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영 인더스트리올 아태지역 전력네트워크 의장

전력은 대규모 저장이 어렵기 때문에 생산과 동시에 소비가 이뤄진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공급과 소비를 하나로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구성하게 된다. 따라서 전통적인 전력산업은 발전과 송전·배전 등 수직 통합된 전력회사를 공공적 소유로 하거나, 또는 사적 소유의 전력회사지만 강력한 공공적 규제를 통해 독점적 형태의 운영을 해 왔다.

네트워크 산업의 특성상 독점이 오히려 경쟁보다 더 큰 사회적 효용을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영국 전력산업 민영화와 경쟁체제는 전력산업의 전통적 구조를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영국에서 본격적으로 확산된 전력산업 구조개편-자유화·규제완화·경쟁·민영화-은 기실 1970년대 후반, 신자유주의 태동과 함께했다. 78년 미국에서 공공시설 규제정책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전력 자유화(규제완화) 정책이 진행되기 시작했으나, 89년 영국에서의 급진적인 민영화와 전력거래 제도가 도입되면서 전 지구적 경향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뉴질랜드·호주·캐나다·미국 등 주로 앵글로색슨 국가를 중심으로 규제완화 정책이 확대됐고, 칠레·아르헨티나·브라질·인도 등 남미와 아시아 국가에서도 민영화와 규제완화 정책이 추진됐다.

이들 국가에서 추진된 전력산업 구조개편 정책은 각국이 처한 산업환경에 따라 구조개편 추진 목적이 분명히 달랐음에도 그 추진방법은 모두 민영화와 규제완화(자유화), 경쟁체제로의 전환이었다.

영국과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비효율적인 전력산업’을 ‘민영화와 경쟁을 통해 소비자 선택권을 확대’함으로써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한편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에 있어서는 경제성장에 필수적인 전력산업의 인프라 구축을 위한 투자 확보라는 측면에서 전력산업 민영화를 추진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민영화문제는 정치적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남미의 칠레나 아르헨티나 경우처럼 독재정권 주도하에 공공자산을 외국자본에 매각하면서 수많은 부패 스캔들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인도와 필리핀 등 아시아의 몇몇 국가에서는 시장개방과 점진적 민영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다국적 기업의 독립발전사업자(IPPs)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구조개편을 추진했다.

급속도로 확산된 전력산업 민영화 정책은 초국적 자본의 이해관계와 더불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자원배분은 민간이 훨씬 효율적이고, 경쟁을 통한 효율성이 전기요금을 내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술발전과 친환경적인 에너지 생산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는 주장을 했다. 그러나 이 주장의 찬반 여부는 논외로 하더라도 지난 10여년간의 구조개편 추진 과정과 결과로 볼 때 전력산업 민영화를 촉진하기 위한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그리고 이들을 앞세운 초국적 자본의 민영화 추진논리에 불과했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민영화와 자유화가 확산일로에 있던 1999년 당시 멕시코에서 개최된 ‘민영화 반대 국제세미나’ 참석자들이 채택한 선언문이 이 같은 사실을 명확히 확인해 준다. 세계은행과 IMF를 비롯한 금융기관들에 의해 추진된 전력산업 민영화는 △국가재산 상실 △요금 인상 △공공서비스 손실 △노동자 대량해고 등의 문제를 유발하면서 소외계층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고 삶의 질의 저하를 가져왔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이들 기관들의 조종과 각국의 정치적 지원을 받고 있는 국제자본들이 세계 모든 국가에 동일하게 전력산업 및 다른 전략산업 지배를 목적으로 민영화라는 정책을 강요하고 있고, 이것은 각국 경제에 심각한 피해와 부의 집중을 유발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구조개편 이후 영국의 대부분 전력회사들이 다국적 전력기업에 잠식됐고, 인도와 필리핀·칠레 등 많은 국가에서 만들어진 초국적 에너지기업에 의한 전력산업 과점체제는 이러한 주장을 충분히 뒷받침하는 사례가 됐다. 시장조작과 회계부정으로 얼룩진 엔론 스캔들은 초국적 자본에 의한 민영화 사기극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었다.

전력산업 구조개편 정책의 이면에 국제금융기구들과 초국적 자본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구조개편 정책추진 과정에서도 명확히 드러났다. 99년 외환위기 때 IMF는 전력산업 분할 민영화와 경쟁체제를 요구했다. 당시 안영근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은 한미투자협정 협상 추진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미국의 압력에 의해 한전을 비롯한 주요 공공부문에 대한 외국인 투자확대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한전이 일부 발전소를 매각할 때 AES·TEXACO·ENRON 등 많은 초국적 자본이 참여를 희망했다는 점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해 준다.

경쟁의 효율, 소비자 선택권은 단지 초국적 자본의 이윤추구를 위한 사탕발림에 불과했다. 공공의 재산을 이들에게 넘겨줌으로써 국민은 이들의 이윤추구 대상이 됐고, 이러한 민영화 확산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진행형이다. 여전히 공공부문의 비효율을 주장하면서 경쟁과 성과가 효율성을 담보한다는 논리로.

인더스트리올 아태지역 전력네트워크 의장 (peoplewin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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