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온통 갑질 논란에 휩싸여 있다. 지난해 서울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 경비노동자 분신사건을 비롯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최근 주차요원에게 폭언을 하고 무릎을 꿇린 모녀의 갑질 사건까지 국민적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그나마 해당 사건들이 국민적 관심을 등에 업고 부족하나마 권선징악적인 결론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문제는 음지에서 자행되는 '악마적인 갑질'에 숨죽여 우는 피해자들이 차고 넘친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경북 김천시 직지농협에서 벌어지고 있는 '김아무개 과장 집단 괴롭힘 사건'이다. 1987년 농협에 입사해 20년 넘게 여성복지 업무를 담당하던 김 과장의 평범했던 일상이 악몽으로 바뀐 지 벌써 5년째다. 가해자는 일터의 수장인 하아무개 직지농협 조합장이다.

하 조합장은 2010년 치러진 조합장 선거에서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직원들을 골라 부당한 인사조치를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에서도 하 조합장은 김 과장을 눈엣가시로 여겼다. 물품을 횡령했다는 혐의를 씌워 해고하는가 하면, 부당해고 판정을 받고 복직한 김 과장에게 수시로 시말서를 쓰게 했고, 빈 책상에 대기발령을 시키기 일쑤였다. 폭언은 일상적이었다. "꼴값 떤다", "병X", "지X한다", "염병떠는 소리 하지 말라"는 말로 인간적인 모멸감을 선사했다.

매일 출근해야 하는 직장이 지옥이 되면서 김 과장의 심신도 피폐해졌다. 자신이 직장상사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사실을 아들과 딸이 눈치챌까, 연로하신 어머니가 알게될까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듯했다고 한다. 한때 극단적인 행동까지 시도했던 김 과장은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또 오늘은 어떻게 괴롭히려나 가슴이 떨리고 아침이 밝아오는 것이 두려웠다"고 털어놓았다.

김 과장은 지난달 8일 두 번째 해고를 당했다. 지난해 9월 두 달 정직을 받고 복귀한 지 한 달 만에 또다시 해고통보를 받은 것이다. 업무지시에 대해 "전임자의 입회 아래 인수인계를 확실히 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그게 '명령불복종'의 근거가 됐다.

정작 관리·감독을 해야 할 농협중앙회는 팔짱을 끼고 뒤에서 구경만 하고 있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양측 간 고소·고발이 8개나 얽혀 있는 사건"이라며 "조합장이 잘못했는지 직원이 잘못했는지 법원의 판단이 나와야지 우리도 뭘 어떻게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단체들은 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농협중앙회 앞에서 직지농협 사태에 대한 농협중앙회의 역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한 뒤 면담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직장내 권력을 이용한 폭력은 갑질을 넘어 범죄다. 침묵하거나 방관하는 것도 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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