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위원으로 현장방문을 다녀왔다. 예상대로 최저임금 인상 수준을 둘러싼 노동자와 사용자의 입장이 날카롭게 대비됐다. 인상적이었던 건 지불능력을 차치한다면 사용자들도 인간답게 살기 위해선 최저임금을 상당한 정도로 인상해야 한다는 것에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는 거다. 문제는 단위 사업장 수준에선 해결할 방도가 없는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이었다. 바로 대기업이 슈퍼갑으로 군림하는 원·하청 경제구조가 최저임금 인상을 근본적으로 가로막는 장벽이었다. 비정규직과 영세 자영업자 등 힘없는 을끼리 논쟁해 봐야 슈퍼갑이 빠진 상태에선 답답한 심경밖에 남지 않는다. 결국 최저임금 인상 수준을 결정짓는 제반 하도급 산업구조의 폐해를 개선할 방도를 함께 마련하지 못하면 공허한 논란으로 그치기 십상이다. 거대한 장벽 앞에서 갈수록 고민이 깊어진다.

올해 최저임금이 뜨거운 화두로 부각됐다. 뜻밖에 최경환 부총리의 말 한마디와 알바몬 광고가 기폭제 역할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최저임금과 관련해 가장 큰 정치적 책임이 있거나 부당이득을 챙긴 당사자들이 최저임금의 사회적 공론화에 앞장선 꼴이 됐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열악한 실태가 심각하고, 더 이상 방치하면 전체 경제구조가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의 방증이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보낸 2016년 최저임금심의요청서에도 "저임금 근로자의 소득을 향상하고 노동시장 내 격차를 해소하여 소득분배 상황이 단계적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합리적 수준으로 심의·의결해 달라"는 새로운 내용이 추가됐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1만원 최저임금 인상을 공식적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바야흐로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대세처럼 보인다.

다시 한 번 상기해 본다. 한국의 비정규직 규모는 1천만명 내외로 추산된다. 분명한 건 1천900만 노동자의 절반이 훨씬 넘는다는 것이다. 임금을 비롯한 주요 차별지표는 역진불가 양상으로 점증해 왔다. 비정규직의 사회복지와 사내복지 모두 정규직 대비 3분의 1에서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비정규직 노조 조직률은 2~3% 수준으로 노동 3권이 사실상 무력화돼 있다. 노조를 만들어도 생존율이 낮고 장기투쟁으로 치닫기 일쑤다. 결국 현재의 재벌자본 편익 극대화 중심으로 고착화된 노동시장 구조 속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유노조 정규직과 무노조 비정규직 사이에 격차가 벌어지는 건 당연한 결과다. 이제 결과가 아니라 근본원인에 주목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선 백약이 무효이기 때문이다.

긴말이 필요 없다. 한국 자본주의 먹이사슬의 정점에 도사리고 있는 재벌자본의 지배구조와 부당수익 전유를 해체해야 한다. 새로운 공생의 사회경제생태계와 좋은 일자리 중심 노동시장 구조를 만들지 않으면 한국 자본주의의 미래는 암울할 뿐이다. 노동권이 박탈된 최말단의 노동자들과 그 가족이 희생되는 비극이 지겹게 반복될 수밖에 없다. 대다수 노동자에게 이런 부정의와 차별이 일상화된 체제에서 경제민주화와 복지가 발붙일 곳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모두가 살기 위해선 불법 고용구조를 확장시키며 천문학적인 부당수익을 갈취하면서도 사회적 책임을 도외시하는 재벌오너들의 잘못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정부 정책과 국회 의석 점유구조, 사용자의 힘이 압도적인 노사 역관계 아래에선 소소한 개선조차 기대하기 어렵다.

그럼 현실적으로 유효한 대안은 아예 없는가. 있다. 그게 바로 최저임금이다. 물론 최저임금 인상만으로 한국 사회의 적폐를 해소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저임금이 요긴한 마중물 역할을 할 수는 있다. 노사정 간 합의도 난망하고 힘이 가장 약한 노동이 고통을 전담하다시피 하는 구조 속에서 최저임금은 그나마 합리적인 개선을 기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노동의제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내수진작과 저임금 취약노동자계층의 삶의 질 향상은 사회통합에 이바지할 뿐 아니라 경제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핵심 경로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노동시장 1차 분배인 임금 수준을 높여 전체 사회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첫번째 관문이 된다. 구두선에 머물러 있는 비정규직 대책과 관련해서도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는 대표 정책이다. 전국적으로 단일하게 적용되는 제도적 이점도 크다. 양극화가 극단화된 한국 사회의 평등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중요한 지렛대가 될 수 있다.

밥이 하늘이라고 했다. 하늘은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다. 하늘의 뜻을 거스르면 나라의 존망도 위태로워진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모두가 함께 살기 위한 출발점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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