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시흥시에는 시민호민관이라는 독특한 옴부즈맨 제도가 있다. 옴부즈맨 제도라는 게 일종의 민원조사관인데, 시흥시는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달리 호민관이 상근하면서 독임제로 운영한다. 비상근에 합의제로 운영하는 다른 지자체 옴부즈맨 제도와는 권한·책임 수준이 비할 바가 아니다. 초대 시흥시 호민관을 지낸 임유씨는 “약자들의 편을 일방적으로 들어야 그나마 균형추가 맞다”고 말한다. 그가 호민관 시절 보고 듣고 만난 시민들의 얘기를 <시민은 억울하다>(한울)는 책으로 냈다. <매일노동뉴스>가 일부 내용을 발췌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두 차례 게재한다.<편집자>


양도소득세가 중과돼 억울한 사람이 있다. 국가를 상대로 재판 중이다. 매도 당시 보유 토지가 업무용 부동산이었는가가 쟁점인데, 국가는 비업무용이라 판단하는 반면 민원인은 업무용이었다고 주장한다. 결국 이는 당시 토지가 개발 제한 상태였는가에 따라 판가름 날 수밖에 없는데, 민원인은 매도 당시 토지이용확인원을 근거로(개발이 제한되는 토지구획정리사업 시행지구로 지정돼 있음) 자신의 부동산이 업무용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대며 7년째 개발 제한이 풀린 상태였다고만 한다고….

땅 사는 사람치고 땅값 오르는 걸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 걸음 더 나간다면, 당장이냐 미래냐 하는 시점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경제적 이득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토지 구입은 없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그런데 희한한 일은 당장의 이익을 추구하면 투기로 매도되고 장기간에 걸친 이익을 좇으면 투자라 칭송(?)받는다는 점이다. 그럼 투기꾼과 투자자를 가르는 ‘당장’과 ‘미래’의 기준은 무엇일까. 한 달? 1년? 한 달을 목표로 땅을 샀는데 팔 타이밍을 놓쳐 1년 후에 팔면 투기꾼 리스트에서 빼 주는 것인가? 몇 년을 내다보고 투자 목적으로 땅을 샀는데 갑자기 땅값이 올라 한 달 만에 팔았다면 다시 투기꾼으로 강등되고? 모를 일이다. 땅 팔아 번 돈의 규모는 또 어떤가. 갑절을 남겼으면 투기인가, 투자인가. 10퍼센트밖에 벌지 못했으면? 살 때는 분명 투기였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돈을 한 푼도 벌지 못했다면? 기준이 애매하긴 마찬가지다. 이 또한 모를 일이다.

얘기하다 보니 투기가 뭐 어때 하는 꼴이 됐다. 이제껏 살면서 투기로 돈 벌었다는 사람을 부러워는 했어도 옹호하거나 미화한 적은 없는데 말이다. 그렇지만, 모두 다 투기꾼인 세상에서 누군가를 단죄할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입장만은 분명하다. 더구나, 힘 있는 자들이 부동산으로 돈 벌 때는 한없이 관대하다가도 촌부들의 그것에는 추상같은 법적·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정부의 태도를 볼라치면 정말이지 구역질이 날 지경이다. 난 기본적으로 공익을 위한 사익의 부분적 제한에 찬성하는 편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명분도 구체적 실천을 담보하지 않는 한 한낮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난, 사익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형평성만은 지켜져야 한다고 믿는다. 개발제한이든 부동산 과세든(양도세·재산세 등) 형평성을 잃는다면 그 정책은 실패한다는 확신도 갖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제껏 그 형평성 하나 제대로 살피지 못해 늘 불복과 저항을 불렀다. 강 씨의 경우도 그랬다.

민원인은 한사코 아니라지만, 당시를 기억하는 촌로들은 하나같이 그가 투기로 땅을 산 것이 틀림없다고 했다. 1990년이 시작되자마자 대규모 개발 사업이 진행될 것이라는 소문과 함께 투기 열풍이 그곳을 쓸고 지나갔는데 바로 그 시점에 그가 땅을 샀기 때문이란다. 그는 오비이락이라며 억울해했지만 좀체 투기꾼의 낙인은 지우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돈이라도 벌었으면 이처럼 억울해하지 않을 겁니다. 무슨 놈의 투기가 이렇습니까.” 듣고 보니 그의 푸념은 정당했다.

민원인 : 지난 1990년에 평당 100만원을 주고 ○○동 땅 100평을 샀습니다. 솔직히 곧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에 땅값 상승을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겁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은퇴 후 지낼 집터 장만이 목적이었습니다.

투기면 또 어떻다고 그는 시종일관 변명 같지 않은 변명을 늘어놓고 있었다. 7년간이나 송사를 계속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기방어기제 같은 게 몸에 배지 않았나 싶다. 내가 세무서 직원도 아닌데 말이다. 그가 얘기를 이어갔다.

