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을 다니면서 많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은 KTX다. 과거엔 승용차와 버스, 그리고 비행기를 이용해 장거리 출장을 다녔는데 최근엔 부쩍 줄었다. 시속 300킬로미터 속도혁명이 이뤄 낸 결과다. 2일 호남선 KTX도 개통됐으니 그야말로 반나절 만에 전국 구석구석을 누빌 수 있게 됐다. 전국이 하나의 생활권으로 좁혀지는 날도 멀지 않았다. KTX를 이용한 출장이 잦아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렇게 애용하다 보니 KTX에서 만나는 승무원이 살갑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제복을 입은 그들을 물끄러미 볼 때마다 슬슬 궁금증이 인다. 승무원 중 코레일(철도공사) 소속은 누구일까. KTX 이용객에게 질문하면 대번에 모든 승무원은 코레일 소속이라고 답변한다. 하지만 실제는 다르다. 승무원들은 코레일 자회사 소속이다. 정확하게는 코레일관광개발의 정규직이다. 코레일이 자회사인 코레일관광개발에 승무업무를 외주화한 것이다. 승무원에게 코레일은 사용자이고, 코레일관광개발은 고용주다. 일종의 간접고용 형태다. 주로 여승무원이 여기에 해당된다. 반면 남승무원은 소속이 다른 경우다. 코레일과 코레일관광개발로 나눠진다. 안전과 승무업무를 총괄하는 남자 승무팀장만 코레일 소속이다. 이처럼 KTX에서 만나는 승무원의 고용형태는 복잡하다. KTX의 운영 주체는 코레일이니 승무원은 코레일 소속일 것이라는 상식이 뒤집힌다.

KTX 11년의 역사는 곧 ‘철도 외주화’로 상징화된다. 외주화는 2004년 개통 후 여승무원을 시작으로 역무원·승무원·기관사·차량정비·선로관리·전철선 관리 등 철도 전 업무로 확대됐다. 내년 개통 예정인 수서발 KTX는 전 부문에 걸쳐 외주화가 추진된다. 덩달아 코레일이 거느린 자회사도 늘었다. 코레일테크·코레일네트웍스·코레일관광개발·코레일로지스 등이다. 코레일 자회사의 비정규직 비율은 평균 39%에 달한다. 안전한 운행을 위해 정규직 중심으로 채용하던 철도의 고용관행은 180도 바뀐 것이다. 안전보다 비용절감을 우선하는 경영이 미덕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필수유지업무로 지정된 선로 및 전철선 유지보수·차량정비를 담당하는 코레일테크는 전체 직원(984명) 중 92.2%(907명)가 비정규직이다. 승무업무를 담당하는 코레일관광개발의 비정규직 비율은 8.8%에 불과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곪을 대로 곪았다. 승무원의 이직률은 20%대에 이르는데 업무과다와 낮은 처우 탓이라고 한다. 전문성을 겸비한 승무원을 양성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비용절감에만 신경 쓰고, 안전운행은 소홀히 하는 '비정상'이 판치고 있는 셈이다.

KTX 여승무원이 지난 10년 간 외친 것도 이런 비정상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용객의 안전과 생명을 담당하는 업무를 외주화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2006년 해고된 KTX 여승무원들은 3년간 코레일과 싸웠고, 7년간 법정 공방을 이어 갔다. KTX 여승무원 34명이 낸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1·2심은 코레일 소속 노동자라고 판결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파기했다. 대법원은 KTX 여승무원의 업무라고 여겨졌던 안전업무도 이례적이라고 규정하며 코레일이 직접 고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못 박았다. 지난 10년간 싸웠지만 여승무원들에게 남은 것은 1억원의 빚과 강성 노조원이라는 낙인이었다.

이달 16일이면 세월호 참사 1주년이다. 300명의 어린 생명을 앗아 간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는 돈보다 생명, 이윤보다 안전이 우선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안전업무는 외주화해선 안 된다"는 공감대도 형성됐다.

2004년 개통 첫해 1일 이용객이 7만명에서 지난해 15만명으로 두 배나 늘어난 KTX도 여기에서 예외일 수 없다. 철도는 국민 생명·안전에 필수적이라는 이유로 노동 3권마저 제한하는 필수유지업무사업장이라고 규정하고 있지 않나. 코레일은 안전 외주화라는 위험한 폭주를 중단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의 교훈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KTX 여승무원 복직을 포함한 철도 안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코레일은 노조와 조건 없는 대화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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