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소재 정수기 제조·판매업체 ㄱ사의 판매·관리사원으로 10년간 일한 A씨는 최근 퇴직금 한 푼 없이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A씨는 회사 유니폼을 입고 회사가 지급한 단말기를 통해 할당되는 정수기 정기 점검·관리 업무를 했다. 업무처리 결과도 단말기로 실시간 보고했다. 급여는 제품별로 책정된 수수료로 지급받았다. 그런데 회사는 그가 업무를 위탁받은 개인사업자라며 퇴직금 지급을 거부했다.

26일 한국여성노동자회는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접수한 평등의전화 상담사례 분석 결과를 발표하고 "A씨 같은 변칙적인 고용관계나 근로조건 변경 때문에 생긴 임금체불 관련 상담이 잇따르고 있다"고 우려했다.

같은 기간 이뤄진 766건의 상담 중 임금체불·부당해고 같은 근로조건 관견 내용이 40.9%로 가장 많았다. 지난해(38.2%)보다 늘어난 수치다. 근로조건 상담 중 가장 많은 유형은 임금체불(14.8%)이었다. 이 역시 지난해(13.7%)보다 증가했다.

여성노동자회는 "상담 과정에서 연장근로수당 미지급이나 최저임금 위반 같은 전통적인 임금체불 사례 외에도 A씨처럼 변칙적인 고용이나 근로조건 변경으로 인한 분쟁이 다수 포착됐다"고 설명했다.

부천의 한 프랜차이즈 미용실 헤어디자이너였던 B씨도 그런 경우다. B씨를 채용한 곳은 본사였지만 그가 일한 곳은 체인점이었다. 체인점에서 2년간 미용보조(스태프)로 일했고 정식 헤어디자이너가 된 뒤에는 1년 반 동안 체인점 두 곳에서 일했다. 하지만 퇴직할 때는 본사와 체인점이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면서 B씨는 결국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

배진경 여성노동자회 공동대표는 "경기가 악화되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문제가 임금체불"이라며 "임금체불 상승 경향성과 함께 현행법을 회피하려는 변칙적인 체불사례가 나타나고 있는 만큼 노동자성을 폭넓게 인정해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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