하게 삭감하면서 하청업체들의 폐업이 이어지고 있다. 올 들어 52개 업체가 문을 닫았고, 1천600명의 하청노동자가 110억원의 임금을 받지 못했다. 업체 폐업으로 일자리를 잃고 임금까지 떼인 노동자들은 유난히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를 운영하다 계약이 해지되거나 폐업한 하청업체 대표 20여명으로 구성된 현대중공업협력사대책위원회는 21일 오후 울산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중공업이 부실경영 책임을 하청업체에 전가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협력사대책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2013년 이후 줄곧 기성(톤당 작업단가)을 삭감해 왔다. 올해 초부터는 인건비 산출금액 대비 50%만 지급했다. 대책위는 “대부분 하청업체가 세금과 4대 보험을 미납하고, 직원 임금을 지급하기 위해 금융권 대출과 사채까지 쓰면서 간신히 버티고 있다”며 “이마저도 힘든 업체는 파산상태에 내몰리거나 임금을 체불한 범죄자 신세가 됐고, 노동부와 국세청으로부터 압류를 당해 가정마저 파탄난 상태”라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자살 같은 극단적 선택을 하는 하청업체 관계자도 늘고 있다. 이달 17일에는 경영난에 시달리던 한 하청업체 대표가 자신의 차량에 번개탄을 피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인은 “기성금이 적어 힘들었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지난달에는 한 하청업체 총무가 기성 삭감 외에 산업재해를 당한 유가족과의 협상 문제로 원청인 현대중공업에 불려다니다 목을 맸다. 현대중공업의 하청업체 후려치기가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책위는 “원인 제공자인 현대중공업은 하청업체의 방만운영과 생산성 저하 때문이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더 이상의 피해를 막으려면 현대중공업이 합리적이고 투명한 기성 책정 대책을 마련해야 하고, 폐업한 업체의 체불임금 역시 즉각 지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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