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노동대학(GLU) 홈페이지(global-labour-university.org)

2013년 10월 독일로 유학을 떠났던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전략기획단장이 학업을 마치고 1년 만에 귀국했다. 이주호 단장은 국제노동기구(ILO)와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FES)·독일노총(DGB)의 후원으로 독일 카셀대학(Kassel)·베를린 경제법학대학(HWR Berlin)에서 '노동정책과 세계화'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박근혜 정부는 독일 경제모델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노동시장 개혁의 바이블로 보는 경향도 나타난다. 과연 그럴까. <매일노동뉴스>가 이주호 단장의 독일 유학기를 연재한다. 이 단장은 연재를 관통하는 제목을 '노동존중 복지국가와 노동운동의 새로운 도약을 꿈꾸며'라고 썼다. 매주 목요일자에 11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 올해 5월 베를린 GLU 콘퍼런스에서 로사 파바넬리 국제공공노련(PSI) 사무총장과 함께했다.
▲ 올해 5월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노총 총회에서 리처드 하이만 영국 LSE 명예교수와 함께 보건의료노조의 의료 민영화 반대 단체복을 같이 들었다.
▲ 올해 9월 졸업식에서 논문 지도교수이자 카셀대학 ICDD 소장인 크리스토프 쉐러 교수와 함께


국제노동대학은 독일뿐만 아니라 인도(TISS·Tata Institute of Social Science)·남아프리카공화국(University of Witswatersrand)·브라질(State University of Campinas)에도 개설돼 있다. 국제노동대학은 독일노총(DGB)·인도노조회의(AITUC)·남아공노조회의(COSATU)·브라질노총(CUT) 등 각 나라 노총들과 협력해 운영되고 있다. 내년부터는 미국에서도 미국노동총연맹산별노조회의(AFL-CIO)와 협력해 펜실베이니아주(PennState University)에서 새롭게 개설된다. 5개국에서 같은 프로그램이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다. 이 과정을 주관하고 있는 국제노동대학은 2004년 설립된 글로벌 노동교육기관이다. 2004년 독일 베를린에 처음 개설돼 올해로 10기를 맞이했다. 그동안 독일 졸업생 152명 등 전 세계 60여개국에서 400명 가까운 진보적 활동가들의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독일에는 카셀(Kassel)에 국제노동대학이 있다. <백설공주> <신데렐라>로 유명한 동화작가 그림 형제가 활동했던 카셀은 프랑크푸르트에서 고속철도(ICE)로 1시간30분 걸리는 독일 중부의 조그만 도시다. 카셀 대학 부설 국제 싱크탱크 네트워크인 국제양질의일자리개발센터(ICDD)가 국제노동대학 과정을 맡고 있다.

국제노동대학은 세계 각국 노조와 대학, 국제노동운동과 연대체 사이에서 네트워크 역할을 한다. 국제적 연구조사와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국제노동기구의 네트워크로 운영되고 있다. 정식 석사학위 과정은 물론 단기 프로그램을 통해 더 나은 사회정의와 노동자들의 권리에 관심 있는 세계 각국의 노조활동가·연구자들에게 플랫폼을 제공하고 있다. 온라인 코스로 ‘국제 노동자 권리’라는 교육과정도 있다. 별도로 연대기금을 조성해 매년 여름학교에서 투표를 통해 2건의 투쟁을 지원하며, 긴급 상황의 경우 1건을 추가하기도 한다.

국제노동대학은 노동 관련 조사보고서 시리즈를 수시로 발간하고, 온라인을 통해 국제적 노동이슈에 대한 정기적인 국제노동 칼럼을 게재한다. 그리고 국제노동대학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공통의 관심주제에 대한 연구그룹을 만들어 집단작업을 진행하고 그것을 여름학교에서 공유한다. 젠더 문제와 정치 의식화를 위한 노동교육·불안정 비정규 노동 등을 주제로 진행되고 있다.

여름학교는 매년 여름 7~10일 동안 세계 각국에서 온 3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다. 이때 공통의 주제를 가진 콘퍼런스를 개최하는데 여기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30유로의 연대기금을 내면 국제노동대학에서 왕복 항공료와 숙박비 등 모든 경비를 실비로 받는다. 2011년에는 ‘불안정 비정규 노동’을 주제로, 2014년에는 ‘국가 간 불평등-원인과 영향, 그리고 우리의 대응’을 주제로 열렸다.

올해는 독일 베를린에서 콘퍼런스와 여름학교가 열렸다. 그런데 발표와 토론에 나선 이들의 명성에 다소 놀랐다. 샤란 버로우(Sharan Burrow) 국제노총(ITUC) 사무총장을 비롯해 최근 한국을 방문한 로사 파바넬리(Rosa Pavanelli) 국제공공노련(PSI) 사무총장, 노사관계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리처드 하이만(Richard Hyman) 영국 런던정경대(LSE) 명예교수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국제노동기구 주요 간부와 에버트 재단, 한스 뵈클러 재단 핵심 연구자 등 노동계 주요 인사와 주요 연구자들이 대거 참석할 정도로 국제노동대학은 국제노동계에서 그 존재감을 인정받고 있다.

