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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갑오년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2015년 을미년이 밝아 오고 있다. 60갑자로 따져 2주갑 전 을미년은 1895년이었다. 그해 1월 우리 근현대사에서 첫 헌법이라 할 홍범14조가 만들어졌다. 일본군과 손잡고 동학농민군을 학살한 조선왕조의 지배층은 일본제국의 압력 속에서 국가개조에 나섰다. 홍범14조는 그 방향과 목적을 담은 선언문으로 “열네 가지 큰 법”이라 불렸다. 나중에 ‘개화파’라 칭하는 박영효·서광범·김홍집이 제정에 앞장섰다. 을사조약으로 조선이 사실상 망했던 1905년으로부터 딱 10년 전의 일이다. 홍범14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조 청국에 의존하는 생각을 끊고 자주독립의 기초를 세운다. 제2조 왕실전범을 작성해 대통의 계승과 종실·척신의 구별을 밝힌다. 제3조 국왕이 정전에 나아가 정사를 친히 각 대신에게 물어 처리하되, 왕후·비빈·종실 및 척신이 간여함을 용납하지 아니한다. 제4조 왕실 사무와 국정 사무를 분리해서 서로 혼동하지 않는다. 제5조 의정부와 각 아문의 직무 권한의 한계를 명백히 규정한다. 제6조 부세는 모두 법령으로 정하고 명목을 더해 거두지 못한다. 제7조 조세 부과와 징수 및 경비 지출은 모두 탁지아문에서 관장한다. 제8조 왕실은 솔선해 경비를 절약해서 각 아문과 지방관의 모범이 되게 한다. 제9조 왕실과 각 관부에서 사용하는 경비는 1년간의 예산을 세워 재정의 기초를 확립한다. 제10조 지방관 제도를 속히 개정해 지방관의 직권을 한정한다. 제11조 널리 자질이 있는 젊은이를 외국에 파견해 학술과 기예를 익히도록 한다. 제12조 장교를 교육하고 징병제도를 정해 군제의 기초를 확립한다. 제13조 민법 및 형법을 엄정히 정해 함부로 가두거나 벌하지 말며, 백성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 제14조 사람을 쓰는 데 문벌을 가리지 않고 널리 인재를 등용한다.

60갑자가 두 번 지나 120년이 흘렀지만 망한 왕조의 첫 헌법은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청국 의존을 끊어야 한다는 자주독립 노선은 옳은 듯 보이나, 패권을 장악하려는 일본의 의도가 뚜렷하다. 2015년 형세는 더 복잡하다. 미국·일본이 손잡고 중국·러시아와 겨루고 있다. 조선반도는 남북으로 갈라져 동족상잔을 거쳐 으르렁댄 지 60년이 넘었다.

내정도 달라진 게 없다. 현대판 왕후·비빈·종실·척신이 정사를 욕보인다. 왕실 사무와 국정 사무가 혼동된다. 의정부와 각 아문의 직무와 권한이 뒤섞인다. 각종 명목으로 세금을 더한다. 왕실은 절약이 아니라 낭비의 모범이다. 중앙정부가 썩으니, 지방정부는 더 썩었다. 군대의 기초가 무너진다. 법을 가혹히 써서 사람을 함부로 가두고 벌한다. 백성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지 않는다. 문벌이 판을 치고 인재는 등용되지 못한다.

1895년 4월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청국과 일본 사이에 조약이 체결됐다. 제1조는 “조선은 완전무결한 독립자주국가”다. 그해 8월 팔도제가 폐지되고 23부제로 개편됐다. 10월 민비가 일본 자객에게 살해됐다. 12월 외세의 압력을 받은 김홍집 내각은 ‘개혁’이라며 단발령을 공포해 성인남자의 상투를 잘랐다. 러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1905년 조선을 사실상 식민지로 만들었다.

120년 전 왕실을 너무나 닮은 박근혜 정부는 각종 개혁 문구를 남발하고 있다. 번지르르한 게 2주갑 전 을미년과 너무나 닮았다. 개혁 주체가 외세를 등에 업은 수구세력이란 점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때나 지금이나 백성은 동원 대상이다. 대안세력은 지리멸렬하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가.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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