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보험기금이 휘청대고 있다. 모성보호급여처럼 국가재정으로 투입해야 할 사업을 떠안고 있다는 해묵은 논란에 더해 이번에는 국민연금까지 고용보험기금으로 지원하는 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세금으로 지원했던 각종 사업이 대거 고용보험기금 사업으로 바뀌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9일 <매일노동뉴스>가 고용노동부가 국회에 제출한 2014년 예산안을 들여다봤다.

◇일반회계→고용보험기금 1천695억원=노동부의 내년 예산안을 보면 올해까지 일반회계로 집행했다가 내년부터 고용보험기금으로 이관되는 사업은 6개 사업으로, 책정된 예산만 1천695억원이다. 중장년취업지원(87억원)·중소기업청년인턴제(782억원)·장년취업인턴지원(171억원)·고용센터인력지원(442억원)·국가기간전략산업직종훈련(60억원)·국가인적자원개발컨소시엄(153억원) 사업이 대표적이다.

반대로 고용보험기금에서 일반회계로 이관된 사업 예산은 56억원에 불과하다. 고용노동부는 “중소기업 청년인턴과 장년취업 인턴지원은 중소기업 사업주를 지원하는 사업이고, 중장년 취업지원은 참여자 대부분이 고용보험 가입자이기 때문에 고용보험기금으로 이관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고용센터 인력지원의 경우 고용보험 업무를 주로 하는 무기계약직이나 기간제 노동자 인건비라서 고용보험기금으로 이관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국회는 생각이 다르다. 국회 예산정책처와 환경노동위원회 전문위원 모두 이구동성으로 비판하고 있다. 예산정책처는 내년 예산안 분석 보고서에서 “고용센터 인력지원과 청년·중장년에 대한 인턴비는 국가고용인프라 확충사업이기 때문에 일반회계에서 부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환노위 역시 예산안·기금운용계획안 검토보고서에서 “고용센터에서 공무원을 보조하는 비정규직에게만 고용보험기금으로 임금을 줄 필요성은 낮아 보인다”고 비판했다. 환노위는 또 “정규직으로 전환된 인턴에게 지원금을 주는 청장년 인턴지원은 사업주 지원보다는 실업자대책에 가깝기 때문에 고용보험기금 이관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고용안정·직업능력개발계정 흑자 급감=고용보험기금을 투입하는 신규사업도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는 내년부터 실업자들에게 구직급여 수급기간 동안 국민연금보험료를 지원하는 실업크레디트 사업을 시행한다. 노후소득 보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모두 376억원이 들어가는데, 보건복지부 국민연금기금과 고용보험기금, 노동부 일반회계에서 3분의 1씩 부담한다.

파견·기간제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사업주에게 인건비 일부를 지원하는 사업도 신규로 시행된다. 해당 사업에만 고용보험기금 159억5천만원이 투입된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실업크레디트 사업에 고용보험기금을 쓰려면 고용보험법에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며 “연금소득 보장성을 강화하는 지원이 고용보험법 취지에 부합하는지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규직 전환지원금에 대해서는 “정부는 고용보험법 시행령 개정으로 제도를 도입하려고 하지만 해당 규정은 정부에게 지나치게 재량권을 부여하고 있다”며 “(본법이 아닌) 시행령 개정으로 도입하는 것이 타당한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국회 예산정책처나 환노위가 고용보험기금 투입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재정수지 악화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고용보험기금으로 사업을 이관하거나 새로 시작되는 사업은 실업크레디트를 제외하고 모두 고용보험기금의 고용안정·직업능력개발계정에서 지출된다. 그런데 계정의 재정수지 흑자규모가 올해 1천988억원에서 내년에는 323억원으로 급감할 것으로 예상되는 실정이다.

◇모성보호급여 증가, 실업급여계정 대책 시급=실업크레디트 사업의 재원인 실업급여계정 역시 상황이 좋지 않다. 고용보험법은 예상하지 못한 대규모 급여지출에 대비하기 위해 실업급여계정의 연말 적립금을 해당연도 지출액의 1.5배 이상에서 2배 미만으로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금융위기 여파로 2009년 적립배율이 0.8을 기록한 뒤 계속 떨어져 지난해에는 0.4, 올해는 0.6을 기록했다.

출산전후휴가급여·육아휴직급여·육아기 근로시간단축 급여 같은 모성보호 급여의 급격한 지출증가가 주된 원인이다. 실업급여계정 지출 총액에서 모성보호급여에 지출되는 비용이 차지는 비율은 2002년 2.8%에서 지난해 14.3%까지 급증했다. 특히 정부는 지난달부터 육아휴직자의 첫 1개월 육아휴직급여를 통상임금의 40%에서 100%로 상향하고, 육아기 근로시간단축 급여액도 통상임금의 40%에서 60%로 올렸다.

내년에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기간을 연장할 계획이어서 모성보호급여 지출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그런데 모성보호급여 지출은 1천65억원 증액된 반면 일반회계전입금은 350억원 증가에 그쳤다.

모성보호급여를 고용보험기금으로 부담하는 것이 고용보험법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국회는 2001년 모성보호급여를 장기적으로 일반회계와 국민건강보험이 부담하도록 하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재정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고용보험기금 실업급여계정의 재정안정화와 사회적 형평성 제고를 위해 모성보호급여의 사회적 분담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