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 경영진이 직원들을 상대로 임금반납 동의서를 받고 다니는 웃지 못할 일을 벌이고 있다. 올해 인건비 총액 증가분이 정부가 제시한 공기업 임금인상률 1.7%를 넘어서자 경영평가상 불이익을 우려한 경영진이 급여 지급을 미루겠다고 나선 것이다.

21일 LH 노사와 직원들에 따르면 이재영 사장은 지난 18일 경기도 성남시 본사에서 긴급설명회를 열고 12월 급여 일부 미지급에 대한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이어 19일까지 개별 직원들을 상대로 이에 동의한다는 서명을 받았다.

기획재정부는 2014년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편성지침에서 올해 공기업 인건비 인상률을 1.7%로 정했다. LH의 연간 평균 호봉인상률은 2.2%로 정부가 제시한 인상률보다 0.5%포인트 높다. 이를 포함해 LH는 올해 정부가 정한 임금총액 한도보다 68억원가량 더 많은 인건비를 지출할 상황에 처했다. 그러자 6천500여명인 직원의 12월 급여에서 평균 100만원씩을 내년에 지급하겠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LH 경영진은 ‘임금반납동의서 협조 요청서’에서 “정부지침 인건비를 초과해 임금을 집행할 경우에는 경영평가 점수하락에 따라 평가등급이 하락하고 지침 위반에 따른 불이익이 예상된다”며 “임금반납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당황스럽겠지만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LH는 직원들의 개별 동의를 모두 얻지 못한 채 12월 급여 지급일인 19일이 되자 임의로 삭감한 임금을 직원들에게 지급했다. 직원들은 직급별로 80만~200만원의 급여를 덜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재부가 정한 인건비 총액한도를 벗어나면 경영평가상 3점의 점수가 부여되는 ‘임금·보수 적정성’ 항목에서 0점을 받게 된다. 0.01점으로 순위가 뒤바뀌는 경영평가에서 3점은 매우 큰 점수다.

LH의 한 직원은 “부서장들이 개별 동의서에 서명하라고 요구하면서 직원들끼리 서명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상의하기도 했다”며 “일부 직원은 경영평가 등급 하락으로 공사가 불이익을 받을까 봐 서명에 참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LH노조(위원장 박해철)는 “임금체불로 경영진을 고발하겠다”고 반발했다. 박해철 위원장은 “기재부의 예산편성지침에 따라 인건비 예산을 통제받는 상황에서 경영평가 불이익까지 우려되자 경영진이 급여를 삭감해 지급했다”며 “먼저 솔선수범하지 않고 직원 전체에게 책임을 넘기는 경영진의 행위는 바른 태도가 아니다”고 비판했다.

LH는 급여 미지급 사태를 언급하는 것 자체를 꺼렸다. LH 홍보실과 노사협력처는 “현재로서는 할 말이 없다”거나 “확인해 봐야 한다”며 즉답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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