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박근혜 대통령이 여행을 갔다. 남미로 갔다. 팽목항에서 경호원과 관료 몇 명 모아 놓고 쇼를 하곤 떠났다. 콜롬비아가 간절히 원해서 이 날 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야밤에 혼자 우산을 쓰고 쓸쓸히 걷고 있는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의 현지 도착사진을 보니 콜롬비아 쪽에서 방문을 간절히 원했던 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대한민국 정부가 콜롬비아 정부에 박근혜의 방문을 간절히 요청한 듯 느껴진다.

콜롬비아 대통령 후안 마누엘 산토스는 박근혜를 만난 자리에서 반란군인 콜롬비아혁명무장군(FARC) 이야기를 기자들에게 했다. 반란군이 정부군을 살해하면서 휴전 약속을 깼다고 비난했다. 미국의 지원 없이는 지금껏 버티지 못했을 남미 우익 국가 대통령의 말을 모두 믿을 필요는 없다. 정부군이 약속을 먼저 깼을 수 있다. 1951년생인 콜롬비아 대통령은 권문세가의 하나인 산토스 가문 출신으로 박근혜 이상으로 정치적 술수와 정략적 거짓말에 능하다. 2005년 국민단결사회당을 창당했는데, 이 당은 우익 포퓰리즘 선동 정당으로 대한민국의 새누리당 비슷하다.

한국 언론들은 남미 순방이 경제협력의 다각화니 떠들어대고, 양국 대통령이 그런 이야기를 나눴다는 기사를 쏟아 냈다. 하지만 외신은 그런 빈말엔 관심이 없다. 국가 계획 통제 경제를 하는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면, 경제협력 다각화는 정부가 아니라 민간기업이 하는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콜롬비아 대통령이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를 환영하는 자리에서 외신이 가장 관심 있던 사안은 반란군과의 협상 시한에 관한 것이었다.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는 출국에 앞서 콜롬비아의 수십 년 된 골칫거리인 FARC 문제를 제대로 브리핑받기나 했을까.

2010년 처음 대통령에 당선된 마누엘 산토스는 대한민국 정권과의 협력 관계를 증진해 왔다. 한국과 콜롬비아 두 나라 사이의 경제적 이해관계도 있겠지만, 미국의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더 컸다. 미국의 세계 전략에서 한국은 동북아에서 중국과 러시아·북한을 제어하는 데 지정학적으로 중요하다. 2002년 금속노동자 출신인 룰라가 브라질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부터 속도가 붙기 시작한 남미 정권들의 반미화-좌파화를 제어하는 데 중요한 전략적 국가가 콜롬비아다.

미국의 세계질서 전략가들이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에게 느끼는 감정과 콜롬비아 대통령 마누엘 산토스에게 느끼는 감정은 대동소이할 것이다. 더군다나 냉전 시대 콜롬비아는 한국전쟁 때 미국을 도와 한반도에 파병하기도 했다. 지난해 8월 마누엘 산토스가 대통령에 재선됐을 때 박근혜 대통령은 새누리당 한선교 의원과 이장우 의원을 축하 사절단으로 보낸 바 있다.

대한민국과 콜롬비아가 외교관계를 수립한 때가 1962년이다. 콜롬비아혁명무장군이 활동을 개시한 때가 64년이다. 농민주의와 반제국주의를 내건 FARC는 스스로를 마르크스레닌주의 농민군이라고 밝히고 있다. 남미 독립의 아버지로 불리는 시몬 볼리바르의 계승자로 볼리바르주의를 강조하기도 한다. 볼리바르주의는 자칭 사회주의 국가인 베네수엘라의 국정 이념이다. 1만명에서 2만명 정도로 추정되는 반란군은 한반도의 두 배가 넘는 면적을 가진 콜롬비아 동남부에 거점을 갖고 있다. 영향력을 미치는 지역의 넓이가 남한의 두 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역적으로는 콜롬비아뿐만 아니라 브라질·아르헨티나·페루·멕시코·파라과이·에콰도르에도 산재해 있다.

미국과 EU는 FARC를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브라질·아르헨티나·에콰도르·베네수엘라 등 남미 좌파 성향 국가들은 의견을 달리한다. 특히 볼리바르주의의 정통 계승국임을 자처하는 베네수엘라는 FARC를 정규군으로 인정한다. 91년까지 소련과 쿠바는 FARC와 공식적인 연대관계를 맺기도 했다. 지금 콜롬비아 정부와 FARC는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휴전 협상을 벌이고 있다.

콜롬비아는 마약 생산지로 유명하다. 미국과 우익 정부는 반란군이 마약 확산의 주범이라 비난하지만, 현대 역사는 세계 마약 생산의 배후에 언제나 미 중앙정보부(CIA)가 도사리고 있음을 증언한다. 또한 이 나라는 노동운동가에 대한 살해와 탄압으로 악명이 높다.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가 국가적 애도일인 4월16일에 도망치듯 떠난 여행의 첫 기착국치고는 여러 가지가 공교롭다. '박근혜스러운' 선택이었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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