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성희 기자

"처음에는 감염관리가 중요하다느니 국립중앙의료원이 그래서 중요하다느니 그렇게 떠들고, 다 해 줄 것처럼 얘기했죠. 이제 그런 얘기는 쏙 들어갔어요. 에볼라 때도 그랬어요. 보상요? 일하는 사람들은 그냥 일회용품처럼 소진된 거죠."

국립중앙의료원에서 만난 간호사 김은영(37·가명)씨의 얼굴이 영 밝지 않다. 국립중앙의료원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중앙거점의료기관이다. 온 국민을 공포로 내몰았던 메르스 사태가 종식 선언만 남았다는 얘기가 나오는 형편이라 김씨의 반응은 의외였다. 실제 국립중앙의료원도 평온한 듯 보였다. 일반 진료를 중단한 지 42일 만인 지난 20일 다시 문을 열어 외래접수처에는 평소처럼 방문객들이 오갔다. 정문 앞에서는 여전히 마스크를 쓴 간호사들이 방문자의 체온을 점검했지만 병원을 드나드는 사람들 중 마스크를 쓴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국립중앙의료원에 수용된 메르스 관련 환자는 완치 후 재활치료 중인 4명뿐이다.

국립중앙의료원은 1번(째) 감염자로 불리는 메르스 환자가 입원한 5월20일 이후 두 달간 전국에서 이송되는 메르스 확진환자들을 전담했다. 총 40명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도 이곳을 찾아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메르스 사태 종식을 앞둔 지금, 정작 의료노동자들은 관심거리도 아니다.

강제연차 사용에, 비정규직은 계약해지

국립중앙의료원이 메르스 확진환자 전담병원이 되면서 고참 간호사나 감염관리 간호사들은 중증환자를 전담하느라 시간외근무를 밥 먹듯 했다. 병원 기숙사나 빈 병실에서 숙식을 해결하기도 했다. 지난달 환자가 급증하고 이에 따라 간호사들의 업무스케줄이 정해지면서 피로도가 배가됐다.

지혜원 보건의료노조 국립중앙의료원지부장은 "오늘 밤 환자가 온다고 하면 그날 밤에 간호사들에게 연락을 돌려 다음날 아침 근무자를 정하는 식"이라며 "새벽 3시에 카카오톡으로 아침 7시에 출근하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간호사 김씨도 "5월20일 이후 지금까지 집에 딱 네 번 들어갔다"며 "한 달 내내 새벽 4시에 자고 아침 7시에 일어났다"고 말했다.

반면 근속연수가 짧거나 수술실 등 특수분야 간호사들은 '강제 연차휴가'를 써야 했다. 일반 환자들은 없고, 숙련도상 메르스 환자를 전담시키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수술실 간호사 전연주(28·가명)씨는 지난달 중순 수술실이 폐쇄된 이후 병동으로 파견됐다. 그런데 지난주에는 '근무 병동을 폐쇄했으니 출근하지 말라'는 의료원의 지시로 1주일을 내리 집에서 보내야 했다. 전씨는 "출근 3시간 전에 문자 한 통으로 지시한 것도 그렇고, 내가 원해서 쉬는 게 아닌데도 연가를 쓰라고 하니 답답하더라"며 "올해 연가를 이런 식으로 다 써서 연말까지 어떻게 버틸 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지난달 말이 계약 만료시점이었던 비정규직 일부는 아예 병원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의료원측이 일반환자가 없어 인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며 포괄간호서비스병동의 계약직 간호조무사나 간병사·식당·청소용역 노동자들 일부의 계약을 갱신하지 않은 것이다. 지 지부장은 "통상적으로는 계약을 갱신해 왔던 사람들"이라며 "일단 사태가 해결되면 다시 부르겠다고 했다던데 얼마나 돌아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했다.

의료원은 지난 20일 직원들에게 시간외수당을 지급하고 3~5일의 특별포상휴가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시간외수당 정산기준이 명시되지 않았다. 그나마 사실상 유일한 보상대책인 특별휴가는 조건이 까다로워 그림의 떡이다. 의료원은 특별휴가 대상을 30일 이상 메르스 환자를 직접 돌본 의료진으로 한정했다. 이 기준대로라면 환자를 돌보다가 열이 나 격리됐거나, 간접지원업무를 맡은 간호사들은 제외된다. 지부는 간호사 330여명 중 35% 정도만 휴가를 받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 조합원은 "시간외수당 산정기준이 불명확하니까 신청한 것보다 적게 줄 거라는 말이 돈다"며 "수당이 100만원을 넘으면 상한선을 두고 자를 것 같다는 얘기도 있다"고 전했다. 이 조합원은 "직원 전체가 다 같이 고생한 건데 휴가조차 날짜나 업무를 갖고 자른다고 하는 건 상대적 박탈감까지 들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사태 끝나니 임금피크제 칼 겨눠

지 지부장은 "병원도 너무하지만 더 너무한 건 정부"라며 "진료수익이 없어서 정부 지원이 없으면 당장 월급도 걱정되는 형편인데, 정부는 의료원이 법인이니까 자체 수익으로 해결하라면서 지원을 해 줄지 말지 간을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립중앙의료원은 지난 6월 메르스 대응 관련 추가경정예산 401억원을 요구했다. 메르스 대응에 따른 올해 자체수입 감소분과 당직수당·위험수당을 포함한 인건비, 장비와 시설비를 포함한 금액이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의료원에 대한 별도 지원을 거부했다. 전체 의료기관 피해지원 예산 1천억원 중에서 일부만 배분하겠다는 것이다. 의료원이 신종 감염병 관리·대응체계 구축을 위해 수립한 예산 194억은 아예 논의 대상에 들지도 못했다. 감염병 전문센터나 교육시스템, 인력충원 같은 '메르스 대책'에 쓸 재정적 근거가 날아간 셈이다.

정부가 이 와중에 임금피크제 도입을 강요하면서 노사갈등의 불씨를 키우고 있다. 의료원은 지난 6일 '의료원 운영정상화 추진세부실행계획'을 발표했는데, 여기에‘공공기관 임금피크제 도입계획 수립’을 명시하고 있다. 의료원은 올해부터 공공기관 경영평가 관리대상에 포함됐다. 정부가 경영평가에 임금피크제 도입실적을 반영하겠다고 밝힌 만큼 의료원으로서는 압박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의료원은 이미 정년이 60세로 정해져 있는 상태로, 일정한 연령이 지나면 호봉을 인상하지 않는다. 지부가 "사실상 임금피크제에 준하는 처우를 받고 있다"며 반발하는 이유다. 지 지부장은 "스물두 살에 입사한 내 경우는 30호봉이 되는 52세부터 8년간 호봉이 동결된다"며 "간호사들이 대개 20대에 입사해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메르스 전담병원이라며 힘든 일은 다 시키다가 사태가 끝나가니 임금피크제 받으라고 칼을 겨누는 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는 다음달 초 메르스 종식을 선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벌써부터 메르스 이후 신종감염병 유입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때 노동자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지 지부장의 말이 귀에 어른거렸다. "앞으로 더 강력한 감염병이 올텐데 공공병원이나 노동자들을 급할 때 갖다 쓰고는 이렇게 내버리면 다음에 누가 이런 일을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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