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사설로 정부의 메르스 불통을 비판하며 병원 공개를 주장했던 수많은 주류 언론들이 정작 정부 발표가 있기 전까지 정부의 애완견처럼 삼성서울병원을 ‘서울의 한 대형병원’이나 ‘D병원’으로 보도했다. 주류 언론이 하도 자주 ‘대형병원’을 들먹이는 바람에 ‘대형병원’이 고유명사처럼 들리기도 했다.

프레시안이 지난 4일 메르스 환자가 거쳐 간 6개 병원 이름을 공개한 뒤에도 주류 언론은 여전히 ‘대형병원’을 읊조렸다. 심지어 한 신문은 14번째 환자와 접촉해 35번째 환자가 된 삼성서울병원 의사와 직접 전화통화로 취재하고서도 5일자 신문 1면에 여전히 ‘서울 한 대형병원’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다음날인 6일자 아침신문에서도 ‘서울의 한 대형병원 응급실’이라고 보도하는 데 그쳤다. 진보를 자처하는 이 신문은 여러 차례 정부의 메르스 불통을 비판하는 기사를 쏟아 냈다. 이 신문은 프레시안이 병원 이름을 공개한 다음날인 5일자 ‘투명한 정보공개가 재난 극복의 출발점’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정부가 그리도 걱정하는 괴담을 막기 위해서라도 공신력 있는 정보의 제공이 시급하다”고 지적하면서 “병원 명단을 공개하면서 전염 발생 여부, 환자 관리 실태, 추가 감염 예방 조처 등을 상세히 설명하다면 병원 이용자와 지역 주민들이 오히려 막연한 불안감을 떨치고 합리적인 대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당시 사이버 공간에서는 메르스 괴담이 많이들 나돌았으니 이 신문은 자신들의 취재로 확인한 병원 이름을 섣불리 공개하느니, 공신력 있는 정부의 발표를 촉구하면서 기다렸다고 해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언론이라면, 그것도 스스로를 한국 최고의 공신력을 갖췄다고 자부하는 언론이라면 자신들의 취재로 명확히 확인된 ‘삼성서울병원’을 며칠씩이나 ‘서울의 한 대형병원’이라고 쓰지는 않는다. 이 신문이 프레시안의 실명 공개를 “메르스 환자들이 거쳐 간 병원들을 알려 주는 웹사이트” 정도로 치부했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실제 이 신문은 프레시안이 실명 공개기사를 쓴 다음날인 5일자 사설에서 병원 이름을 알려 주는 웹사이트까지 등장했다며 이를 괴담과 같은 영역으로 분류했다.

반면 정부 발표에 앞서 병원 이름을 실명으로 공개한 언론은 프레시안이나 뉴스타파 같은 대안 미디어였다. 이들의 과감한 보도를 후발 매체의 노이즈 마케팅 정도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지금도 주류 언론은 메르스 보도에서 자신들의 허물보다는 정부나 환자들의 허물을 들추는 데 급급하다.

정치적 입장이 서로 다른 주류 언론은 정부와 청와대의 무능한 대응을 비판하는 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동아일보는 8일자 논설위원 칼럼 <“메르스는 사스와 다르다”는 대통령>에서 “국내에 환자가 발생한 뒤에도 20일 가까이 우왕좌왕한 정부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이 칼럼은 서울시장의 4일 밤 기자회견 다음날 국립의료원을 방문한 대통령을 향해 “국가 운영에 책임을 지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 주기보다 변명하고 다른 사람을 비난했다”고 혹평했다.

이처럼 정부의 메르스 대응을 비판하는 기사는 넘쳐나지만 핵심을 짚는 비판은 드물다. 다만 정부가 1차 확산의 진원지였던 평택성모병원의 의심자와 일반환자 수십명을 강제로 퇴원시키는 바람에 전국적 확산을 부추겼다는 서울신문 9일자 6면 보도는 돋보였다. 평택성모병원은 지난달 28일 열린 대책회의에서 질병관리본부에 병원 내·외부를 통제하고 치료할 테니 전담병원으로 지정해 달라고 했지만 묵살 당했다. 결국 보건당국의 강제 퇴원조치로 50~60명의 환자가 평택성모병원 밖으로 나왔고 그 결과 이 병원을 거친 확진환자만 38명이나 됐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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