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토론회를 연다고 해서 왔는데 이런 분위기에서 자유로운 토론이 되겠습니까? 10년 전 비정규직 ‘보호법’을 제정할 때도 그랬습니다. 노동자들은 (그런 법이라면) 보호받지 않아도 좋다는데도 정부와 기업은 비정규직법을 제정해 ‘보호하겠다’고 했지요.”

끝까지 자리를 지킨 이정식 한국노총 사무처장의 발언이었다. 비표를 발급해 가면서까지 출입인원을 통제한 토론회였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가 토론회를 통해 노사의 공감을 얻고자 했다지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실제 당일 정부종합청사까지 왔던 많은 이들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더구나 진정 노동자를 위한 토론회여야지 학자들의 권위를 빌려 정부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는 날카로운 지적이 잇따랐다.

이러한 지적에도 더 이상 이런 식의 자유로운 토론도 없을 것 같은 불안한 예감이 든다. 기우에 불과하길 바랄 뿐이다. 토론회 방향과 결론은 예상과는 달랐다. 종착지는 달랐지만,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관한 행정해석 변경과 저성과자 해고제도 도입 방식에 대해 정부측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일치했다. 바로 입법을 통해 해결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위 제도의 가치와 노동현장에서의 영향력을 감안할 때 안정적인 법률만이 제도로서 규범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이에 대해 유독 정부측에서는 시급히 행정해석을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지만 아마도 끝까지 유지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토론회에 관한 언론보도가 흥미롭다. 상당부분 정부의 목소리를 대변해 온 매체에서도 노사정위 토론에 대해 그다지 시비를 걸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위 두 가지 의제가 곧장 노동부의 행정해석으로 도입될 가능성은 낮아졌다.

그럼에도 노사정 각 당사자와 토론에 참여한 학자들은 노동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문제에 대한 이해 정도와 노동의제를 풀어가는 방법에 대해 여전히 커다란 입장차를 보였다.

“저성과자 퇴출 대상은 노동자가 아니라 공기업 운영 주체가 우선이다. 무엇보다 이미 현장에서는 오래 전부터 저성과자 퇴출이 시행되고 있는데 무슨 새로운 것처럼 저성과자를 꺼내는지 모르겠다”는 박수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같은 분명한 지적이 있는가 하면 이와는 정반대 편에 선 주장도 있었다. 일부 토론자와 정부측에서는 줄곧 “취업규칙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거나 특히 “현재의 노동개혁을 10%도 안 되는 노동조합이 반대하고 있다”는 식의 주장을 반복했다.

사실이 아니지 않는가. 노동조합에는 단체협약이 있다. 취업규칙보다 높은 보장을 받는다는 것은 상식이다. 논리적으로는 취업규칙 해석 문제에 전력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에 반해 취업규칙은 그야말로 노동자의 근로관계를 결정짓는 핵심 규범이다. 특히 노동조합이 없는,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못한 노동자들에게는 절대적이다. 노동 3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반드시 지켜 내야 하는 목숨과도 같은 소중한 제도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노동자들이 현행법에서 정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제도를 지키려 하는 이유다.

토론회를 챙겨 볼 시간조차 없는 대다수 노동자들이 볼 때는 지난해부터 이어온 노사정 대화와 이번 토론회는 “그들만을 위한” 그저 주기마다 찾아오는 “행사”에 불과할 것이다. 정부가 던진 의제를 막기에 급급하지 말고 노사정은 노동자들이 진정 요구하는 문제인가 하는 고민을 해 봐야 한다. 그게 바로 “노동개혁”이지 않겠나. 박수근 교수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 훨씬 큰 의제”라고 단언했다. 동의한다.

아마 더 큰 의제로 나아가기에는 상황이 녹록지 않은 게 사실이다. 노동부 장관은 간데없고 여당 대표와 정부의 노동에 대한 몰이해가 그 시작조차 알 수 없을 지경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은 쇠파이프에 의지하는 것처럼 말하거나 대화 당사자도 아니면서 마감 시한을 선언하는 도를 넘는 모습은 할 말을 잃게 한다.

늦어도 올해 안에는 노사정 회의가 “합의”든 “결렬”이든 결론이 날 것이다. 이번 토론회 결과를 반영한다면 다음번에는 취업규칙 불이익변경과 저성과자 해고에 관한 입법 문제가 깊이 논의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때는 반드시 전체 노동자를 위한 의제가 선정됐으면 한다. 노동권 보장 강화에 관한 제도 보완이다.

마침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이 화제다. 미국 노동절을 맞이해서 그는 “누군가 내 뒤를 든든하게 봐주기를 바라는가. 나라면 노조에 가입하겠다”라고 했다. 우리가 그토록 따라가고 싶어하는 자본주의 본산 대표자의 제안이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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