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26일 아침에도 한국노총 건물 주위에는 피켓을 든 조합원들로 가득했다. ‘현장 조합원’이라 밝히고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복귀를 반대한다”는 취지의 팻말을 들었다. 그리고 이날 어렵사리 한국노총은 노사정위 복귀를 결의했다. 이후 협상은 집행부에게 위임했다. 회의장 밖에서는 현장 조합원들의 반대가 이어졌다.

한국노총이 노사정위 복귀를 결정한 것과 관련해 비판과 환영, 우려의 시선이 엇갈리고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다만 조직적 결의 자체는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인 것으로 보인다. “협상을 통해 현장 노동자들을 위한 성과를 이끌어 내 달라”는 조합원들의 주문이다. 아마도 이러한 기대를 저버리고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한국노총은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한국노총은 다시 한 번 현장 조합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돌아보면 지난 한 달 반 동안 한국노총은 현장과 소통하는 데 열과 성을 다했다. 장마와 태풍을 이기며 천막농성과 집회를 이어 왔고 공단과 지하철역으로 달려가 출퇴근 시민과 노동자들에게 한국노총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그들의 의견을 들었다. 다행히 다양한 매체를 통해 노사정 각 주체의 주장을 본격적으로 검증하는 기간이기도 했다.

“드디어 한국노총이 제대로 한다”는 격려부터 “지금까지 한국노총이 한 게 뭐가 있느냐”는 차가운 평가도 있었다. 비판도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을 통해 노동이 다시 한 번 우리 사회의 최대 관심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다. 오랜만에 “현장과 함께한다”는 모습을 보여 줬다. 노동자와 시민들이 한국노총의 존재에 관심을 가진 게 그야말로 얼마만인가.

이런 공감이 혹시 노사정위 복귀로 무너져 버릴지 모른다. 조합원들의 걱정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노사정위에 임하더라도 한국노총은 조합원들의 우려를 불식시킬 큰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

현장 조합원들이 원하는 최우선 성과는 자존심을 버리지 말아 달라는 것으로 들린다. 3~5년마다 이어져 온 사회적 합의에 한국노총이 동의해 줬지만 매번 “이용만 당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합원들이 노사정위에 부정적인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그만큼 한국노총이 조합원들에게 신뢰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이번이 조합원이 준 마지막 기회다. 조합원들과 현장 노동자들의 신뢰를 회복할 절체절명의 기회라는 각오가 필요하다. 복귀에 반대하는 조합원들의 진정한 뜻도 “이용당할 것이 뻔한데 왜 다시 복귀하려 하느냐”다. 즉 “이용당하지 말아 달라”는 뜻 아니겠는가.

내용적으로는 한국노총이 내건 수용불가 사항뿐 아니라 전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지키고 끌어올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 지난 4개월여 동안 보수언론과 정부에서는 한국노총을 기득권 집단으로 매도했다. 다양한 의제가 있음에도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관한 행정해석 변경과 임금피크제 및 저성과자 해고 문제를 집중적으로 부각하는 데 열을 올렸다.

억울한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실제 한국노총은 이 부분에 한해 반대하는 것처럼 광고됐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청년들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정부가 넓게 쳐 놓은 그물(프레임)에서 아직까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논리적으로는 우리 의견이 충분하지만 정부 광고에 더 많이 노출된 시민들의 감성까지 바꿔 놓지는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 해결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한국노총은 현장 조합원뿐만 아니라 이보다 앞서 우리 사회 노동현장 전체 노동자들을 위해 이번 협상에 임하고 있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줘야 한다.

작은 전술이지만 “수용불가 사항만 아니면 어떤 합의도 가능하다”는 인상을 깔끔하게 지워 버려야 한다. 한국노총 입장에 대한 왜곡선전임을 밝혀야 한다.

오히려 청년·여성·비정규 노동자들과 최저임금 수준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 다행히 이에 관한 논의는 이미 충분하다. 나아가 개별적인 근로조건 못지않게 의제에서 멀어지고 있는 전체 노동자들의 노동 3권을 전면적으로 보장하는 방안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