민원인 : 땅을 사고 3년이 지난 1993년에 예상대로 토지구획정리사업 시행지구로 고시됐습니다. 당연히 개발행위가 금지됐습니다. 뭐라도 지어 세를 놓을 작정이었지만 벌금을 문다고 해서 그냥 빈 공터로 놀렸습니다. 그런데 순조롭게만 진행되는 줄 알았던 아파트 개발이 좌초되고 말았습니다. 인근에 아파트가 들어선 것이 최근이니까 그때부터 환산하면 무려 20년이 걸린 셈이죠.

호민관 : 지금은 땅값이 꽤 올랐겠습니다.

민원인 : 글쎄요, 2008년도쯤엔가 개발사업 인가가 났으니까 그 이후에 판 사람들은 돈 좀 벌었겠죠. 그런데 저는 2007년에 팔아 버렸으니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호민관 : 사업 인가도 나기 전에 팔았고 돈도 벌지 못했다고 하셨는데 그럼 도대체 무슨 일로 저를 찾으신 거죠?

민원인 : 세금 때문입니다. 4천만원 들여 산 땅 마흔 평을 17년을 갖고 있다 7천만원 받고 팔아 양도차익을 3천만원가량 남겼는데 양도세를 2천만 원이나 내라는 게 아닙니까.

호민관 : 아, 예. 억울하실 만하네요. 그런데 양도세는 국세기 때문에 국가사무에 해당돼 현 호민관 조례에 따르면 저 호민관이 다룰 수 없는 사항입니다. 어떡하죠.

민원인 :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에 온 것은 세금이 억울해서가 아닙니다. 그 문제는 지금 소송 중이니까 그 결과를 따르면 그뿐이죠. 진짜 억울한 것은 소송에 도움이 될까 해서 “당시(1997년)에는 개발행위가 제한돼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달라”고 했는데도 시가 들어주지 않는 데 있습니다.

세무서와 민원인 간 다툼의 핵심은 민원인이 매각한 토지가 ‘비업무용 부동산’인가 아닌가였다. 세무서는, 개발행위 제한이 풀렸는데도 빈 땅으로 놀렸으니 비업무용 부동산이라 판단하고 고율(66퍼센트, 하필이면 1997년에만 적용된 후 사라졌다고 한다)의 세율을 적용해 양도세를 부과한 것이고, 민원인은 당시가 여전히 개발행위 제한 상태였으니 업무용 부동산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재판 과정에서 시의 판단이 필요했을 터, 강 씨는 개발행위 제한 상태였음을 확인해 달라 했던 것인데….

공무원 : 허 참, 난감합니다. 1993년에 결정된 토지구획정리사업은 1998년에 폐지된 게 맞습니다. 따라서 그때부터 개발행위 제한은 풀린 겁니다. 시의회 의결과 시 도시계획위원회의 자문을 모두 얻은 결정이었으니 법적 하자는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에 생겼습니다. 1999년 1월께 경기도에서 재검토를 지시한 것입니다. 사실 그 시점에 뭔가 대책이 나왔어야 하는데, 저도 잘 모르는 이유로(그때 책임자는 퇴직해 버렸으니 그런 말을 할 만도 하다) 차일피일하다 2008년까지 그냥 내버려 둔 겁니다. 대체 구역이나 지구 지정 없이 말입니다.

호민관 : 그럼 간단하네요. 경기도에 재의 권한이 있으니 주택건설사업이 승인된 2008년까지는 형식적으로 토지구획정리사업 시행지구로 남아 있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고, 따라서 개발행위 제한이 존속됐다고 보는 게 맞는 것이 아닙니까. 더구나 시가 발급한 2007년 당시 토지이용계획확인원에 여전히 토지구획정리사업 시행지구로 지정돼 있는 걸 보면 시의 확인 의무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강 씨의 말을 빌리자면, “무려 6개월을 드나들었건만 시의 답변은 한결같았다”라고 한다. “개발을 제한한 적이 없었다”였다.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호민관을 들렀노라 그는 하소연했었다. 그런데 싱겁게 끝이 났다. 그렇게 하겠단다. “모든 과정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라”는 나의 요구를 시가 수용한 것이다. 시의 공문 하나가 재판 결과를 어떻게 이끌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만족해했으니 됐다. 재판 결과야 그의 몫 아닌가 말이다. 다만, 그렇게 완강했던 공무원의 태도가 도대체 왜 바뀐 것인지 그것만은 지금도 궁금하다.

그건 그렇고, 강 씨는 투기를 한 것인가, 아니면 투자를 한 것인가. 66퍼센트라면 투기로 본다는 얘긴데 말이다. 17년이란 세월 동안 땅값이 갑절도 오르지 않았는데, 그것도 부동산 불패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투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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