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 회의 모습. 자료사진=정기훈 기자

고용노동부가 노동시장 구조개선과 관련한 노사정 협상 결렬에도 일반해고 기준·절차 가이드라인과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와 노사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법률을 개정할 필요가 없는 가이드라인·지침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의견수렴 절차는 요식행위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현행법과 법원 판례를 기준으로 가이드라인·지침을 만들면 해고나 취업규칙 변경을 쉽게 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일반해고와 관련한 법원 판례는 어떤 양상을 보여 왔을까.

12일 <매일노동뉴스>가 대법원 판례를 분석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노동부 주장과 달리 과거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 같은 혼선을 불러일으킬 공산이 크다.

대법원 “해고사유 명확하고 해고회피노력 해야”

노동부는 저성과자를 전환배치하거나 교육·훈련을 시키는 등 근로조건을 조정하고, 마지막 수단으로 근로계약을 해지(해고)할 수 있는 기준과 절차를 만들 계획이다. 근로기준법(제23조1항)은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휴직·정직·전직·감봉, 그 밖의 징벌을 하지 못한다”고만 규정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기업이 저성과자에게 직위해제나 대기발령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을 사용자 고유권한으로 본 대법원 판결이 있다. 2006년 8월에 나온 대법원 판결(2006두5151)은 “기업이 그 활동을 계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동력을 재배치하거나 그 수급을 조절하는 것이 필요 불가결하므로 대기발령을 포함한 인사명령은 원칙적으로 인사권자인 사용자 고유권한에 속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이어 “근로자에게 특별히 불이익을 주는 제재가 아닌 한 근로기준법 제23조1항에 따라 정당한 이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직무수행 능력이 떨어지거나 근무태도·근무성적이 불량한 노동자, 징계절차를 밟고 있는 노동자가 직무를 계속하면 업무에 장애가 생기기 때문에 사용자 조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대법원은 다른 판례에서 대기발령이든 계약해지든 인사발령이나 해고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2007년 대법원은 내부 인사규정에 따라 대기발령 뒤 3개월이 지난 노동자를 사용자가 해고한 사건(2006다25240)에서 “대기발령이 인사규정에 의해 정당하게 이뤄진 것일 뿐 아니라 3개월 동안 대기발령 사유가 소멸되지 않아야 정당한 처분이 된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대기발령 자체가 정당성이 없는 것이라면 직권면직 역시 무효”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대기발령이 사용자 고유권한이더라도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인정할 수 없다는 판례다.

이런 판례를 구체화한 판결(2007두1460)도 있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대기발령 당시 이미 사회통념상 근로자와의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의 사유가 존재했거나, 대기발령 기간 중 그와 같은 해고사유가 확정돼야 당연퇴직이 정당해진다”고 설명했다. 대기발령 뒤 일정기간 직위를 받지 못하면 당연퇴직시키는 인사규정이 있더라도 해고를 할 정도로 노동자의 개선 여지가 없었는지 따져 봐야 한다는 것이다. 사용자가 노동자 능력향상 등의 기회를 제대로 부여했는지도 중요한 판단기준이라는 논리다.

정리하면 대법원은 △저성과자가 맞는지를 명확하게 판단하고 △저성과자가 맞다면 사용자는 개선기회를 줘야 하고 △그럼에도 고용관계를 유지할 정도로 저성과자의 발전이나 개선의 여지가 없어야 일반해고가 효력을 갖게 된다는 판례를 형성하고 있다.

사회통념상? 종합적 판단?

문제는 저성과자를 판단하고 인사조치를 할 때 기준이 판결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저성과자인지부터 시작해 회사는 해고회피를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노동자는 능력향상이나 태도 개선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사례별로 정도가 다르다.

저성과자라 하더라도 회사가 제시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고의적으로 회피해 성과가 낮은 경우라면 논란이 덜할 수 있다. 반면 노력을 했는데도 성과가 낮은 경우에는 기준을 들이대기가 더욱 어렵다. 대법원은 2003년부터 여러 판결을 통해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근로자에게 책임 있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 행해져야 그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예컨대 ‘사회통념상 근로자와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에 대해서는 “사용자의 사업 목적과 성격, 사업장 여건, 당해 근로자의 지위 및 담당 직무의 내용, 비위행위 동기와 경위, 이로 인해 기업의 위계질서가 문란하게 될 위험성 등 기업질서에 미칠 영향, 과거의 근무태도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것이다.

해당 판례만으로는 저성과자를 분류하거나, 해고하기가 쉽지 않다. 최상급자와 동료근로자의 인사조치 요청에다 근무실태조사 결과 불량판정을 받고, 노조 위원장도 해당 근로자의 근무성적 불량을 인정한 경우 저성과자로 분류한 대법원(2000두9113) 판례는 있다. 그러나 극히 이례적인 경우다.

“가이드라인에 기준 제시하면 안 돼”

노동부가 일반해고 가이드라인을 만들기도 쉽지 않다. ‘절차’를 규정할 수는 있겠지만 ‘기준’을 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 가이드라인 마련에 찬성하는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만들 경우 기준보다는 절차와 단계를 마련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며 “기준을 제시했다가는 통상임금 지침처럼 법원에서 판판이 깨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시 말해 하위 10% 저성과자를 해고대상자나 희망퇴직 대상자로 선정하는 식으로 기준을 제시할 경우 사업장마다 노동자들의 노력·능력이 다른 상황에서 객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노동부가 각 기업 노사에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도록 하고, 절차를 중심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더라도 문제 소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회사가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한 절차대로 저성과자를 인사조치하더라도 분쟁이 생기면 최종 판단은 법원이 하게 된다.

노동부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 '일단 해고하고 보자'는 사용자들의 심리가 발동할 가능성이 크다. 통상임금이나 복수노조와 관련한 노동부 지침·매뉴얼이 현장에 미친 막강한 영향력을 보면 알 수 있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 전문가그룹이 고용해지 절차·기준의 필요성에 찬성하면서도 “정부 의도와는 달리 오·남용되거나 경영상 해고를 위한 우회적 방법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며 가이드라인에 반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전문가그룹은 “퇴출을 위한 주변업무 배정, 노조활동과 관련 있는 인사조치 등이 우려된다”며 “이를 막기 위해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입법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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