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미래연구원과 경제개혁연대 등 주최로 31일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노동시장 개혁, 어떻게 해야 하나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인제 새누리당 의원, 장하성 경제개혁연구소 이사장,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천정배 무소속 의원,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 정기훈 기자

“정부가 사회적 공감대 없이 노동개혁을 추진하면 첨예한 갈등을 유발하게 된다. 노동계에도 개혁에 참여할 명분을 줘야 한다.”(이원덕 이수노동포럼 회장)

“노동계가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을 개악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가 쉬운 해고를 추진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일자리 지속성이 약한 나라다.”(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국가미래연구원·경제개혁연구소·경제개혁연대가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2층 릴리홀에서 ‘노동시장 개혁, 어떻게 해야 하나?’를 주제로 공동으로 개최한 토론회에서 나온 말이다.

3개 단체는 진영을 넘어선 대화채널을 구축한다는 취지로 지난 6월 말부터 ‘보수와 진보, 함께 개혁을 찾는다’는 타이틀로 시리즈 토론회를 이어 가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도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패널이 각각 발제를 담당했다. 그런데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발제자의 입에서도 정부의 노동개혁 추진방식을 비판하는 발언이 나온 것이다.

보수 패널 "노동계 노동개혁 참여 명분 없다"

이원덕 회장은 발제(노동시장 개혁, 왜·어떻게 추진해야 하나?)를 시작하기 전에 “보수진영 발제자가 왜 저런 얘기를 하느냐는 말을 들을지도 모르겠다”고 운을 뗐다.

보수적인 관점에서도 정부 노동정책의 문제점이 드러난다는 지적이다. 그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1차적인 문제로 양질의 일자리 부족 현상을 꼽았다. 예컨대 300인 이상 대기업·금융기관·공공부문 양질의 일자리가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취업자 대비 11.6%인 300만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특히 “15~29세 청년층의 괜찮은 일자리가 2005년 이후 7만5천개나 감소했다”며 “일자리 부족 때문에 청년들이 아득히 높은 직업절벽에 직면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괜찮은 일자리 부족은 노동시장 양극화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 회장에 따르면 고착화된 이중구조가 나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는 “네덜란드·벨기에·룩셈브르크에서는 70% 이상의 비정규직이 3년 이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반면 우리나라는 22%에 불과하다”며 “우리나라에서는 한번 비정규직이면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비정규직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대기업·정규직 위주로 조직된 노조들 역시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조합원들의 임금인상과 고용안정에 주력한 나머지 미조직·비정규 노동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사용자 입장에서는 유연하지 않고, 근로자 입장에서는 직업 안정성이 높지 않다”며 양쪽의 양보와 협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노동계가 기존 연공급제를 유지하는 것과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것 중 어느 쪽이 고용안정에 유리한지 따져 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사용자에게는 노동시간단축과 정규칙 채용 관행 확산을 주문했다.

이 회장은 현재 진행 중인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사회적 대화와 관련해 “정부가 노동개혁에 필요한 명분을 제공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노동계가 정부 노동개혁을 ‘더 쉬운 해고’라고 주장하면서 이미 많은 근로자들의 심정적 공감을 확보한 상황”이라며 “정부가 2030년까지 양질의 일자리를 1천만개로 늘린다고 약속하고, 실현 가능한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했을 때 노동계도 개혁에 참여할 명분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재벌개혁-노동개혁, 패키지로 다루자”

김유선 선임연구위원은 ‘노동시장 진단과 개혁과제’ 발제를 통해 노동시장 유연화에 방점을 찍은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졌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정부·여당이 노동개혁 모델로 앞세우는 독일 하르츠 개혁과 관련해 “우리와 독일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선임연구위원에 따르면 2011년 기준 우리나라 임금노동자 중 근속 1년 미만 단기근속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35.5%다. 독일(15.7%)에 비해 훨씬 높은 수치다. 같은해 우리나라에서 근속 10년 이상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18.1%였지만 독일은 43.2%나 됐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고용안정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국가인 데 반해 독일의 정규직 보호수준은 OECD 국가 중 1위”라며 “이처럼 상황이 전혀 다른데도 정부가 함부로 하르츠 개혁을 앞세워 노동개혁을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15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4.4%였는데, 노동자들의 실질임금 인상률은 1.4~2.6%에 불과했다고 강조했다. 그 결과 ‘임금 없는 성장’과 재벌들의 막대한 사내유보금으로 귀결됐다는 설명이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2009년 이후 4년간 10대 재벌의 사내유보금은 234조원 늘었지만 실물투자는 20조원 감소했다”며 “중소·영세업체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에게서 거둬들인 초과이윤이 몇몇 재벌에게 집중됐고, 다수 국민이 소비여력을 잃어 재벌들도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정부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대로 올해 말까지 공공부문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 전환을 유도하고, 민간 대기업에서도 고용형태 공시제 등을 통해 정규직 전환을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기업의 수익이 경영진에게 집중되는 것을 줄이기 위해 최고임금제 도입도 제안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임금체계 개편이나 일반해고 요건완화에 대해서는 “조기퇴직을 유도하는 정책으로 국회 입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은 지나친 노동시장 유연화와 불안정성 해소가 당면과제인 만큼 정부와 재계는 시장근본주의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재벌개혁과 노동시장 개혁을 패키지로 다루는 새로운 노사정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상자]여야 대표, 임금피크제 놓고 '설전'

31일 국가미래연구원·경제개혁연구소·경제개혁연대가 공동으로 개최한 ‘노동시장 개혁, 어떻게 해야 하나?’ 토론회에 여야 정치인들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여야 대표들은 임금피크제를 두고 정반대의 의견을 펼쳤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토론회에 앞선 인사말에서 “최근 청년실업률이 발표될 때마다 2000년 이후 최고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청년고용 문제가 심각하다”며 “여기에 내년부터 충분한 준비도 없이 정년 60세가 의무화된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정년연장으로 연평균 10만명이 노동시장에 남게 돼 향후 3~4년간 청년세대에게는 고용절벽이 다가올 것으로 예측된다”며 “많은 전문가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직적이고 불공정한 우리 노동시장의 제도와 관행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년일자리 창출을 위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곧바로 인사말을 이어 간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김 대표의 임금피크제 언급에 대해 “허황된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문 대표는 “우리나라 노동자의 평균 퇴직연령은 53세로 67%의 근로자가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직장을 떠난다”며 “이들을 더 오래 일할 수 있게 하는 과정에서 임금피크제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것도 노사가 자율로 도입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표는 “임금피크제로 18만개 청년일자리가 만들어진다는 주장은 정말 근거 없이 허황된 것으로 청년일자리 정책의 무대책을 보여 줄 뿐”이라며 “임금피크제가 노동개혁의 핵심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그야말로 무지하거나 노동개혁의 본질을 외면하는 주장”이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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