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촌놈한테 자라는 작은 강에 사는 새끼 거북이처럼 생긴 동물이다. 백과사전은 한반도, 중국 동북지방, 러시아 극동에 서식한다고 말한다. 어릴 적 동무들과 ‘그랑’에 가서 ‘히야’들이 잡는 걸 본 적 있다. “손가락 물리면 짤린데이.” 히야들의 표정이 진지했다.

하지만 이제 자라 하면 동물이 아닌 옷을 떠올린다. 의류 브랜드 Zara 말이다. 자라는 인디텍스(Inditex)라는 스페인 다국적 의류업체가 만드는 브랜드다. 인디텍스는 자라 홈, 풀 앤 베어, 버슈카, 마시모 두티, 스트라디바리우스, 오이쇼, 우떼르께, 이터퀘 같은 브랜드도 만든다. 한국에도 진출해 있다. 지난해 매출액이 181억유로에 이르는 인디텍스에 직접 고용된 노동자는 13만명이 넘는다. 40개국에 흩어져 있는 5천382개 공급업체를 통해 간접고용된 노동자는 100만 명을 넘는다. 물론 연간 9억 벌 옷의 대부분을 만드는 이들은 공급업체에 속한 노동자들이다.

인디텍스는 국제노조 인더스트리올과 국제기본협약(Global Framework Agreement)을 체결하고 있다. 국제기본협약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정책에 개입하려는 국제노조의 중요한 전략이다. 국제노동기구(ILO)의 핵심 노동기준을 토대로 한 노동자 기본권을 해당 다국적기업을 위해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적용하는 데 목적을 둔다. 직접고용 노동자뿐만 아니라 간접고용 노동자에게도 같이 적용하는 게 원칙이다. 생산품 대부분을 지구적 공급사슬(global supply chain)에 의존하는 인디텍스 같은 다국적 의류기업의 노사관계에선 중요한 수단이다. 기본권 보장이 원활한 원청 노동자들보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처지에 놓인 하청 노동자들의 권익개선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이달 중순 베트남 하이퐁에서 인디텍스노동조합 네트워크회의가 열렸다. 회의는 베트남노총(VGCL), 인더스트리올, 프리드리히에버트재단이 함께했다. 베트남에서 인디텍스에 옷이나 신발을 공급하는 업체는 102개로 10만명 넘게 고용돼 있다. 그중 59개가 북부에 몰려 있다. 베트남 북부에 위치한 40개 공장의 노조간부를 초청했는데, 회의에 참가한 단위노조 간부는 20명에 불과했다. 참가 20개 공장 중 베트남 기업은 15개, 한국 기업은 5개였다. 부가가치가 낮은 단순 봉제 생산라인들은 예상보다 현지화가 크게 진척돼 있었다. 종업원이 3천명이 넘는 대공장은 2개뿐이었고, 대부분 500명~3천명 수준의 중소 규모였다. 모두 인디텍스 브랜드 자라를 만들었지만, 대부분 망고나 갭, 그리고 H&M 같은 다른 의류회사 브랜드도 같이 만들고 있었다.

회의 목적은 베트남 북부 노조 네트워크를 시작으로 내년 상반기에 중남부 네트워크를 만들고, 1년 후엔 베트남 전국을 포괄하는 노조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공장별로 쪼개진 단체교섭을 전국 수준으로 발전시켜 인디텍스 베트남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102개 공장 모두를 포괄하는 단체협약을 만들자는 구상이다.

참가자들의 특성과 관련해 흥미로운 점은 조합원 다수가 생산직 노동자들임에도 단위노조 위원장을 비롯한 간부들은 중간관리자나 노무담당자가 많다는 점이다. 생산직 간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든 참가자들은 공통된 문제로 장시간 노동과 낮은 임금을 들었다. 주당 노동시간은 48시간에서 70시간에 달했고, 주로 60시간 안팎이었다. 월급은 15만원에서 30만원 수준이었다. 국제기본협약을 알고 있는 단위노조 간부는 얼마 없었다.

베트남 섬유의류 산업을 보면 5천개 업체에서 250만명이 한 해 30억 벌의 옷을 만든다. 신발 산업은 600개 기업에서 100만명이 한 해 8억 짝의 신발을 제작한다. 수출액은 의류산업이 250억달러, 신발 산업이 120억달러에 달한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타결로 베트남 섬유·의류·신발 산업은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할 것으로 예상된다.

베트남 정부는 2030년까지 440만명이 관련 산업에 고용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단순한 가공-봉제 수준을 뛰어넘어 높은 부가가치와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지구적 공급사슬에서 우위를 점하는 베트남 의류기업이 등장하길 바란다.

인디텍스 노조 네트워크가 원활히 작동해서 초보적인 내용이기는 하나 전국 수준의 단체협약을 만들게 된다면, 이는 베트남 노조운동에서 최초의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사실 이러한 형식의 다국적기업 노조 네트워크는 기업별 노조주의가 여전한 한국이나 일본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중국에서는 세계화를 전구화(全球化)라 부른다. 지구 전체에 한꺼번에 영향을 끼친다는 뜻으로 globalization의 원래 뜻에 가깝다. 좋든 싫든 자본의 흐름은 지구화된 지 오래다. 자라 같은 의류 브랜드 공급사슬이 대표적이다. 자본의 도전에 대한 노동의 응전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나아가 노동은 어떻게 자본에 도전할 것인가. 하노이 공항을 떠나는 비행기에 오르며 든 생각이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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