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홍보선전본부 국장

“노조와 조폭의 공통점이 뭔지 알아?”

90년대 후반으로 기억된다. 어느 술자리에서 노동조합 운동을 꽤 오래한 선배가 물었다. 글쎄요, 하는 얼굴을 하고 있는 사이에 선배가 말했다. “첫째는 검은 옷을 즐겨 입는다, 둘째는 조직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상납이 원활해야 운영이 잘된다, 셋째는 기를 쓰고 나와바리(세력권)를 넓히려 하고 침범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는 거야.”

하필이면 비교 대상이 조폭일까마는 지금 생각해도 꽤 그럴듯한 얘기다. 여전히 노동조합은 검은색 계통의, 물론 예전에 비해 색상이 다양해졌지만, 투쟁조끼를 입는다. 총연맹이나 산별연맹의 위상이 과거와 같지는 않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조폭보다는(!) 지휘계통이 훨씬 체계적이지 않나.

문제는 나와바리다. 노동조합 조직률은 뒷걸음치다가 십수 년째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늘어나는 비정규직을 조직화로 품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직 확대는 매년 사업목표로 등장하는 단골메뉴지만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결과물은 거의 없다.

그러나 지금 노동조합 앞에 놓인 더 큰 고민은 ‘확장’보다는 ‘수성’에 있다. 보수정권 8년을 보내면서 노동조합 운동의 입지는 쪼그라질 대로 쪼그라졌다. 오죽하면 "더 이상 당할 수 없다"는 구호가 나오겠나. 2009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노조법) 개정 이후 조금씩 빼앗기기 시작한 노동조합의 ‘자율성’은 어느새 벼랑 끝에 몰려 있다.

정부가 내놓는 정책 하나하나가 극악무도하다. 노사가 체결한 단체협약을 모두 조사해 시정조치하겠다고 하니 노동계에게는 ‘단체협박’으로 들린다. 국제노동기구(ILO)에 제소하겠다고 하자 내놓은 정부의 답변은 “궁극적으로 노사 모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합리적인 교섭관행 정착을 위함”이란다. 자율은 궁극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주며 불합리하다 하니 참으로 이 정부의 화법은 ‘아몰랑’이다. 한발 더 나아가 정부는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요건을 완화하겠다고 한다. 노조법 개정으로 조직을 무력화시킨 칼날이 이제 노동자들을 향하고 있는 형국이며 살도 빼앗고 뼈도 내어 달라는 상황이다. 이건 조폭이라도 못 참을 지경이 아닌가.

이러다 보니 한국노총을 비롯한 노동계가 총파업이라는 최후의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게 됐다. 물론 상황은 녹록지 않다. 총파업을 위한 총투표 준비단계부터 비상한 각오가 요구될 정도로 쉽지 않은 싸움이다. 노동계를 보는 정부의 시각은 ‘설마 파업을 하겠어?’와 ‘파업을 해 봤자’ 사이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원인이야 보수정권 탄압으로 피폐하고 무력해진 노동조합의 구심력일 것이다. 그리고 이는 해고와 임금삭감이 ‘네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문제’라는 정부의 언론플레이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문제’라는 노동자들의 생각이 만나서 낳은 결과물이다.

반나치 운동가인 마르틴 니묄러 목사는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라는 시에서 “그들이 처음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에. 이어서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에. 이어서 그들이 유대인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에. 그들이 내게 왔을 때 그때는 더 이상 나를 위해 말해 줄 이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라고 썼다. 내가 너를 위해 싸워야 하는 이유다.

유전자 물질인 DNA가 있다. 나는 노동조합의 DNA를 평등과 연대라고 생각한다. 돌이켜 보면 ‘기계를 멈추고 광장을 메운 노동자들과 힘차게 나부끼는 깃발’은 하늘에서 떨어진 선물이 아니라 선배 노동자들이 만들어 낸 산물이다. 여전히 노동자들에게는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다. 이제 잠자고 있는 노동자의 DNA를 깨워야 할 때다.

한국노총 홍보선전본부 국장 (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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