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권성동 법안)이 노동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한국노총은 이달 22일 열리는 전국노동자대회에 핵심 슬로건 중 하나로 ‘근로기준법 개악 저지’를 선택했다.

한국노총 산별연맹들은 권성동 법안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한국노총이 지난달 31일 산별연맹 정책담당자들과 함께 각 산업의 노동실태를 듣고 권성동 법안이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좌담회를 열었다.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회의실에서 열린 좌담회는 박운 매일노동뉴스 편집국장의 사회로 오지섭 자동차노련 정책실장·심재호 화학노련 정책국장·공광규 금융노조 정책실장·이루 의료산업노련 정책부장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좌담회에 앞서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이 현안을 설명했다.

“버스노동자들, 권성동 법안에 경악”

사회 : 근로기준법은 근로조건의 최고 기준이 아닌 최저 기준을 정한 법이다. 노동자들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기준을 정한 법이란 뜻이다. 최근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이 근기법 개정안을 내놨다. 노동계는 개악이라고 주장한다. 한국노총의 입장을 먼저 들어보자.

정문주 :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의 근기법 개정안은 개악안이다. 노동시간을 늘리고 휴일가산수당을 없애는 법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확대하고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담았다. 근로시간 특례업종도 적용업종은 줄였지만 상한선을 두지 않고 휴게시간을 변경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한국노총은 10월8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근기법 개악 저지, 새누리당 규탄대회’를 시작으로 입법저지 활동을 펼쳤다. 법안을 공동발의한 국회의원을 항의방문하고 규탄투쟁을 진행했다. 현재까지 새누리당의 강기윤·김상훈·박창식·이완영 의원과 무소속 유승우 의원이 법안 철회의사를 밝혔다.

사회 : 산업별 실태를 점검해 보자. 노동시간과 근무형태 등이 다를 것 같다.

오지섭 : 버스산업의 주간 노동시간은 58.3시간이다. 운전기사가 부족해 갈수록 초과근로가 가중되고 있다. 버스노동자는 지금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다. 며칠 전 단위노조 대표자 400여명이 모여 워크숍을 했다. 권성동 법안을 설명했더니, 난리가 났다. 어떻게 이런 법안이 나올 수 있나,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분위기였다. 우리는 정말 심각하다. 근로시간 특례업종 문제로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1년 넘게 논의했다. 특례업종이라도 근로시간 상한선을 두고 연속 휴게시간을 보장한다는 내용이 정리돼서 이미 고용노동부에 넘어간 상태다. 그런데 권성동 법안은 모든 논의를 백지로 만들었다. 노동부도 동조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노동시간단축의 중요성은 차치하더라도 노사정 합의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마저 없었다. 할 말을 잃었다.

심재호 : 화학업종은 사업장 규모가 다양하다. 통계치를 보편화할 수는 없지만 자체 조사에 따르면 주당 노동시간은 47.5시간이다. 장치산업의 경우 교대제 근무가 많아 상대적으로 노동시간이 길다.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시간에 포함하는 것은 노동부가 행정해석만 바꾸면 되는 문제였다. 노동부가 자기 잘못을 감추려 법 문제로 치환했다. 우리도 말려들고 있다. 대법원이 빨리 판단을 내려야 한다. 현행법상 주당 노동시간은 52시간 아닌가. 권성동 법안이 적용되면 임금이 삭감된다. 한국노총 추계로는 3조원이라고 했다. 한국경총과 중소기업중앙회도 올해 2월 대법원에 낸 ‘휴일근로 중복할증 관련 탄원서’에서 연장근로에 휴일가산수당을 중복 할증할 경우 기업 부담금이 2조원이라고 적시했다. 권성동 법안은 결국 2조~3조원에 달하는 돈을 기업이 꿀꺽하게 하는 법이다.

이루 : 간호사의 88%가 일상적으로 연장근로를 한다. 인력부족으로 인해 대부분 일이 많고 교대제로 일하다 보니 연장근로가 일상화돼 있다. 간호사의 경우 8시간씩 3교대로 24시간을 일하는데, 식사를 제대로 챙겨 먹기 어렵다. 다만 권성동 법안이 의료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간호사들은 지금도 24시간 3교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병원 내 사무직이나 외래병동에서 약간의 영향을 받을 수는 있을 것이다.

공광규 : 권성동 법안은 시대 역행적인 법안이다. 그렇지 않아도 긴 노동시간을 더 길게 만들고 휴일가산수당마저 없애겠다고 한다. 노동계가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금융산업은 보통 하루 8시간 전일근무를 한다. 노조가 자체 조사한 바로는 주당 노동시간이 평균 50시간을 넘었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인원을 대량 감축했기 때문이다. 금융산업은 휴일근로가 보편화돼 있지 않다. 권성동 법안이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휴일가산수당이 사라지면 사용자가 휴일근로를 시킬 유인이 늘어난다. 걱정이다.

