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산별노조운동이 잘 안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지역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꼽고 싶다. 노동조합의 지역조직을 강하게 만들어야 중앙조직이 튼튼해진다는 말은 얼핏 보면 맞는 소리 같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선 잘못된 진단이고 실현 가능성 없는 처방이다. 노동조합 조직에서 지역구조의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단체교섭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단체교섭이야말로 노동조합이 갖는 역할과 기능의 중추이기 때문이다.

단결을 왜 하는가. 단체교섭을 위해서다. 단체행동이 왜 중요한가. 단체교섭을 위해서다. 교섭이 없는 단결, 교섭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행동은 별 의미 없다. 단체교섭의 목적인 조합원 권리와 이익을 지키고 좋게 만드는 데 실패하는 노동조합은 존재 가치가 없다. 헌법은 노동 3권, 즉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보장한다. 그중 핵심은 단체교섭권이다.

그럼 단체교섭이란 어휘에서 ‘단체’는 누구와 누구를 말하는가. 이 질문을 노조교육에서 던지면 십중팔구 노동조합과 사용자란 답이 돌아온다. 물론 틀린 대답이다. 노조와 사용자는 ‘교섭’을 하지 ‘단체’를 하는 게 아니다. 단체교섭에서 말하는 ‘단체’는 영어로 collective, 집단이다. 노동자는 노동자들끼리 집단을 같이한다. 노동자 집단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게 노동조합이다. 다시 말해, 단체교섭에서 ‘단체’는 노동자와 노동자, 즉 ‘노동자들끼리’를 말한다. 노동자들끼리 만든 조직인 노동조합으로 한데 모여 사용자와 교섭하는 게 단체교섭인 것이다. 단체행동에서 ‘단체’가 누굴 뜻하는지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단체행동은 사용자와 같이하지 않는다. 교섭에서 사용자가 끼는 것이지, 단체에서 끼는 것이 아니다. 사용자는 자신들의 집단인 사용자단체를 따로 만든다.

단체교섭 측면에서 노동자는 다 같은 노동자인가. 역시 아니다. 나이·성별·인종·종교·사상·출신성분에 따라 다르다. 또 사는 지역에 따라 갈라져 있다. 사는 지역이 같다고 다 같은 노동자가 되는 건 아니다. 하는 일에 따라, 속한 업종과 산업에 따라 차이가 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기도 한다.

그렇다면 단체교섭에서 ‘노동자는 하나다, 우리는 같다’는 원리에 가장 충실할 수 있는 범주는 무엇일까. 산업이다. 그래서 산업별노조가 중요한 것이다.

산별노조를 영어로 옮기면 industrial union이지만, 실제로는 national union으로 많이 부른다. 같은 산업에 속한 노동자들을 전국적으로 포괄하는 노조라는 것이다. 산별교섭을 national bargaining이라고 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같은 산업에 속한 전국의 노동자들을 하나의 교섭 틀에 묶어 같은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것이 산별교섭의 목표다.

하지만 같은 산별노조에 속한 노동자들의 상황과 조건이 다 같은 것도 아니다. 직종과 업종별로 제각각이다. 이 때문에 모든 조합원들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하나의 산별협약을 가진 산별노조는 노동조합의 역사가 오래된 서유럽에서도 찾기 힘들다. 역사가 100년도 넘은 제조업 통합노조인 스웨덴 금속노조(IF Metall)는 전국 수준의 단체협약을 43개나 갖고 있다. 화학협약·광산협약·섬유협약이 따로 있고, 금속산업에서도 자동차·조선·철강 등 업종별로 협약이 다양하다. 조합원이 35만명이니, 협약 1개가 포괄하는 조합원이 평균 1만명도 안 된다.

우리나라 산별노조운동의 조직발전 논의를 보면 지역에 대한 집착이 지나친 데 비해 산업을 구성하는 직종과 업종에 대한 강조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대산별주의’를 천명한 조직일수록 산업과 업종보다 지역구조를 강조하는데, 이런 편향은 기업 울타리를 뛰어넘는 단체교섭을 발전시키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 한국노총 산하 연합노련 같은 틀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말이다.

현 시기 노동운동이 조직과 교섭에서 처한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대산별’이라는 허명 아래 노동자들을 지역적 동질성으로 억지로 묶는 방식이 아니라 산업이나 업종의 동질성으로 자연스럽게 묶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단체교섭 전망을 상실한 ‘지역주의’ 노선은 알맹이 없는 ‘대산별주의’ 노선과 뒤섞여 기업별노조주의를 강화할 뿐이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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