이번 10기 과정에는 유럽(영국·독일·이탈리아)·아시아(인도·방글라데시·인도네시아·터키)·러시아·벨라루스·아프리카(가나·나이지리아·스와질란드)·남미(브라질) 등 6대륙에서 모인 17명의 학생들과 함께 공부했다. 참가한 학생들의 경력과 경험도 무척 다양했다. 학교 특성상 노조활동가가 가장 많았고 그 밖에 노동단체·연구원·국제노동기구(ILO) 지역사무소·교사·노동부 공무원·노동 변호사·대학원생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주로 20~30대여서 내가 두 번째 연장자였다. 영국노총(TUC) 활동가가 57세로 나이가 가장 많았다.

독일 대학교육은 우리나라와 달리 학년제가 아닌 학기제다. 여름학기는 4월 중순부터 7월 중순까지, 겨울학기는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2월 중순까지 진행된다. 특이한 점은 독일식 아카데미 타임이 있다는 것이다. 수업 시간표상 오전 9시 수업이라면 실제 수업은 9시15분에 시작한다.

주요 과목은 경제학·정치학·임금론·노동법, 세계화와 노조의 대응, 다국적기업 대응 전략, 노동운동 재활성화 전략, ILO와 국제노동운동 등이다. 모든 강의는 영어로 진행된다. 참여형 교육으로 조별 준비, 조별 발표와 토론이 이어진다. 여기에 ‘게시판 토론’이 수시로 활용된다.

입학 당시 에버트 재단 장학생으로 선발돼 월 750유로(105만원)를 받아 생활할 수 있었다. 영국·스위스 등은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하지만 같은 유럽지역이면서도 독일은 기본적으로 무상교육인 데다 한국과 물가가 비슷해 100만원으로 한 달 생활하는 데 큰 지장이 없었다. 학생증 발급 비용으로 1학기 224유로, 2학기 275유로 등 499유로(69만원)가 드는데, 학생증만 있으면 대중교통(버스·지하철·지역 기차)을 모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참고로 베를린 대중교통 이용카드가 월 78유로이므로 학생증 발급비용은 대중교통비와 비슷하다. 박물관 할인은 물론이고 문화 공연, 체육경기 관람 등이 거의 무료다. 덕분에 카셀에 있을 때 공짜라는 이유로 주말에는 한국에서는 꿈도 못 꾸던 오페라 공연을 보고, 지역팀 아이스하키 경기를 보러 가곤 했다. 게다가 학교 ID가 있으면 학교와 기숙사, 전국 모든 학교에서 와이파이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졸업 후에도 이용이 가능하다.

국제노동대학 과정은 5개국에서 매년 학생을 선발한다. 독일은 원서마감이 3월1일이고 인도는 4월1일, 브라질은 10월1일, 남아공은 7월31일, 미국은 2월1일이다. 가능한 대륙별 안배를 통해 선발하는데 갈수록 입학요건이 까다로워지고 있다. 최근에는 연구주제, 노조활동 경력, 조직 추천서 제출과 더불어 공인영어성적을 반드시 요구한다. 따라서 이 과정에 관심 있는 노조활동가들은 사전에 틈틈이 영어공부를 해 둘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20여년 이상 노동운동을 하면서 많은 국내외 교육과정을 보고 듣고, 해외연수를 다녀왔지만 국제노동대학 과정이 가장 이상적인 노동교육 프로그램이라고 생각된다.

이와 관련해 노조간부 육성과 국제노동 네트워크 강화를 위해 두 가지만 제안하고 싶다.

첫째, 매년 5명 이상의 노조간부를 5개 국가 국제노동대학에 보낼 수 있으니 각 조직별로 안식휴가·교육연수 등을 통해 사전에 미래 노동운동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는 간부를 선정해 입학을 준비하고 귀국 후 활동과 역할에 대해 조직적으로 논의하기를 권한다.

둘째, 한국이 독일·브라질·남아공·인도·미국에 이어 6번째로 국제노동대학을 개설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성과 저변을 생각하면 충분히 고려할 만한 일이다. 이를 위해 양대 노총이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한국사무소와 성공회대·한신대·경상대 정치경제학과 대학원·고려대 노동대학원 등 노동 관련 과정이 있는 학교, 노동교육에 관심 있는 단체들에 제안해서 공동추진기획단을 만들어 논의를 진전시켰으면 한다. 기획단이 꾸려지면 나도 힘을 보탤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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