“근로시간 특례가 국민안전 위협”

사회 : 현행 근기법상 근로기준 관련 조항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자. 화학업종에서는 탄력적 근로시간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많을 것 같은데.

심재호 :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일이 많을 때는 일을 많이 시키고, 적을 때는 적게 시킬 수 있는 제도다. 평균해서 주 40시간을 맞추면 연장근로수당을 안 줘도 된다. 합법적으로 임금을 떼먹는 제도다. 그런데 화학업종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한 사업장을 찾기 힘들다. 노동부는 계절산업에서 적용이 늘 것이라고 내다봤는데 그렇지도 않다. 제과업을 보면 규모가 큰 사업장이 많아 여름에 아이스크림을 만든다고 겨울에 쉬는 것이 아니다. 겨울에도 과자 만들고 빵 만들고 그런다.

생산직은 연장근로수당에 매우 민감하다. 노조가 탄력적 근로시간제도에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구조다. 권성동 법안의 경우 탄력적 근로시간제 운영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12개월, 즉 1년으로 늘렸다. 한국노총 조사에 따르면 이럴 경우 연간 156시간분의 수당이 사라져 임금이 7% 하락한다. 운영기간은 확대할 것이 아니라 줄여야 한다.

공광규 : 금융산업에서는 사용자가 육아 문제와 연관해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주되게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노동시간에 대한 관념이 정확하지 않다. 10시간 노동을 하자고 해 놓고 실제로는 11시간이나 12시간 일을 시키는 게 보통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하기 어렵다. 산별노조 차원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하지 않았는데, 일부 사업장에서 자체 시행하는 곳이 있다.

오지섭 : 버스산업에서는 근로시간 특례조항의 피해를 많이 본다. 하루 12시간 일하는 것도 힘든데 더 많이 일하라는 게 말이 되나. 근기법은 공중의 편의 또는 업무의 특성상 필요한 경우 근로시간 특례를 인정한다. 그런데 이게 어불성설이다. 버스산업을 보면 특례업종이 되면서 장시간 노동이 만연해졌다. 장시간 노동은 안전문제와 직결된다. 안전을 위해서는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

심재호 : 유해·위험 사업장은 대체로 노동시간이 짧다.

오지섭 : 맞다. 그런 식으로 해야 한다. 국제노동기구(ILO)는 도로운송 노동자들의 근로시간 및 휴식시간에 관한 협약(제153호)에서 연장근로를 포함한 최고 운전시간이 1일 9시간, 1주 48시간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4시간 이상 계속 운전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5시간 이상 운전할 경우 반드시 휴식시간을 보장하도록 했다. 유럽연합(EU)과 일본에서는 이 규정이 매우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다.

이루 : 대중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업종이 근로시간 특례업종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에 공감한다. 병원은 응급실에서 연장근로가 많은데, 꼭 그 사람이 필요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인력이 부족하니, 집에 간 사람을 다시 부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상한 변형근로제도가 생겼다. 온-콜(on-call)이라고 부르는 제도가 있다. 간호사가 쉬는 날인데 환자가 많으면 출근시키는 제도다. 반대로 이프-오프(if-off)라고, 환자가 적으면 출근하는 간호사에게 전화를 해서 출근하지 말라고 통보한다. 이런 제도가 잘못됐다는 것은 다 알지만 인력이 부족한 탓에 개선되지 않고 있다.

사회 : 현행 근기법에서 반드시 개정해야 할 내용은 어떤 게 있나. 산업별로 조금씩 다를 것 같다.

오지섭 : 노동시간단축을 시행할 때 임금보전 원칙이 법에 명시됐으면 한다. 현장 노동자들은 임금이 깎일까 두려워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다.

심재호 : 2004년 주 40시간제를 도입할 때 임금보전 원칙이 최종 합의문에 담겼다. 문구 자체는 그렇게 실효성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정부가 노동시간을 줄일 때 최대한 기존 임금수준은 맞추라고 신호를 준 것이기 때문에 효과가 전혀 없다고 할 수도 없다. 결국 정부의 의지가 중요하다. 근기법과 관련해서는 5인 미만 사업장 적용이 가장 중요하다. 300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노동자들이 퇴직금 보장 외에는 적용받는 게 없다. 또 근기법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을 하려면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명백히 불이익한 변경임에도 재판부가 임의로 “사회적 통념상 합리적인 경우”는 불이익 변경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 판단을 누가 하고 있나. 바로 법원이다. 월권이다. 보완입법을 통해 바로잡아야 한다.

