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쉽게 해고가 되지 않을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받고 노동조합이 제공하는 보호 혜택을 입는 정규직 근로자 집단. 그렇지 못한 취약 노동자 집단. 양자 간 불평등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돼 있다. 대체로 전자를 인사이더(insider)로 후자를 아웃사이더(outsider)로 칭하곤 한다.

대체로 1980년대 이후 글로벌화해 간 세계 경제의 흐름 속에서, 이른바 노동시장의 수량적 유연화가 가져다줄 비용절감 기회를 사용자들에게 제공한 노동시장 정책의 결과로 아웃사이더들이 양산됐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상대적으로 인사이더 규모와 비중을 줄이고 아웃사이더를 늘리는 선택이 이어졌고, 이는 노동시장의 분절 내지 이중화를 초래했다.

여기에 저성장 시대가 도래하면서 국민경제의 신규고용 창출능력이 저하되자, 노동시장으로 신규 진입해 들어가야 할 청년층들은 고용절벽의 암울한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아웃사이더 내에서조차 재차 분화가 생긴 것이다. 그 결과 피고용 집단 간 사회통합의 과제는 이제 세대 간 사회통합의 과제와 중첩되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다른 선진국들과 달리 한국의 경우는 중고령자들이 노동시장에서 일찍 퇴출되는 제도와 관행 탓에 60대 고용문제마저 불거져 있다. 그 속에서 청년 아웃사이더 문제만이 아니라 고령 아웃사이더 문제도 함께 부상해 있는 상황이다.

진입하기 어려울뿐더러 상대적으로 짧게 머물렀다 나와야 하는 한국 노동시장. 더욱 심각하게도, 정규직이라 하더라도 전반적으로 조직이 보유한 낮은 생산성으로 인해, 과도하게 긴 노동시간을 일상의 노동활동에서 감내할 것을 강요받는 처지다.

한마디로 노동시장의 균형(balance)이 파괴된 상태라고 칭할 수 있다. 파괴된 균형은 시간이 갈수록 점차 악화돼 가고 있으며, 이는 마치 사회 분열과 갈등의 시한폭탄이 폭발 시점을 향해 초침을 움직여 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파괴된 균형상태를 극복하고 새로운 균형을 찾는 일종의 재균형화의 정치(politics of rebalancing)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재균형화에서 가장 우선적인 작업은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의 간극을 좁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논법적으로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인사이더의 높이를 낮추는 것이다. 두 번째는 아웃사이더를 높이는 것이다. 세 번째는 두 가지 모두를 다 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시장 재균형화의 정치는 필연적으로 심각한 이해갈등 상황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시대 새로운 사회적 대화의 가능성은 바로 이러한 형국에서 고려할 수 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해 이 주제와 관련한 유럽의 상황을 소개한 일군의 학자들은 그쪽 사정이 그렇게 밝지 않다고 전망했다. 제네바대학의 루치오 바카로 교수에 따르면 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의 흐름을 타고 새로운 사회협약 정치의 장을 열고 나아간 여러 나라들이 있었으나, 근래에 유럽 금융위기 국면 속에서 인사이더들의 양보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들의 사회적 협의체제는 사실상 결빙돼 있는 상태다. 국가 주도적으로 일방적인 ‘인사이더 낮추기’ 정치를 수행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그다지 효과적으로 이뤄지지 못하는 실정이다.

거의 유일하게 폴더모델의 나라답게 네덜란드 정도만 2013년 4월에 새로운 사회협약을 방대한 규모로 체결했다. 주요 내용은 대체로 ‘아웃사이더 올리기’를 지향하지만, 실상 사용자들이 협약대로 실행하기를 꺼려서 역시 실효성을 찾지 못하는 형국이라고 암스테르담대학의 마르텐 퀴네 교수는 전했다.

한국은 과연 어떠한 선택을 해 갈 것인가. 9월 협약은 일단 의제 범위를 보면, 인사이더 낮추기와 아웃사이더 높이기 모두를 지향하고 있는 듯하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실행해 가느냐에 있다. 낮추기와 높이기의 범위와 속도 그리고 순서 등을 어떻게 정해 나가느냐가 분명 그 핵심이다. 이는 당연히 보다 심도 있는 논의와 설득의 정치를 추가적으로 진행할 것을 요청한다.

답이 어떻게 나오든 중요한 것은 모처럼 실낱같이 부활한 ‘대화체제’에 대한 존중, 그 틀 안에서 답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정부는 윽박지르고 노조는 떼쓰고 사용자는 뒤에서 밀어 대는 이전투구식 몸싸움으로는 우리 미래를 위해 온당한 결정이 나오기 힘들다는 걸 모든 국민은 알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mjnpark@kl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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