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정 기자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LIG투자증권 본사 앞. 칼바람 속에 바닥에 모여 앉은 60여명의 노동자들이 "생존권을 보장하고 지점폐쇄 철회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달 1일 노조를 설립하자마자 구조조정에 직면한 사무금융노조 LIG투자증권지부(지부장 한만수) 조합원들이다. LIG투자증권이 지난 4일 노조설립 사실을 통보받은 뒤 가장 처음 한 일은 2곳(대구·청주)의 WM(자산관리) 지점을 폐쇄하고 희망퇴직 시행을 알리는 담화문을 발표하는 것이었다. 한 조합원은 "사측이 5일 오후 4시에 기습적으로 담화문을 발표했다"며 "노조설립에 대한 화답인 셈"이라고 헛웃음을 지었다.

지부가 이날 개최한 '지점폐쇄·희망퇴직 반대 및 고용안정 촉구 조합원 결의대회'는 노조설립 이후 첫 단체행동이다. <매일노동뉴스>가 지점폐쇄 직격탄을 맞은 대구지점과 청주지점 조합원들을 만났다.

◇연이은 지점폐쇄에 강제퇴사 강요받아="다리에 힘이 풀리고, 경영진 누구라도 찾아가 대거리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구요."

대구지점에서 일하는 이아무개(47)씨는 상기된 얼굴로 대표이사의 담화문을 읽어 내려간 그날을 떠올렸다. 다른 회사에 다니다 2011년 3월 대구 서지점(달서구 감삼동)이 신설됐을 때 LIG투자증권에 입사했다. 1년이 조금 지났을까. 회사는 수익악화를 이유로 2012년 7월 서지점을 폐쇄했다. 서지점에서 근무하던 영업직원들은 대구지점(수성구 범어동)으로 이동해야 했다. 회사는 "대구지점으로 합쳐지니까 거기서 일하면 된다"고 해서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회사는 개별면담을 통해 "짐 싸서 나가라"고 강요했다. 이씨는 "본사에서 사람이 내려왔는데, 조폭도 그런 조폭이 없다"고 말했다.

"회사의 속내는 '너 나가'라는 거였죠. 일대일로 불러 1~2시간씩 괴롭혔어요. 지점을 옮기려면 임금 40% 깎아야 한다고 강요하면서 말입니다. 나이가 많거나 저성과자한테는 3개월치를 받고 나가라고 했어요. 좀 버틴다 싶으면 '너 어느 대학 나왔던데 그렇게 말귀를 못 알아듣냐'거나 '나이를 헛먹었다'며 온갖 모욕을 줬습니다."

노골적인 퇴사 압박에 못 견딘 직원들은 짐을 쌌다. 이씨는 이를 악물고 40% 임금삭감을 견디며 대구지점으로 옮겼다.

그렇게 옮긴 대구지점이 한 달 뒤인 내년 1월9일자로 폐쇄된다. 이씨는 서울로 올라올 생각이다. 회사 표현대로 '말귀를 못 알아듣는' 대구지점과 청주지점 조합원들은 서울 합숙생활을 결의했다. 투쟁의 일환이다. 이씨는 "직원들에게 퇴로도 열어 주지 않고 무작정 내쫓을 생각만 하는 회사가 괘씸하다"며 "버티면서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고통분담 없고 사주이익만 있어"=청주지점에서 일하는 유아무개(44)씨는 "황당하고 배신감이 든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최근 몇 년간 11개 지점이 4개까지 줄어들었는데, 그거 보면서 불안하지 않을 직원이 있나요.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수익을 내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녔는데, 이제 와서 쓰레기 취급을 하다니요. 심지어 지점폐쇄와 희망퇴직을 실시한다는 내용을 사내인터넷에 떡하니 올려놓고 지금까지 아무런 얘기가 없어요. 황당하죠."
조합원들은 무엇보다 회사의 나 몰라라 하는 태도에 분개하고 있었다. 특히 희망퇴직 조건을 받아 본 직원들은 "쫓겨나자마자 죽으라는 소소리"라며 어처구니없어 했다.

LIG투자증권이 공지한 퇴직 위로금은 7개월에서 9개월치 급여수준이다. 예컨대 3개월분 월급여를 기본으로 만 3년 이상 근속한 경우 근속연수에 따라 4~6개월치 월급이 추가로 지급되는 식이다. 조합원들은 "업계 최저수준"이라고 입을 모았다.

청주지점의 엄아무개(32)씨는 "다른 증권사들은 내쫓을 때 고통분담이란 걸 하는데, 이 회사는 아무것도 없고, 오로지 사주의 이익만 있다"고 비판했다.

한만수 지부장은 "지난 6년간 직원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사측의 횡포에 당하고만 있었다"며 "노조를 만들었으니 우리의 목소리를 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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