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현아 공인노무사(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 노동법률상담소)

인천 부평에 위치한 모베이스라는 휴대폰 케이스 제조하는 회사에서 생산직 파견으로 일하다 해고된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은 A 아웃소싱 소속으로 6개월 일하고, 연이어 B 아웃소싱 소속으로 6개월 일한 뒤 또다시 A·B 아웃소싱 업체 소속으로 일했다. 6개월이 끝나는 날이면 아웃소싱 업체 직원들이 현장으로 온다. 그들은 사직서와 함께 다음 업체 근로계약서를 가져와 동시에 받아 갔다. 모베이스는 정규직 관리자들에게는 상여금 400%를 줬고, 비정규직 신분인 생산직 노동자들에게는 상여금 200%를 지급했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일단 불법파견으로 회사를 고소했다. 그런 다음 비정규직임을 이유로 한 불합리한 차별을 시정해 달라며 인천지방노동위원회에 차별시정신청을 접수했다.

그런데 파견회사들이 모두 망해 버렸다. 노동위원회가 차별에 대한 책임을 파견업체한테만 물으니 차별을 인정받아도 시정할 길이 없었다. 이들이 근무한 2년 반 동안 관련 파견업체만 9개였는데, 이상하게도 원청인 모베이스와 파견계약이 해지된 파견업체들은 하나같이 폐업했다. 그나마 살아 있는 파견업체들은 노동자들에게 전화해서 우리도 곧 문 닫을 것이니까 대충 합의해서 돈이라도 받고 끝내라는 식으로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은 “사용사업주와 파견사업주는 비정규직임을 이유로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을 해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노동위원회는 임금지급의무는 파견사업주에게 있으므로 책임은 파견사업주에게만 있다고 판정했다.

인천지노위도 파견사업주한테만 책임이 있다며 사용사업주에 대해서는 각하처분을 내렸다. “영희와 철수가 청소해”라는 말은 영희랑 철수가 같이 청소하라는 말이라는 것을 초딩도 알 텐데도 노동위가 '연대'라는 표현이 없다고 근로기준법 책임영역을 나눈 파견법 제34조를 끌고 와서 힘이 약한 하청에게만 책임을 물은 것이다.

사용사업주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차별시정제도는 파견노동자들에게 있으나 마나 한 제도다. 대부분의 파견업체들은 원청에 기생해 노동자들의 임금에서 수수료만 빼 가는 존재다. 지급능력도 없고, 사업에 큰 자본이 들지 않으므로 법인 폐업도 쉽다. 그리고 사용사업주가 지시하는 대로 근로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어 파견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은 사실상 사용사업주가 결정한다.

행정소송까지 각오하고 있었는데 예상외로 중앙노동위원회가 해석을 바꿨다. 중앙노동위는 최초로 사용사업주와 파견사업주가 연대해 불합리한 차별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판정했다. 중노위는 ① 법문에 “사용사업주와 파견사업주”로 돼 있으므로 차별을 하지 말아야 할 의무가 둘 다에게 있다는 점 ② 사용사업주와 파견사업주가 맺은 계약 자체에 차별금지 위반의 내용이 있었다는 점 ③ 사용사업주가 불법파견으로 인해 직접고용 의무 시정명령을 받은 점 ④ 법원(민사, 현대자동차 사건)도 연대책임으로 해석하고 있는 점 ⑤ 파견법 제20조 제2항에 사용사업주가 파견사업주에게 파견근로자와 동종·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의 임금 및 근로조건에 대한 정보를 서면으로 제공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는 점 ⑥ 파견사업주에게만 책임을 물으면 제도의 실효성이 없다는 점 ⑦ 파견법 제34조는 근로기준법에 대한 특례이지 차별적 처우에 대한 특례 조항이 아니라는 점 등 10가지를 근거로 들었다. 덧붙여 해당 차별은 고의성이 있으니 차별액수의 두 배만큼 보상하라고 배액배상명령까지 내렸다.

중노위가 그동안의 해석을 뒤집고 법문과 법의 취지에 충실한 해석으로 바꾸는 결단을 내려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렇게 좋은 선례를 만들 수 있게 버텨 준 노동자들이 정말 고맙다.

그러나 걱정이 하나 있다. 회사가 이행하지 않으면 강제할 수 있는 제도가 없다는 것이다. 차별에 대한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배상명령액만큼의 과태료가 나오는데, 이는 시정명령이 확정됐을 때나 부과되는 것이다. 따라서 회사가 행정소송으로 계속 끌면 결국 민사로 갈 수밖에 없다. 해당 사건은 민사도 같이 제기된 상태라 다행이다. 앞으로 차별시정제도를 찾는 파견노동자들을 위해 이행강제금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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