이루 : 의료산업에서는 대체로 근기법이 잘 지켜진다. 법 개정보다는 사업장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 동료가 임신해서 배려하려 해도 인력이 모자라 그렇게 하지 못한다. 휴가를 쓰긴 하지만 실제 자기가 쉬고 싶을 때 쉬는 경우가 많지 않다. 회사 일정에 맞춰 쓴다는 얘기다. 그런 것은 바꿔 나가야 한다.

공광규 : 금융산업은 정규직·비정규직·무기계약직이 나뉘어 있다. 동일 사업장 내에서 임금격차가 심하다. 임금격차를 줄이는 입법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사용자들이 비정규직 채용을 줄이지 않겠나.

“통상임금, 대법원 판결 후 소송보다는 노사협상으로”

사회 : 최근 노사관계에 법원이 개입하는 빈도가 늘고 있다. 통상임금부터 휴일근로·노동시간, 심지어 단체협약 조항까지 법원의 판단을 구하고 있는데.

오지섭 : 통상임금 갈등의 진원지는 버스다. 그동안 여러 판례가 나왔는데, 지난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어느 정도 정리되는 분위기다. 요즘은 소송보다는 노사협상으로 풀고 있다. 노사 모두 대략적인 판단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사측에서 판결대로 통상임금을 모두 인정할 테니 80% 수준에서 합의하자고 한다. 소송비용을 고려하면 노조도 합의할 수 있는 수준이다.

공광규 : 금속노조 37개 지부 중 10곳이 통상임금 소송을 하고 있다. 산별교섭 차원에서 문제를 풀려고 노력했는데, 사업장별로 임금구조가 너무 달라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 개별지부가 알아서 해결하는 분위기다. 다만 노사 간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내년까지 해법을 모색해 보자는 논의는 하고 있다.

이루 : 최근 통상임금 협상은 잘되고 있는 편이다. 사측 역시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연세의료원노조의 경우는 상여금 600%를 모두 통상임금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다만 300%는 단계적으로 반영한다는 데 합의했다.

심재호 : 최근 흐름을 요약하면 이렇다. 상여금 일할지급 기준이 있는 곳은 회사가 적극적으로 협상하자고 한다. 이런 곳은 무조건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조에 매달려야지 달리 기댈 곳이 없다. 반면 재직자 기준이 있는 곳은 회사가 빼째라 식으로 나온다. 이런 경우는 반대로 노조가 방법이 없다. 법원 판결이 달라지거나 입법적 보완이 이뤄지기를 기다리는 식이다.

“노사정 대화해도 바뀌는 것이 없어”

사회 :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국회에서 법을 바꿀 수도 있고, 노사정위원회 논의를 이어 갈 수도 있다. 한국노총에 바라는 점은.

오지섭 : 투트랙으로 가야 한다. 노동시장 정책은 노사정위에서 교섭하되, 산업별 노정교섭을 별도로 해야 한다. 자동차노련은 국토교통부와 정책간담회를 한다. 거기서 산업별 이슈를 많이 논의하고 해결한다. 다른 산업도 이런 모델을 활용할 수 있다. 그런데 결국 정부가 응하지 않아 문제다. 법제화로 풀어야 한다.

심재호 : 노사정 교섭이든, 노정교섭이든 그동안 많이 했다. 한국노총이 노사정위에 복귀한다며 청와대도 갔다 왔고 새누리당과 정책협의회도 하고 있다. 그런데 권성동 의원이 법안을 내놨다. 한국노총이 얼마나 우습게 보이면 그랬겠나. 결국 실력이다. 한국노총이 전략을 촘촘하게 짜고 현장을 조직해야 한다. 권성동 법안이 폐기되지 않는다면 사회적 대화나 노사정 교섭 이런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루 : 노사정위에 복귀했지만 공기업 개혁 관련 투쟁은 속수무책 밀렸다. 게다가 권성동 법안이 나오고 의료 민영화까지 추진되고 있다. 대화와 협상이 되는 것인지 아닌지, 당혹스러울 만큼 노조의 의견 반영 없이 모든 게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공광규 : 한국노총이 노사정위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안이 논란이라면 노사정위 같은 공간에서 논의라도 해야 한다. 업종별 노동이슈도 다뤄야 한다. 노사정위의 대표성 문제 극복을 위해 시민단체의 참여를 전향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사회 : 사회적 대화는 해법 마련에만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현안을 둘러싼 갈등을 완화하거나 대안을 마련해 가는 과정일 수 있다. 한국노총이 여러 시도를 하고 있으니 지켜보도록 하자. 수고 많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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