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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대안적 경제재건 계획에 지지를
▲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그리스가 사실상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했다. 국제채권단이 구제금융 대가로 요구한 구조조정안에 대해 치프라스 총리가 지난 토요일(6월27일) "국민투표로 결정하겠다"고 선언한 것이 발단이다. 그리스 정부가 국민에게 국제채권단에 맞서 함께 싸우자고 한 셈이다. 국민이 현 정부의 손을 들어주면 그리스는 유로존 탈퇴 쪽으로 방향을 잡게 될 것이고, 국제채권단의 손을 들어주면 현 정부가 퇴진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릴 것이다.

그리스 정부가 유럽연합집행위원회·국제금융기구·유럽중앙은행으로 구성된 국제채권단과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은 정부 재무구조 개선방안이다. 국제채권단은 연금을 개혁하고, 정부 복지지출을 줄여 채무 상환액을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 그리스 정부는 채무를 상환할 돈으로 먼저 투자를 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사실 국제채권단의 요구는 이미 5년 동안 이전 정권에서 충분하게 실행된 것들이다. 그리스는 2010년 1차 국가부도가 난 뒤 5년간 정부지출을 30% 가까이 줄였다. 하지만 이런 긴축재정의 결과 빚이 오히려 늘었는데, 국가경제 자체가 크게 위축되다 보니 세입도 함께 감소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5년간 국내총생산(GDP)이 25% 줄어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세계에서 경제가 가장 어려워진 나라가 됐다. 실업률이 치솟았고, 자영업자들이 몰락했으며, 부자들은 자산을 해외로 빼돌렸다.

그리스 현 정부는 채무상환을 연기하고 당장 그 돈을 산업육성에 쏟고, 재벌들의 부를 사회적으로 통제하는 구조개혁을 단행해야 한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그리스는 2000년대 내내 금융세계화에 취해 있었다.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산업 대신 부동산 투자에 열을 올렸고, 부자들에게 세금을 걷는 대신 해외투기꾼들에게 국채를 팔았다. 이러한 구조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빚을 갚을 수도 없고, 갚더라도 국민경제는 파탄 난다는 게 그리스 정부의 판단이다. 조지프 스티글리츠나 폴 크루그먼 같은 세계적 경제학자들도 채권단보다는 그리스 정부의 판단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한국 보수언론들은 복지병으로 그리스가 부도났다고 주장하지만 그리스 부도는 복지병이 아니라 2000년대 그리스 정부와 부자들의 '흥청망청 투기병'을 진보세력이 막아 내지 못한 탓으로 보는 게 맞다.

그리스는 2001년 유로존에 가입한 후 강한 화폐로 인해 부동산 가격이 크게 상승했다. 지중해의 아름다운 해변이 자연의 경이로움이 아니라 높은 부동산 수익률로 더 많이 보도됐을 정도다. 자본은 산업이 아니라 부동산에 집중됐고, 생산재보다는 사치재 산업이 성장했다. 80~90년대 그리스 경제에서 15~20%에 달하던 제조업은 2008년에는 10%도 되지 않았다. 그리스 국채는 독일·스웨덴·네덜란드 금융투기꾼들에게 좋은 투자대상이 됐다. 그리스 정부는 정치적 리스크를 안고 자산 수익으로 돈을 번 부자들에게 과세하기보다는 국채를 발행하는 길을 택했다.

이 과정에서 그리스 노동운동은 정부에 미래지향적 산업정책과 공정한 조세를 요구하지 못했고, 금융세계화 이득을 분배받는 것에 치중했다. 그리스의 진보적 정치세력들도 유로존과 금융세계화의 구조적 위험을 제대로 폭로하지 못했다. 2000년대 두 차례나 집권했던 그리스 사회당(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은 역설적으로 가장 적극적으로 금융세계화를 추진한 세력 중 하나였다.

시리자로 잘 알려진 현 그리스 집권여당은 국민투표를 통해 국제채권단의 구조조정안 대신 국민적 합의로 대안적 경제재건의 길을 가 보려 하고 있다. 국제채권단의 구조조정안은 채권회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리스가 그 빚을 다 갚는다 해도 나라 경제가 되살아나기는 쉽지 않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가장 우수한 졸업생으로 평가받는 한국만 봐도 그렇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받아들인 결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소득불평등과 그로부터 파생한 극단적 사회문제들이다. 20여년을 돌이켜 보면 결국 재벌들과 자산가들만 ‘구제’를 받은 셈이었다.

그리스에 대한 세계 노동자들의 지지가 필요하다. 자본의 구조조정이 아닌 노동자 구조개혁으로 경제재건을 일구는 대안이 나올 때가 됐다. 머지않은 미래에 한국 노동운동에 닥칠 일이기도 하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한지원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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